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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수르호, 중국해상 인명구조 긴박했던 24시간 스토리

송학영 가스장 “추락예상 지점 정확해도 바다에 빠진 사람 찾기는 기적”

박지영 기자 기자  2012.06.08 10: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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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유유히 흐르는 초록빛 바다를 보며 어떤 이는 낭만을, 또 다른 이는 추억을 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다와 하늘뿐인 그곳, 망망대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갈대보다 못한 풍랑 탓에 뱃사람들은 늘 초긴장 상태다. 자칫 잘못했다간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10일, 동중국해 해상에서 일촉즉발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싱가포르로 향하던 머스크 파이퍼호 선원 한명이 그만 추락하고 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익수 위치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진수르호가 있었다는 점이다.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한진수르호 송학영 가스장 증언을 빌어 재구성해 봤다.


한진수르호에 2012년 5월10일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아니, 오전 11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싱가포르 입거(入渠)를 앞두고 동중국해상을 항해하고 있던 한진수르호에 무전(VHF·초단파)이 떨어졌다. 약 2마일 거리를 두고 함께 남하하던 머스크 파이퍼호로부터 온 것이었다. 무전 당직사관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해상으로 추락한 자선 승무원을 같이 수색해 달라는 얘기였다.

이와 관련, 한진수르호 송학영 가스장은 “동중국해 일대를 뒤덮고 있을 그 많은 중국 어선들이 그날따라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며 “이때부터 아무리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필사의 수색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필사적인 수색의 시작

머스크 파이퍼호 사고소식을 처음 접한 사람은 한진수르호 3항사. (*3항사: 항해사 일원으로 3항사-2항사-1항사-선장 순) 3항사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강명진 선장은 승교와 동시에 전 승무원을 수색부서에 배치, 그 사실을 본사 운항팀에 통보했다.

   
머스크 파이퍼호 '모터맨'이 동중국해상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다.
당시 해수온도는 20도 남짓,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송 가스장은 “20도 해수는 생각보다 꽤 차갑다”며 “물에 빠진 순간부터 해수는 맹렬한 기세로 체온과 기력을 빼앗아간다”고 말했다. 체력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20도 해수서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는 고작 스무 시간에 불과하다. 강 선장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속력을 낮추고 조선을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진수르호는 머스크 파이퍼호와 약 0.5마일 거리를 두고 수색기동을 펼쳤다.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모든 항해사와 갑판 부원들이 총 동원돼 일렁이는 해면을 뚫어져라 주시했지만 허탕이었다. 이따금씩 떠다니는 물체를 발견하긴 했지만 사람이 아닌 단순 부유물일 뿐이었다.

그때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경비정 2척과 항공수색기 비치가 나타났다. 송 가스장은 “굉음과 함께 저공비행을 하며 익수자를 수색하는 비치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수자를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더해 줬다”고 회고했다.

식사도 거른 채 3시간 째 수색에 나선 승무원들이 차츰차츰 지치기 시작했다. 해수면에 반사된 빛과 보이지 않는 성과에 눈도 마음도 피로해 진 것이다.

송 가스장은 “아무리 추락예상 지점이 정확한 편이라고 해도 이 광활한 바다에 빠진 사람을 찾아낸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며 “아무런 표식 없이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만 사람의 형상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느냐”고 당시의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있다, 있어! 뭔가 있어”

마음 한 구석에 체념을 품은 승무원들이 하나 둘 늘어날 즈음, 갑판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선교를 울렸다. 어지간한 소형어선도 잘 보이지 않는 약 1.5~2m 높이 파도사이로 조그맣고 검은 물체가 출몰을 반복하고 있었다.

“사람입니다!”
“어디 있나?”
“보이지 않습니다, 목표 사라졌습니다.”
“저기 있습니다! 10시 방향! 베어링 095도, 거리 약 0.5마일!”

때마침 바람과 파도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다. 물표를 놓쳤다 다시 찾기를 수차례 반복하자 강 선장이 결단을 내렸다.

   
한진수르호 강명진 선장이 익수자 구조를 위해 구명정을 강하하는 모습.
“본선에서 구조를 시행한다. 당직 사관은 계속 위치를 파악하고 가스장은 구조반을 구성해서 구조정을 준비하도록!”

송 가스장은 “해상 보안청 경비정과 머스크 파이퍼호와는 상당히 떨어진 거리였으며 본선에서 위치를 타전했지만 그쪽에선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지 접근할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며 “타선에서 어떤 액션을 취하기를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자칫 어렵사리 발견한 익수자를 다시 놓칠 수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진수르호는 천천히 익수자가 있는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됐다.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조선술. 길이 300m에 육박하는 거대한 선박을 바람과 파도를 막으면서 익수자와 구조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조선을 해야 하는 고도의 정밀성이 필요했다.

바람을 막으며 타력으로만 익수자를 향해 접근하게 된 이상적인 상황이었지만 약 3시간 이상 표류한 익수자를 구조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바다 속에서 체온과 부력을 보존해 줄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못한 익수자는 일분일초가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망설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선장님, 접근해서 직접 끌어올리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구명정 사용을 제안합니다.”

강 선장은 또 다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강 선장은 엔진을 정지시키고 선체가 풍상 측으로 향하도록 조선을 완료한 다음 명령을 하달했다.

“구명정 강하 준비.”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선장의 명령에 승무원들은 익숙한 움직임으로 구명정을 강하했다. 겨우 일분 남짓한 시간에 모든 고박장치를 풀고 하강준비를 완료한 승무원들은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이윽고 내려진 강하명령. 1항사, 가스기사, 갑판수 등 구조요원 4명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벨트를 채웠다. 브레이크 레버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25미터에 이르는 높이를 단번에 강하했다.

◆망망대해 위 목숨 건 사투

구조된 익수자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붉게 충혈 된 눈과 체온을 잃어 푸르게 변색된 입술, 이미 퉁퉁 부어오른 익수자의 몸엔 이름 모를 수십마리의 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I want to go home….”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익수자가 구조요원에게 건넨 첫 마디었다. 그는 머스크 파이퍼호 ‘MOTORMAN(모터먼)’으로 우리나라 ‘OILER(오일러)’과 비슷한 직급이었다.

   
동중국해상에 빠진 필리핀 모터먼을 구한 한진수르호 선원들.
송 가스장은 “필리핀 국적의 서른 여덟 살인 그가 더듬거리며 물에 빠졌을 때 가족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하더라”며 “필리핀 국적임에도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특별히 말은 필요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한진수르호 승무원들에게 언어를 초월한 온몸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는 게 송 가스장 전언이다.

장시간 표류 끝에 지쳐 잠든 그를 두고 어떻게 인도할 것인지 협의가 진행됐다. 약 2시간30분에 걸친 협의 끝에 그의 신변인도는 헬리콥터를 이용해 일본으로 이송하는 방법으로 결정됐다.

하선지는 일본 큐슈의 가고시마항. 헬리콥터 기동범위는 100마일 정도에 불과해 한진수르호가 직접 가고시마 인근 해역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원 항로보다 약 200마일 이상 이로해 약 5시간 만에 가고시마항에 도착하자, 멀리서 헬리콥터 로터 굉음소리가 들려왔다.

   
익수자 인도를 위해 헬리콥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송 가스장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헬리콥터로 이송되기 직전 살짝 미소를 지으며 ‘Thank you, friends. Thank you Hanjin Sur.’이라고 하더라”며 “우리 삶의 터전인 바다의 엄격함과 냉엄함을 몸소 느끼고 바다에서 사람을 구해내면 복잡한 행정절차가 따른다는 것에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거운 감정을 느낀 것도 사실”이라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