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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식약청 ‘사후피임약’ 후폭풍 피할 궁리만 해서야…

조민경 기자 기자  2012.06.07 17: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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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난항 끝에 사후피임약 노레보 정(레보노르게스트렐 제제)이 일반의약품(일반약)으로 전환됐다. 확정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조만간 사후피임약(응급·긴급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의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데다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과정을 남겨두고 있는 만큼 일반의약품 전환 확정을 단정 짓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특히,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확정하겠다’며 일반의약품 전환 불발 여지를 남겨둬 확정까지는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식약청은 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약품 재분류(안) 및 향후계획을 발표했다. 식약청은 앞서 국내 허가된 완제의약품 총 3만9254개 품목 중 6879개 품목을 대상으로 재분류를 검토, 이날 이중 526개 품목을 재분류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중 무엇보다 이번 의약품 재분류 과정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레보노르게스트렐 제제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이다. 레보노르게스트렐 제제 사후피임약은 현재 국내 11개 품목이 허가돼 있으며 노레보 정이 가장 대표적인 제품이다. 사후피임약은 성관계 후 72시간(3일) 내 복용하면 수정란의 자궁 착상을 막아 피임효과를 나타내는 약으로, 현행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있어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매할 수 있다. 

이 같은 사후피임약 노레보 정이 의약품 재분류 대상에 포함되면서부터 의학계와 약사계·시민단체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를 중심으로 한 의학계는 오남용 문제와 부작용 위험을 주된 이유로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해왔다. 반면, 약사계와 일부 시민단체는 현재 노레보 정 구입의 어려움과 낙태예방을 명목으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찬반 논쟁이 과열돼왔지만, 식약청은 “아직 검토 중이다. (사후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은)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만 고수해왔다.

이번 의약품 재분류(안) 발표가 있기 약 일주일 전인 지난달 30일에는 일부 매체가 ‘사후피임약 노레보 약국 구입 가능해진다’는 내용을 보도하자 해명자료를 배포, “사실이 아니다. 최종 결정된 바가 없다”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이 있은 뒤 일주일여가 지난 이날 식약청이 발표한 의약품 재분류(안) 및 향후계획에는 사후피임약 노레보 정의 일반의약품 전환 내용이 포함됐다.

사전에 이 같은 전환 사실이 알려지면 찬반 논쟁이 치열해질 것이 뻔한데다, 오남용 위험으로 전환을 반대하는 단체들의 비난이 쏟아질 것을 염려해 끝까지 쉬쉬하다 발표한 꼴이다. 

‘전환이 결정된 바 없다’고 끝까지 발뺌하다 발표할 때가 돼서야 ‘전환했다’고 발표한 식약청이 뒤늦은 전환 발표로 얻은 게 무엇인지 묻고 싶다.

또, 이번 사후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 발표에서도 확정을 위한 방안모색 보다는 ‘각계 의견 종합검토·공청회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며 비난 피하기에 치중하는 모습은 아쉬운 대목이다. 여전히 비난이 거세지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국민의 건강·안전을 지켜야할 책무가 있는 식약청의 입장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난 회피식의 대처는 더 큰 비난과 불신을 자초하는 처사다. 

이미 의약품 재분류 과정에서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찬반 양측의 의견을 수렴·조율해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이후 올바른 사용방법과 오남용 방지 등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