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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골든브릿지證 노조 김호열 지부장

"우리 모태는 노사공동경영 약정이었는데…노동운동 출신 회장이 노조를 탄압하나요?

이정하 기자 기자  2012.06.05 19: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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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증권사 직원들이 파업하는 건 솔직히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죠. 사회적으로 화이트칼라고, 귀족노동자로 분류되니까요. 하지만 처음 회사를 인수했을 때 약속했던 ‘공동경영약정’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경영방식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산업노조의 파업에 비해 금융노조의 파업은 드물다. 특히 증권사의 파업은 참 보기 드물다. 증권업의 잦은 이직과 배운 사람들이라는 꼬리표 때문일까. 파업이 쉽게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무산되기 십상이다. 금융권 노조를 ‘모래알 조직’이라고 혹평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난 4월23일 시작된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파업은 5일 현재 44일차에 접어들었다. 두 달째로 연장된 사측과 노조의 갈등은 주총을 앞두고 더욱 심화하는 양상이다.

노조는 “우리사주조합 조합 추천 이사를 일방적으로 배제했다”며 총력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밝혔고, 사측은 “주총을 파업의 선전 무대로 삼을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처음부터 노사 관계가 좋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2005년 이상준 회장이 골든브릿지증권을 인수할 당시만하더라도 노조는 이를 적극 지지했다. 이에 대한 화답이었을까? 이 회장은 ‘공동경영약정’을 체결하고 직원의 복지증진과 고용유지를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노사갈등이 회사 내부의 다툼을 넘어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 비난과 공방 속에 골든브릿지는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고 있는 것. 만인의 부러움을 받던 노사 관계가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25일 오후 골든브릿지증권 김호열 지부장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골든브릿지 노사, 지난 7년 무슨 일이?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골든브릿지증권 본사 앞은 돗자리를 깔고 시위에 동참한 직원들로 북적였다. 햇살이 제법 따사로웠지만 직원들은 노동가를 틀어놓고 도심 한가운데서 금요일 오후를 맞고 있었다. 28일이 석가탄신일인 관계로 징검다리 연휴를 앞둔 상황이었지만 직원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9층 복도를 개조한 번잡한 노조 사무실에서 김호열 지부장을 만날 수 있었다. 따로 질문도 할 거 없이 김 지부장은 파업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공동경영약정서’는 세월이 흐른다고 희미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 골든브릿지증권을 있게 한 모태죠. 이건 법적 효력이 있는 서약서일 뿐만 아니라. 회장과 직원의 최소한의 약속인거죠. 이런 약속을 단독으로 깨다뇨.”

노조에 따르면 논란의 핵심인 ‘공동경영협정’은 2005년 이상준 회장이 골든브릿지를 인수할 당시 맺은 약정서다. 지난 1998년 영국의 리젠트퍼시픽그룹(Regent Pacific Group)이 인수한 대유리젠트증권은 2002년 일은증권을 합병하면서 골든브릿지증권으로 거듭났다.

이후 리젠트퍼시픽그룹 자회사 브릿지인베스트먼트홀딩스(BIH)가 유상증자, 사옥매각 등을 통해 ‘먹튀’ 논란이 일었고, 노조는 외국계 대주주를 고발하면서까지 편법 매각을 반대했다.

이후 현 이상준 회장이 골든브릿지증권의 인수 의지를 적극 드러냈고 노조는 △노동운동 경험 △서울대 출신이라는 기대감 △비즈니스 역량 등이 높이 평가하며 이 회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 과정을 통해 이 회장은 비교적 낮은 가격에 골든브릿지를 인수할 수 있었고, 노조는 공동경영을 보장하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브릿지증권 공동인수와 경영에 관한 약정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호열 지부장은 “이번 노조 파업은 단순 약정서 해지를 두고 일어난 일이 아니다”며 “지난 7년간 이상준 회장이 보여준 단독적 태도와 실험적이긴 하나 현실성을 무시한 경영방식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SOP·복합금융센터 이슈…마찰은 ‘일상다반사’

“우리 조직은 3명이 하나의 팀, 3개의 팀은 하나의 본부를 이루고 있어요. 업무 분량이나 중요도에 따라 인원이 부족하거나 남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그래도 우리 조직은 모두 ‘3’으로 이뤄져있죠. 이 회장은 ‘3’이 자연계에서 가장 안정된 숫자로 믿기 때문이죠. 그가 얼마나 이상주의자인지를 알 수 있는 일부분이기도 하죠.”

