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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예탁원 증권박물관

재미난 증권 얘기로 어린손님들 문전성시…7년 만에 관람객 6배↑

이정하 기자 기자  2012.06.14 14: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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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여기 증권 보이시죠? 자세히 보면 파쇄기에 잘린 종이뭉치 속에 놓여 있는 거예요. 전산화가 이뤄지면서 더 이상 종이 증권을 사용하지 않게 됐는데요. 그런 지금의 상황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종이 증권과 파쇄기에 잘린 종이 증권. 과거의 증권과 현재의 전자화된 증권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증권이라는 딱딱하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증권박물관은 서울 도심에서 다소 벗어난 일산에 위치했지만 연간 2만명의 방문자가 다녀갈 만큼 인기가 좋다. 2004년 개관 당해 관람객은 3500명에 불과했지만 7년 후인 2012년에는 첫 관람해의 6배가 넘는 2만4000명이 방문했다.

특색 없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박물관 탓에 관람객 수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도 많지만 증권박물관은 설립 7년이라는 비교적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매년마다 꾸준히 10% 이상 관람객이 증가하고 있다. 비결은 무엇일까? 5월의 마지막 날 일산 호수로에 위치한 증권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봤다.

증권박물관은 한국예탁결제원이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증권전문박물관이며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예탁결제원 건물 자체가 지하금고 및 증권 관련 수집품을 보관하고 있는 특수 건물로 입출입이 까다로운 편이다.

박물관 방문에 앞서 신분증을 챙기는 건 필수. 신분 확인 절차를 걸치고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예탁결제원의 각종 부서 및 교육 관련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은 이 건물 6층에 위치, 입구에는 방문객을 환영하는 전광판이 움직이고 있었다.

◆ 증권 얘기가 재미없다고요?

입구에서부터는 증권박물관 문판수 관장과 노세진 학예사의 설명을 따라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서글서글한 말투의 문 관장은 "취임 두 달밖에 되지 않아 아직은 그냥 얼굴마담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박물관이 7년이나 돼 확장 등의 계획을 세웠고 홍보가 잘 돼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으면 좋겠다"며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1회 수용인원이 40~50인 정도인 927㎡(280여평) 규모의 전시장은 세 가지 존(ZONE)으로 분류돼 있었다.

첫 번째 존은 증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공간으로 '증권의 탄생과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마련됐다. 초중등학생 방문자가 전체 관람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증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쉽고 재미있는 설명은 필수다.

긴 생머리에 친절한 미소가 인상적인 노 학예사는 박물관의 인결비결 중 하나가 "증권이라는 어렵고 딱딱한 주제를 재미있게 설명한 덕분"이라고 털어놨다.

"증권 자체가 아이들에게 생소하고 재미없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일종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용하는 겁니다. 또 이곳 박물관을 보면 아시겠지만 아이들 눈높이를 고려해 낮게 전시됐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곳곳에 배치돼 있어요."

   
증권박물관의 6월 행사 및 계획표. 유치원 및 초, 중등생 등 단체관람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실제 증권박물관 내부 전시실은 어른의 눈높이에서 보기에는 다소 낮게 전시돼 있으며 증권 만들기, 전자방명록 등 체험 프로그램이 중간 중간에 구성돼 있었다.

세계 증권의 역사가 그대로 담긴 '역사 흐름표'를 확인한 후 세계 최초 주식회사인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의 주권에서부터 아르누보 양식의 그림이 인쇄된 아름다운 주권을 구경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수표와 증권거래소 최초 개장 당시 발행된 주권들도 눈길을 끌었다.

◆ 예탁원 사회공헌의 일환 '관람은 전액 무료'

두 번째 존은 예탁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공간으로 예탁원의 발전사 및 주요업무를 살필 수 있다. 증권의 위변조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부터 도난·분실 등을 체크하는 기계까지 지폐만큼이나 위조의 위험이 큰 증권을 어떻게 관리 감독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전신은 한국증권대체결제주식회사로 우리나라의 증권 역사에 비해 굉장히 빨리 설립됐어요. 일본에 비해서도 10년 정도 앞서 있죠. 자연스럽게 증권 관련 자료들이 꾸준히 쌓이게 됐고, 증권박물관도 이런 토대 위에 만들어질 수 있었죠."

증권박물관은 관람과 관련한 비용이 전액 연중 무료다.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금융경제교육 및 방학특별 프로그램 등도 당연히 일체 무료로 진행된다. 이 비용은 모두 예탁원에서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지불하고 있다.

문 관장은 "박물관 자체 내에서는 어떠한 수익도 올리고 있지 않다"며 "시장에서 모인 돈은 전 국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시장 수익금을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입장에서 운영되고 있는 곳"이라고 무료로 운영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마지막 존은 역사성과 희소성을 지닌 다양한 증권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일제강점기 증권에서부터 북한 증권까지 다양한 증권이 테마별로 제시돼 있었다.

철도, 항공, 전력, 광산, 건설 등 7가지로 분류된 테마별 증권 외에도 중국, 튀니지, 스페인 등 세계의 증권과 피자헛,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 유명기업의 증권 등도 전시돼 있었다.

   
노 학예사가 증권 수집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가장 구하기 힘들었다는 북한 증권 수집과 관련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 학예사는 이 중에서도 한국전쟁 이전에 발행됐던 북한의 증권이 가장 구하기 어려웠다며 관련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사실 최근 발행된 북한 증권은 조선족 등을 통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데 한국전쟁 이전 발행됐던 북한 증권은 굉장히 구하기 어려웠어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고령자분이 보유하고 있었지만 연좌제 등을 걱정하면서 파시지 않는 거예요. 결국 국정원의 동의 사인을 받고 구할 수 있었죠."

북한은 해방이전에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증권을 찍은 적이 있다. 과거 1949년 전쟁비용 조달을 목적으로 한 '인민경제발전채권'에 이어 50년이 훌쩍 지난 2003년에도 재원조달 및 통화량 조절을 목적으로 '인민생활공채'를 발행한 바 있다.

◆ 전시유물 부족해 함께 나눴으면…

요즘은 '나눔의 의미'가 강조되는 시대다. 자신의 자산을 함께 나누면 그 또한 기쁨이 아닐까? 문 관장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증권이 많다"며 소장자들에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전자시대가 될수록 과거 종이 증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해외 및 국내에서 매년 수집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부딪히기도 해요. 역사적 유물을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함께 나누면 그 가치가 더 커지지 않을까요."

문 관장은 이어 "무상 및 유상으로 증권 수집을 지속하고 있는 박물관은 기증이 꺼려지는 경우 정당한 절차를 거쳐 대여도 가능하다"며 "기증자에게는 감사의 뜻으로 이름 등을 적은 명패도 달아줄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박물관 전시 유물은 불과 160점 정도인데 비해 전시 이외에 따로 보관하고 있는 사료 등은 4800점가량이다. 보관 유물에 비해 전시 유물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 또 문 관장은 몇 차례의 소규모 보수공사가 이뤄지기도 했으나 현재 증권박물관은 방문객에 비해 시설 및 규모가 열악해 전면 보수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위스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증권박물관이 이곳이에요.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낙후됐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박물관 확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이전보다 더 나은 박물관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 관장은 증권박물관을 찾아오는 관람객이 관람에 앞서 사전준비를 해왔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박물관 관람 전에 조금만 준비를 하고 왔으면 해요. 전문지식을 공부해오라는 건 아니고요. 저희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것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박물관이 격지에 위치에 있는 만큼 먼 길 오시는 분들이 헛걸음하지 않고 한 번에 많이 배워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