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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소처럼 일하라’가 아닌 ‘소처럼 일하자’

노현승 기자 기자  2012.06.08 10: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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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주말에 강원도 평창 오대산에 갔던 A 기자, 시골길을 걷던 중 식겁을 했다 하는데, 바로 마을 입구 장승에 ‘소처럼 일하자’는 ‘무시무시한’ 구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회사에 두고 온 ‘데스크(신문사의 간부를 말함. 보통 기사를 내놓으라고 소 부리는 농부처럼 독촉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가 생각났다 합니다.
   
 

예로부터 장승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는 마을 지킴이의 상징으로 통하죠. 아직도 시골 마을을 찾으면 마을입구에 험상궂은 사람 얼굴 모습을 하고 서 있는 장승을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장승은 오랫동안 마을 입구나 길에서 외부 사람들로부터 마을을 지키며 우리와 함께 해 왔습니다. 또 무서운 병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해 주고, 또 마을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 낫도록 장승 앞에서 빌기도 했다고 합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남상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전면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혹은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새겨 있으며 여상은 관이 없고 전면에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아니면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등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 속의 장승은 남녀가 쌍을 이루지도 않았으며 표정 또한 우스꽝스럽게 돼 있어서 전통적인 장승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그제서야 좀 다른 점을 발견한 A 기자는 잠시 놀란 마음을 달래고 문구를 읽어 봅니다. 그렇다면 이 장승의 몸통에는 왜 ‘소같이 일하라’가 아니라, ‘소같이 일하자’라는 구호가 쓰여 있는 것일까요?

평창군 진부면은 이장들이 솔선수범해 일하는 동네로 유명합니다. 이 장승에 쓰인 글귀 역시 이장들이 주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평창군 진부면 이장들은 지역 내 쓰레기 적체현상이 심해지자 분리수거 홍보대사를 자처해 지역사회에 귀감이 됐습니다.

하진부리, 송정리, 상진부리 등지에서 이장들이 직접 일일 환경미화원과 분리수거 홍보대사로 나선 것입니다. 이들은 쌓여 있는 쓰레기를 임시 적치 장소인 진부면 재활용센터로 옮겼습니다. 또 이장 30여명은 군 종합폐기물처리단지가 정상화될 때까지 2개 조로 나누어 격일로 환경미화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쓰레기 줄이기를 위해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홍보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습니다.

장승에 쓰인 문구가 ‘소처럼 일하자’인 점은 이런 배경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아랫사람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닌 지역발전을 위해 앞장서는 이장들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문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이란 우리말로 지도력, 통솔력이나 지휘력 등으로 번역돼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리더십은 한 개인이 다른 구성원에게 설정된 목표를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으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리더십도 섬김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이 대세로 바뀐지 오래입니다.

‘숙명여대를 혁신으로 이끈 이경숙의 섬김 리더십’이라는 책도 나와 있습니다. 무조건 ‘하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솔선해 모범을 보이며 구성원을 이끌어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