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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과 한국 금융사가 숨쉬는 곳-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무료관람-단체관람 가능, 로마시대 저금통 등 흥미로운 자료 2만점 이상

노현승 기자 기자  2012.06.21 13: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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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옥탑방 왕세자’의 ‘유천 왕자님’에 가슴 설레며 드라마를 봤던 기억을 가진 시청자들이 많을 것이다. 상상 속의 존재인 왕자가 나오는 이야기라 더 흥미진진했는데, 서울 한복판에 은행장을 맡았던 은행이 실제로 있다면?

엽전 꾸러미를 쓰던 시절부터 스마트폰으로 폰뱅킹을 하는 시대를 한 눈에 보여주는 공간, 금모으기 운동의 뭉클한 기억부터 금융 강국 대한민국으로 부흥하기까지의 금융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다면?

이런 금융의 모든 발자취를 한 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조선황실이 세운 한국 최고의 은행, 우리은행(053000)의 서울 회현동 본점에 위치한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이다.

113년 우리은행 역사에 한국 금융사까지

   
은행 설립과 관련, 탁지부(재무부 기능을 맡던 구한말 관청)에 청원한 내용과 이에 당국이 인가를 해 준 바가 나타난 증서. 우리은행의 113년 전통이 비롯된 역사적 출발점이다.
우리은행은 1899년 대한천일은행으로 설립됐다. 그 후 1911년 조선상업은행,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각각 상호를 변경한 우리나라 첫 은행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은행은 우리나라 첫 은행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나라 은행사를 연구해 은행의 역할을 조명하고 알리기 위해 박물관을 개관해 많은 관람객을 모으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공헌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은행이 운영하는 은행사박물관은 눈여겨 볼만 하다.

이곳 은행사박물관에서는 한국 근대은행의 출현에서부터 일제시대, 광복과 동란, 경제 개발기 및 IMF 외환위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은행이 걸어온 발자취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대한천일은행을 비롯해 대한제국기에서 현재까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우리나라 은행들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유물들과 모형 △글과 그림 △영상 △디지털화면 등으로 전시장을 구성했다.

개성 상인들이 ‘복식 부기’ 방식으로 관리한 장부 등 오래 전 자료들을 훑다 보면 우리의 금융 감각이 어느 날 갑자기 수입된 게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은행에는 각종 은행 관련 사료들이 전시돼 있어, 금융 관련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에 전시된 과거 은행 창구의 운영 모습. 수기식(사람이 직접 작성)으로 운영되던 은행 장부책이 책상마다 놓여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민족은행으로 첫 발을 뗀 우리은행의 역대 은행장 중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민병석 초대 행장은 탁지부(재무부 기능을 맡았던 구한말 행정기구)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출신. 또 마지막 황태자로 우리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 제2대 행장을 역임한 영친왕이다.

   
우리은행과 관련한 자료 외에도 상인들의 장부 등 각종 자료들을 통해 우리 민족의 금융 관련 발전사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이 은행이 황실이나 고위 관료 등과 인연이 깊은 것은 민족의 은행을 갖기를 원한 고종 등 황실과 당시 정부의 선견지명 때문이었다. 금융을 통한 자본 축적을 하지 않으면 선진국에 경제적 예속을 당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 은행 설립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첫 은행으로서 우리은행은 은행 설립 관련 서류들의 원본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9년에는 창립 문서 및 회계문서 75점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그 역사성을 인정받았다.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우리나라의 외채를 갚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금을 나라에 기부했던 운동인 ‘금모으기 운동’을 조형물로 당시 아픈 우리의 모습을 재연해 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은행사박물관 오완식 팀장은 “일제시대나 IMF 시절의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뤄냈기 때문에 앞선 세대가 우리 경제발전을 위해 어떤 식으로 노력했는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어린 세대에게 보여줌으로써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모으기 운동 당시의 모습을 입체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의 자랑 세계 3대 ‘저금통 테마파크’

이 박물관은 1년에 약 2만명(1일 기준 100명 내외) 정도의 관람객이 찾는다. 특히 어린이 단체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물관은 △은행역사관 △우리은행 홍보관 △저금통테마파크 △우리갤러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부모님 손을 잡고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바로 ‘저금통 테마파크’. 세계 3대 저금통 컬렉션(유물)의 하나로 우리나라 최대의 저금통을 보유하고 있어 어린이 관람객이 특히 좋아한다. 이런 특징있는 저금통 테마 박물관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일본과 네덜란드, 그리고 이 곳까지 3대 박물관으로 꼽는다고 한다.

오 팀장은 “우리 박물관의 경우 2만3000점정도의 전시물이 있다”며 “이중 6000점 정도가 저금통으로 세계 각국의 진귀하고 다양한 저금통을 관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세계 각국의 저금통으로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70~80년대 우리 경제 성장의 디딤돌이 된 저축 장려운동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은 금융 관련 자료 외에도, 저금통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 이 곳에는 저금통 약 6000점이 전시돼 있다.
   
세계 각국에서 수집돼 온 저금통. 앞에 토기 재질로 된 로마 시대 저금통이 보인다.

또 외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진귀한 ‘작품’ 저금통들도 있다. 로마시대의 움집 모양 토기 저금통을 비롯해, 1800년대 후반에 정교한 금세공을 한 오스트리아 저금통은 세계에 몇 안 되는 고가의 수집품이다.

박물관은 2004년에 개관했지만, 저금통 수집은 1990년대 초반부터 누적돼 온 것이다. 구 상업은행 시절부터 은행이 저금통과 인연이 있다고 해 수집을 한 것이라는 뒷이야기다.
   
오스트리아에서 제작된 정교한 금세공 저금통.

사회공헌 차원 무료관람 실시

이런 가운데 2004년 박물관이 태동,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은 이덕훈 전 행장의 열의가 있어 가능했다.

이 전 행장은 사회적으로 기여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직원들을 투입, 박물관을 열도록 독려했다. 준비 작업에 전담 투입된 직원만 7명. 이 전 행장은 “박물관을 설립해 홍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활성화가 되면 좋겠다”면서 직원들에게 철저한 준비와 운영을 당부했다는 게 당시 설립준비요원으로 활약했던 오 팀장의 기억이다. 이후에도 여러 역대 행장들의 관심으로 은행 예산을 기반으로 많은 자료들을 무료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

은행사박물관은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이 개방 시간에 맞춰 오면 언제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천천히 전시물들을 보면 약 30분 정도 걸린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에는 은행 관련 자료 외에도 그림그리기대회 입상작들을 전시하는 미술관 기능도 있다.

다만 이 박물관을 찾는 단체 관람객 특히 학생들의 경우 미리 신청을 하면 학습효과를 더하기 위해 안내 설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박물관 학예사는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각종 유물을 관리하며 친절한 안내를 위해 직원도 따로 배치하고 있다.

한편 이 박물관에는 학예사 2명이 근무 중이다. 이들은 주로 한국의 은행사를 연구하는 학술담당과 은행 관련 유물을 관리한다. 한 명은 전문직원으로 따로 채용해 우리은행에 합류한 케이스이며, 다른 한 명은 원래 은행원으로 일반 부서에 근무하던 경우지만 이 분야에 갖고 있던 자격과 지식을 지금은 이 곳에서 근무하며 잘 살리고 있는 경우다.

오 팀장은 “우리 박물관의 경우 유치원과 초등학생 등 어린이 관람객이 주를 이룬다”면서 “어린이 관람객이 우리 박물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은행의 역사가 곧 우리나라 은행의 역사임을 배우고 갈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