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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실패한 ‘강용석 펀드’ 원망할 수 없는 이유

이수영 기자 기자  2012.06.13 10: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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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가장 확실한 노후준비 방법은 하나다. 최대한 오래오래 월급쟁이로 버텨라. 아무리 뛰어난 투자전문가라도 매달 ‘따박따박’ 월급만큼의 수익을 벌어들이는 건 쉽지 않다. 본인이 회사에서 잘리지만 않는다면 리스크(위험)도 없다.”

몇 달 전 미래설계 전문가인 KDB대우증권 홍성국 전무에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수익처’가 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자산관리에서 ‘안전함’은 원금보장, ‘확실한 수익’은 높은 수익률이다. 문제는 투자에서 이 두 가지 개념은 서로 모순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를 망각하거나 외면해 버린다. 특히 노후대비가 발등에 떨어진 불인 경우, 즉 은퇴를 앞뒀거나 이미 은퇴한 어르신들에게 있어 ‘높은 수익’은 사랑받지만 ‘높은 위험’은 불경한 소리다.

여기 귀가 솔깃한 제안이 있다. 1억원을 맡기면 매달 160만6000원씩 ‘따박따박’ 계좌에 입금해드리겠다. 연 수익률이 무려 20%에 달하는 셈. 원금은 고스란히 보장하고 원하신다면 언제든 투자금을 추가 납입하셔도 된다.

“투자할지 말지는 온전히 당신 몫이다.”

안정적인 월수입에 목마른 사람들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장 돈이 없다면 가족이나 지인에게 빌려서, 혹은 외부 차입을 해서라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렇게 모인 투자자가 총 3600여명, 투자금은 685억원에 달했다. 그리고 이 돈은 모두 솔깃한 제안을 한 사기꾼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고 최근 그 우두머리가 쇠고랑을 찼다. 원금보장과 고수익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른바 ‘돌려막기’로 마치 수익이 지급되는 것처럼 피해자들을 속인 것이다.

12일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유사수신 행위로 사기행각을 벌인 명모(52)씨를 구속하고 일당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명씨 등은 2008년 10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대치동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신재생에너지, 부동산 개발 사업 등에 투자하면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속여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685억원에 달하는 투자금 가운데 353억원 상당을 가로챘고 30억원 정도는 주식투자에 썼다.

감언이설과 현장답사까지 동원해 사기극을 벌인 수법도 교묘했지만 더욱 아쉬운 게 있다. 선뜻 목돈을 맡긴 대다수 피해자들이 ‘안전하고 높은 수익’이라는 말에 하나같이 무장해제 당했다는 점이다.

화수분이 아니고서야 투자에서 ‘고위험·고수익’은 있어도 ‘저위험·고수익’은 없다. 최근 글로벌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 지난 4월 총선에서 여의도 정가와 금융투자업계를 술렁이게 했던 ‘정치인 펀드’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4·11 총선에서 낙선한 강용석 전 의원이 모집했던 펀드 상환에 실패했다.

이른바 ‘고소집착남’으로 남다른 인지도를 자랑했던 강 전 의원은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2억원 규모의 ‘강용석 펀드’를 조성했다. 당시 ‘강용석 펀드’가 약속한 수익률은 연 6.0%였고 3개월 뒤 원리금을 모두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시장금리 대비 매력적인 이자율. 여기에 선거법 상 득표율이 15%를 넘으면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한다는 안전장치까지 더해 순식간에 300여명의 투자자들이 몰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는 실패한 투자였다. 강 전 의원의 득표율은 5%에도 못 미쳤고 선거비용 보전은 물 건너갔다. 결국 투자자 25명은 약속한 날짜에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강 전 의원이 “7월 말까지 원리금을 전액 상환하겠다”고 재차 약속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만약 투자의 기본이 잡혀 있다면 약속을 못 지킨 강 전 의원에 대한 원망은 크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신용, 인지도를 투자 척도로 삼은 만큼 ‘강용석 펀드’는 고위험자산이었으니 말이다.

은행에 묶어만 둬도 이자가 20%씩 붙던 과거의 영광은 없다. 있는 재산 까먹지만 않으면 다행이라 할 만큼 좋은 투자처를 선택하는 게 힘든 시대다. 날고 기는 전문가들도 나가떨어지는 투자환경에서 개인은 당연히 더 바짝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고위험·고수익’이라는 원칙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