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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현 사장학] 오지랖 넓어 번 일 ‘관리 회계’

[제27강] 쉬운 말의 경영학 ‘회계·재무관리1’

허달 코치 기자  2012.06.08 10: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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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앞의 제25강을 쓰면서 1968년 필자가 뒤늦게 경영대학원에 적을 두고 도대체 경영학을 전공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공부를 하는가에 관심을 가져 보았다는 소회를 적어본 적이 있었다.

3학기만을 겨우 끝낸 당시 짧은 생각으로는, 그저 경상계열은 이런 공부를 하는구나, 경영이란 상식에 준하는 일에 좀 근사한 말(Terminology)을 영어 섞어 붙여 격을 높여 놓은 것 아닌가 하는 정도의 감회였는데, 뜻밖에 이 짧은 경영대학원 중퇴 경력이 내 직장생활의 진로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필자가 자신을 ‘석유화학 1세대’라고 자임(自任)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나프타분해센터 프로젝트가 끝나고 팀이 해체되자, 필자는 우리 팀이 지은 공장인 나프타분해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창설된 사업부 조직인 석유화학사업부문에 기획과장이라는 직책을 받아 보임되었다.

   
 
기획과라고는 하지만 나 같은 엔지니어를 과장으로 앉혀 놓았으니, 기술기획과(技術企劃課)의 성격이 짙은 업무 분장이어서, 사업부 운영을 책임지는 미국인 부사장, 그 밑의 총괄 부장인 까마득한 화공과 선배 부장을 직속상사로 모시는 조직이었다. 말하자면, 사업부문 기능 중에 공장의 생산 기능, 본사의 마케팅 기능을 빼고 나면, 나머지 잡동사니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그런 성격의 부서였다고 설명하면 알기 쉬울 것이다.

우리 부장 밑에는 기획과 이외에 또 하나 화학회계과라는 과(課) 조직이 하나 더 있어서 공인회계사 자격을 가진 나이 듬직한 회계과장이 보임되어 있었지만, 업무의 성격 상 기획과장인 내가 선임과장의 역할을 하도록 조직되어 있었다.

당시 사업부문을 총괄하던 Gulf 사(社) 파견 임원은 프랑스 조상의 이름을 물려 받은 미국인 부사장 Mr. 코모(Comeaux)라는 사나이였는데, 나이는 30대 중반, 미국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뒤 MBA를 이수한 전형적인 젊은 CEO 후보였으며, 후진국 합작기업인 유공의 석유화학담당 부사장으로 부임하게 된 것도 이를 테면 그에게는 경영자 수업의 한 단계였던 셈이었다.

코모 부사장이 부임한 후, 자신이 의문 갖는 경영사항에 대하여 끊임없이 노란색 메모지를 총괄부장인 필자의 보스에게 써내려 보내기 시작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40대 중반의 석유화학부장은 자신의 젊은 보스인 부사장이 내려 보내는 그 노랑 쪽지(yellow slip)에 매우 시큰둥하게 반응하여, 자신의 지시나 스스로의 생각을 첨가하는 바 없이, 언제나 ‘Please Reply’ 두 단어만을 써 얹어 내게로 패스하였다는 사실이다.

질문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였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규모는 작아도 신설된 석유화학사업부문이 별개의 이익중심(Profit Center)인 사업단위였기 때문이었다.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도 유공의 주 사업인 정유사업 부문과는 달리 걸프의 화학사업 자회사(子會社)에 보고하도록 분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현금만 관리하지 않을 뿐, 회계장부가 분리 유지되고 있어서, 매월 결산도 따로, 경영성과보고도 따로, 경영분석도 따로 하여야 하는 눈, 코, 귀, 입(耳目口鼻) 모두 달린 독립회사 운영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노란 쪽지를 발행하는 속도에 비해 도저히 내 능력이 미치지 않아, 내 책상 옆 벽은 항상 미결(未決)된 노란 쪽지로 도배되어 있었던 것이 그 시절 내 꿈에까지 등장하던 Yellow Slip 공포증 추억이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이 시기에 나는 부득이 관리회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코모 부사장이 석유화학부장 원 쿠션 먹여 보내는 노란색 메모에는 분야별 구분이 전혀 없이 회사 CEO가 관심 가질만한 모든 상황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혀져 있곤 하였었다.

