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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보험의 힘, 잘 쓰면 인권말살도 막는데…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6.20 08: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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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시리아 정부와 반군 집단간의 유혈 충돌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와 관련해 보험계에서는 흥미로운 외신 기사가 나왔다.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는 19일(현지시간) 공격헬기를 싣고 시리아로 향하던 러시아 선박이 선박보험 계약이 취소된 이후 되돌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는데, 그 배후에 보험의 힘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계약 이행' 즉 유혈 사태 이전에 맺어진 계약에 따라 시리아 정부에 헬기를 제공하려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워 왔다.

하지만 영국 기업인 스탠더드클럽(Standard Club)이 MV알라에드호가 명백히 시리아 제재 조치의 국제적 합의 규정을 어기고 무기를 적재한 채 시리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성명을 내면서 러시아의 고집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스탠더드클럽이 선박보험은 '자동으로 중지'된다고 직구를 던진 것이 외곬 러시아가 선박 회항 결정에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쟁이나 이에 준하는 무력의 충돌 국면에서 보험사가 한몫을 거들거나, 중요한 국면 변화를 조장하는 예는 찾기 어렵지 않다.

예컨대, 이란과 이라크가 한창 전쟁을 하던 1984년에는 이라크가 페르시아만에서 선박 6척을 불태우는 등 기세를 올렸는데, 이로 인해 런던의 로이드 보험시장에서 이란 하르드행 선박의 보험료가 2배 가까이 급등하기도 했다. 이런 보험 상황 덕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접 아랍국까지 영향을 받게 됐고 그로 인해 이 지역 산유국들이 이런 선진국 보험사들의 조치에 불만을 표한 바 있다.

물론 이번 영국의 보험사 반응 역시 러시아의 편을 들어 보험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 시리아에 대한 국제적 제재의 강력한 집행을 원하는 미국 등의 불만을 살 것이라는 경영적 판단에 일부 뿌리를 둔 것까지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1984년의 하르드행 선박 보험료 인상 문제가 전쟁 상황 자체에는 오불관언이고, 그저 내 이익 문제를 저울질한 결과 나온 눈치빠른 장삿속에 불과했다면, 이번 상황은 내전 와중에 시리아 정부 당국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인권말살을 제약하려는 휴머니즘적 노력이 일부나마 깃든 사례로 볼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경영적 이익 외에도 시리아의 극단적 반군 진압과 시민들에 대한 탄압에 국제적 보험사마저 '레드 카드'를 보내는 데 동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외에서는 계약 중지 카드를 사회적·인륜적 의무 준수에 사용하는 경우마저 없지 않은데, 우리의 보험사들은 아직 고객을 상대로 보험금 소송을 남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좋은 대비가 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금융감독원의 보험사 소송제기 공시 자료 등을 종합해 보면, 금융사 소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손해보험사의 2010년 회계연도 소송제기건수는 1022건으로 직전년 1866건 대비 45% 정도 감소했고 2011년 상반기에는 336건으로 소송제기 건수가 줄어드는 추세지만, 일부 기업은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인 한화손보 같은 경우처럼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방향을 보여 우려를 사거나, LIG손해보험이나 현대하이카 등도 미미한 감소폭을 보이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복잡한 보험의 수리적, 공학적 그리고 법률적 구조 때문에 보험 관련 소송은 변호사들도 자신없어 하는 경우가 많고 보험사들은 이런 힘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잘 쓰면 민간인에 대한 학살, 즉 인권말살까지도 막을 수 있는 게 보험사의 힘이다.

데일리텔레그래프를 통해 날아온 바깥세상 보험 소식을 보면서, 우리 보험사들도 힘을 어디 쓸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