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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고 쓰고 달리고 깨지고…증권홍보맨의 애환

음지에서 조력자 역할 “팔자 좋은 넋두리 아냐”

정금철 기자 기자  2012.06.08 11: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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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국내 중소형증권사인 E증권의 홍보팀장 A씨는 최근 몇 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금융당국 규제에 따른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실적 악화로 얼마 전 열린 주주총회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발표해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다. 여기에 일부 언론매체들은 실적 악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실적과 관련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증권사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은 IMF당시보다 더 사정이 안 좋다는 게 이 홍보팀장의 넋두리다. 지난해 중소형증권사의 주요 급전 마련수단인 콜차입 한도 축소와 수수료 출혈 경쟁 등은 주요 수익원인 브로커리지 부문의 위축과 이어지며 위기의 불씨가 됐다.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등 대형증권사들은 자금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아 기업 인수 등 신규 사업을 진행할 수 있고 키움증권 등 온라인에서 강점을 보이는 업체들은 비용구조 효율화로 한숨이라도 돌릴 수 있지만 나머지 중소형증권사들은 더운 날씨에 속만 타들어갈 뿐이다.

H증권의 홍보팀 과장은 “대형사는 브로커리지에서 금융당국의 정책 유탄을 맞아도 신상품 개발과 자산관리 등, 금융상품 등에서 만회가 가능하지만 중소형사의 사정은 녹록치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업과 전략 선봉에 선 부서들도 그렇지만 이런 불경기에 회사를 홍보해야하는 중소형증권사 홍보팀은 시름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남들이야 팔자 좋은 넋두리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세상에 편한 군대생활은 없듯이 이들의 고충도 매한가지다.

증권사 홍보부서는 그림자다. 경영목표와 비전을 대외에 알리는 것은 물론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수습하는 일을 전담하는 것. 회사의 직접적 매출과는 관련이 크지 않지만 각 핵심부서와 보조를 맞춰 안팎으로 아낌없이 지원해야 하는 게 이들의 주요 업무다.

또한 실적에 따른 책임과 직결되지 않았더라도 다른 잡음으로 인해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파다하다.
 
몇 달 전 H증권의 A홍보과장은 내부 인사문제와 관련한 일부 매체의 취재를 막지 못해 지방 지점으로 내려갔다. 당초 승진까지 거론됐었으나 실적 악화로 흐지부지된 것도 모자라 지방에서 영업을 하게 된 것.

정작 문제를 일으킨 직원은 내부 인사위원회에서 주의 처분을 받고 한 달간 집에서 근신을 한 게 전부다. 백억원대의 자산가 몇 명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는 직원이라서 회사 입장에서도 쉽게 내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뒷얘기가 무성하다.   

A홍보과장은 “문제가 생기면 홍보라인으로 떠넘기는 관행은 증권사뿐 아니라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라며 “최첨단으로 진화하는 금융투자업계에서 여전히 구행적인 관행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임원진의 문제는 언제든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차라리 지점으로 내려오니 훨씬 마음이 편하다”며 “일부 직원들은 홍보부서를 편한 보직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인사시즌이 되면 홍보 부문을 피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홍보부서는 타 부서의 업무상 과실이나 대표 및 임원이 개인사로 구설에 올라 이 일이 바깥으로 알려졌을 경우 책임을 져야하며 만성적 인력 부족에 시달리며 매일 행사장과 설명회 등 전국을 내달려야 한다. 인력이 적다보니 직접 홍보부서 팀장급이 나서 행사나 보도와 관련한 사진을 찍고 해명 및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일도 다반사다.

특히 수치로 모든 것을 증명해야하는 금융투자업의 특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업무인 만큼 열성적으로 일을 처리해도 쉽사리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S증권사의 B홍보팀장은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아 서운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나이가 있어 홍보업무가 힘에 부치는 순간이 더 걱정”이라며 “새로 들어온 직원들도 같은 고민을 할 때면 진지하게 보직변경을 얘기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B홍보팀장은 또 “이제 몇 년 지나면 정년 시기도 다가오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며 “대형증권사들에서 얘기하는 100세 시대 대비도 일부 중소형증권사 직원들에겐 다른 나라 얘기일 뿐”이라고 푸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