노조와 이 회장의 갈등은 이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2008년 말 노조는 ‘공동경영약정’에 명시돼 있는 종업원지주제도(ESOP) 시행을 촉구했고 이 회장이 이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국내 인수·합병(M&A)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했던 ESOP는 골든브릿지증권 직원들을 인수 주체로 올려놓겠다는 약속에서부터 시작됐다. 결과적으로는 노사 공동경영 신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내부적으로 노사갈등의 시발점이 됐다.

약속은 노조와의 갈등 끝에 1년이 지난 뒤에서야 지켜졌다. 그는 “이 회장도 우리에게, 우리도 이 회장에서 갖고 있었던 환상이 깨지고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후에도 복합금융센터 설치를 두고 갈등을 겪었다. 2007년 1월 이 회장은 증권과 캐피탈, 자산운용 업무를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지점을 열었다. 강남에 1호점 이어 2009년 2호점을 충정로에 개소했다. 당초 2010년까지 전국에 20여개의 복합금융센터를 열고 자산관리사를 1000여명까지 늘린다는 계획은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강남 1호점은 지금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반대는 많았어요.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증권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캐피탈은 제1금융권에서 밀린 고객들이 어쩔 수 없이 고금리 대출을 받는 곳이고, 증권은 여유자금을 가진 고객이 투자하는 곳이죠. 고객이 겹치지 않는데 어떻게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 회장이 복합금융센터에 보험설계사들의 강력한 영업력을 접목시키면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으나 증권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결국 100억원가량의 손실만을 떠 앉은 채, 지점 폐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228억원 파생상품 사고는 전문가 충원 외면 탓

김 지부장은 또한 직원들이 합심해 똘똘 뭉칠 수 있는 이유로 이 회장의 도덕성 문제를 지적했다. 즉 사람을 아낄 줄 모르는 리더라는 것.

그는 농담조로 “우리 회사에는 입사 3개월 내에 나간다. 혹 버티면 6개월 내에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라며 “이 회장의 이상적인 욕구를 현실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자질부족이라고 폄하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조합원 106명 중 유가휴직자 등 12명을 제외한 94명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타 증권사에 비해 애사심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여기저기에 인수되면서 시달린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미소를 짓던 그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

   
골든브릿지증권 노조 김호열 지부장이 회사의 과거와 직원들의애사심을 얘기하고 있다. 
“과거 골든브릿지는 서울투자금융이었어요. 업계 상위 5위 안에 드는 급여와 직원 대우 등이 월등했기 때문에 과거 우수한 인력이 많이 몰린 곳이기도 하죠. 직원들이 단체행동은 부당함에 대한 몸부림이지 단순히 파업을 가장한 단체 행동이 아닙니다.”

지난해 초 주문착오 실수로 228억원의 손실을 가져왔던 파생상품 사고에 대해서는 “파생상품 담당은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가 맡고 있었으며 컴플라이언스팀은 증권에 대해 잘 모르는 낙하산 변호사 출신 직원 한명과 전진 비서 출신 여직원, 신입직원 3명으로 이뤄진 회사 내 구멍이었다”고 역설했다.

“낙하선 인사로 이뤄진 팀이었어요. 주문사고 이후 받은 외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회사가 해당 팀의 전문가 충원을 외면했기 때문에 발생했던 문제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노조는 사측의 인력 충족 미흡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사측은 건전하지 못한 기업 문화 때문이라며 “당초 노사 간 화합이라는 취지로 출범한 공동경영체제가 회사의 성장을 저해하고 기업시스템을 느슨하게 만들어 투자손실을 야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장기화하는 파업에서 노사합의는 언제쯤 도출될까. 파업을 시작하고 노사는 세 차례의 교섭을 진행했지만 모두 제대로 된 대화조차 진행하지 못한 채 10분 만에 결렬되고 말았다. 사측은 노조에 성실교섭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김 지부장은 이에 대해 파업이 10분 만에 결렬됐다는 얘기는 사실이라고 운을 뗀 후 말을 이었다.

“사실 협상이 들어가면 우리는 그들에게 달라질 게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항상 같은 말을 들어요. 그대로 옮기자면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도 경고했지만, 파업에 들어가기 전이나 후나 달라질 게 없다. 노조는 굴복하고 들어와라’입니다. 이런 이유로 협상은 결렬됐던 거예요. 더 이상 구걸할 게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회사의 입장 변화가 있을 때까지 끌고 갈 겁니다. 회사에서는 노조탄압을 위해 김앤장 변률사무소 등을 동원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단체협약 폐지는 곧 정리해고를 의미하는 건데 이제서야 포기할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