예컨대, 공장의 예기치 않은 사고에 이은 Emergency Shutdown으로 이익계획이 망가져 버린 어느 달, 부사장이 예산과 실적의 차이분석을 요구해 왔다. 우리 부장은 이 설명을 당연히 회계 사항으로 보아 화학회계과장에게 답변하라고 그 공포의 노란 쪽지를 교통정리 하여 넘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회계과장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예상치 않아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던 긴급조업정지가 생겨 생산이 줄고 수출 물량이 줄어 이익이 아니라 손실이 생겼으니 그런 줄 알면 될 것인데, 어떻게 더 설명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결국 필자에게 들고 오게 되었다.

‘네가 영어 나부랭이를 좀 씨부리니 말로 설명을 해서 입막음을 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회계과장이 앉은 면전에서 백지를 펴 놓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Shutdown에 의한 직접 손실

- Flaring Loss : 당시 우리 공장의 경우는 Emergency Shutdown의 경우, 품질 규격을 벗어난 가스 상태의 제품을 태워버려야 했는데 그 직접 손실량을 원료가(價)로 환산하여 분류해 냄

- Shutdown/Restartup Cost 증분(增分): 높은 온도에서 운전하던 공장을 수리하기 위해 온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재 가동해야 하는데, 스팀, 전기, 냉각수 등 유틸리티가 추가적으로 소모되었으므로 이를 산출

- Shutdown direct/indirect maintenance: 공무부에서 발생을 통보해 온 직접 및 배부 수리비용

2. 생산감소에 기인한 기회이익 감소

- 수출 감소 (수출 감소량 X 변동마진, 생산량이 줄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고가인 내수 시장은 공급하였으므로, 수출량의 감소에 따른 기회이익 감소를 산출)

3. 기타 unexplained (위와 같이 분석해도 재고 평가법 등 회계 규칙 상의 문제를 포함하여 설명하기에는 복잡하고 알아 봤자 경영활동에는 도움이 안 되는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를 뭉뚱그려 표현하면 됨)

회계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자기는 못하겠다고 쪽지를 내 책상 위에 던져두고 물러났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자금흐름계산서 등 재무보고서를 마지막 1원까지를 맞추는 것이 임무인 회계과장의 입장으로 보면, 그 투철한 공인회계사의 정확성을 다 버리고 위와 같은 얼치기 설명자료를 도출해 내는 일은 불가능하고 또 무의미한 임무로 보였을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예산 작성 시와 당월의 원료, 유틸리티 등의 단가가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다음, 굳이 회계자료에 집착하지 않고 예산 작성 시 사용했던 표준 원가 자료 등을 동원하여 변동마진을 추정 산출하고, 위 표의 공란을 채워서 부장과 부사장 앞에 들고 가게 되었는데, 부사장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기뻐한 것은 좋았지만, 아뿔싸, 이 잘난 척 한 것이 원인이 되어 그러지 않아도 오지랖 넓다는 손가락질을 받던 필자의 일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 것이었다. 관리회계 업무가 바로 그것이었다.

사족이지만, 당시의 코모 부사장은 이 사건 이후 필자와 공유하는 Language인 경영대학원 출신자들의 경영용어 몇 마디에 그만 뿅 가버려서 내 오지랖을 진짜 능력으로 오판하게 되었다. 필자를 차세대 경영자로 키운다는 둥 해가면서, Gulf 본사에 여러 차례 경영연수를 보내는 등, 많은 특전을 제공하였던 것도 모두 이 오판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다음 회에서는 ‘회계재무관리2’ 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