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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리포트] 유니켐 심양보 대표 "낭떠러지 앞에선 매순간 최선"

적대적M&A 위기에 자본잠식, 관리종목 지정 딛고 '흑자전환'

이수영 기자 기자  2012.05.31 12:5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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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낭떠러지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직전까지, 모든 순간이 최선이다.”

1989년 유가증권시장에 이름을 올린 회사의 주가는 한때 5000원대였다. 그러나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몇 년 사이 주가는 ‘10분의 1’ 토막이 났다. 소위 ‘기업사냥꾼’이 휩쓸고 간 뒤 자본의 절반 이상이 잠식됐고 한국거래소로부터 ‘관리종목’ 낙인이 찍혔다. 낭떠러지였다. 곤두박질해 산산조각나지 않으려면 매일 매시간 뼈를 깎는 최선이 필요했다. 그리고 꼭 1년 만에 적자에서 벗어나 ‘순이익’을 냈다. 피혁제조 전문업체 유니켐(011330) 이야기다.

   
유니켐 심양보 대표이사.
자칫 공중분해될 뻔했던 유니켐을 흑자로 돌려세운 데는 심양보 대표의 역할이 컸다. 뙤약볕에 가죽 냄새 풀풀 풍기는 경기도 안산 본사에서 만난 심 대표는 상장사 CEO의 세련된 이미지 보다 ‘공장장’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거침없고 꾸밈없는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자동차용 시트(car seat)와 명품가방용 가죽을 생산하는 유니켐은 올해 1분기 매출액 26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6억원, 1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2억원의 영업손실과 17억원의 순손실을 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 1년 만에 흑자전환 “겨우 젖은 수건 짰을 뿐”

30년 가까이 피혁 업계를 누빈 그지만 작년에만 166억원의 당기손실을 기록한 회사를 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1분기 흑자전환 소감을 묻자 겸연쩍은 듯 말을 아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연초 사업계획에서 목표로 잡은 매출액 1400억원, 영업이익 107억원을 달성하려면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 이제 겨우 ‘젖은 수건 짠 정도’지요.”

2010년 12월 유니켐 단독 대표로 취임해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경영을 이끈 심 대표는 회사 살림살이부터 꼼꼼히 챙겼다. 부서별 법인카드를 모두 회수하고 현금 결제를 기본으로 씀씀이를 일일이 직접 살폈다.

정기주주총회에 나선 심 대표가 “회사만 살릴 수 있다면 내 연봉부터 깎겠다”고 공언하자 직원들은 업무용 차량을 반납하며 힘을 실어줬다. 소홀했던 영업전선도 다시 누볐다. 심 대표를 필두로 임직원이 전사적으로 매달리자 대기업도 움직였다.

유니켐은 현대∙기아자동차, 르노삼성 등 국내 완성차 그룹과 중견명품 ‘코치(COACH)’에 제품을 납품한다. 르노삼성 모든 차종의 카시트를 독점 공급하며 최근에는 기아자동차 ‘RP-MPV’(UN카렌스 후속)의 카시트 공급 계약을 따냈다.

◆ 대기업 움직인 힘은 손해 감안한 납품 신뢰 준수

심 대표는 올해 실적을 견인할 두 가지 요소로 원피(소 껍데기) 가격 하락 안정과 판매단가 인상을 강조했다. 생산원가에서 원피 값 비중은 75%에 달한다. 수익으로 곧장 이어지는 판가 인상 여부 역시 말할 것도 없다.

르노삼성은 올해 유니켐으로부터 공급받는 카시트의 납품단가(판가)를 종전보다 13.9% 인상하는데 합의했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심 대표는 “그래도 진심은 통하더라”며 말을 이었다.

   
심양보 대표(사진 왼쪽)가 직원들과 직접 공장에서 원단 제조 과정을 챙기고 있다.
“손해를 떠안더라도 거래처에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구조조정을 하면서 5년 전에 묶인 판가가 원가에도 못 미쳤지만 그대로 납품을 결정했지요. 거래선을 유지하기 위해서요. 작년에만 영업손실이 130억원에 달했지만 거래처와의 신뢰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말입니다. 납품 분량과 일정을 칼 같이 지키고 품질로 승부를 내겠다는 각오였습니다.”

지난해 르노삼성에 판가 인상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설마’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1월부터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되고 르노 본사가 직접 각 지역 해외법인의 판가 현황을 파악해 인상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르노가 우리를 믿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세상에 누가 물건사면서 웃돈 주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진심이 통하고 상식이 통했다고 봅니다. 이번 판가 인상으로 연간 30억~40억원의 이익을 더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심 대표는 판가인상을 넘어 더 큰 계획도 밝혔다. 르노자동차의 글로벌 벤더(vendor) 등록업체가 되는 것이 당장의 목표. 지난해 11월 공급망관리기준(QCDDM)을 통해 등록 작업에 착수한 유니켐은 향후 2~3년 내 국내를 넘어 해외 카시트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문어발 확장, 적대적 M&A 뿌리친 ‘책임경영’

유니켐의 전신은 1976년 설립된 신진피혁공업주식회사다. 1989년 기업공개를 거쳐 같은 해 12월12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고 2000년 4월 지금 사명인 유니켐으로 간판을 바꿨다.

피혁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빠지지 않을 만큼 입지를 다진 유니켐이 외풍이 시달린 것은 1999년 대주주였던 김모씨가 외부 인사에게 지분과 경영권을 넘기면서부터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3번의 감자와 6번의 유상증자를 거치면서 주가는 들쭉날쭉했다.

   
경기도 안산 유니켐 본사 전경. 자동차용 시트(car seat)와 명품가방 용 가죽을 생산하는 유니켐은 올해 1분기 매출액 266억원을 기록했고 각각 6억원, 1억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달성했다.
심 대표는 유니켐이 존폐 위기에 몰렸던 2010년 8월 사내이사로 취임하며 인연을 맺었다. 당시 회사는 4명의 공동대표 체제였다. 같은 해 9월 심 대표가 공동대표에 이름을 올렸을 때도 경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피혁 업계에서 유망했던 회사가 무너지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유니켐은 온갖 사업영역에 문어발처럼 발을 담갔지요. 본래 하던 업을 제쳐두고 금융업과 부동산 임대 같은 투기성 사업에 손을 댔으니 잘됐겠습니까. 그런데 당시 공동대표였던 나머지 인사들이 뜬금없이 임시주총을 제안합디다. 내막을 알고 보니 적대적 인수합병(M&A) 제의를 받고 회사를 넘길 셈이었더군요.”

어이없는 속셈에 심 대표는 임시주총 개최를 거부했다. 제일 잘하는 일에서 좋은 실적을 올리면 주주들은 자연히 따라올 줄 알았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다른 대표들이 소액주주들을 방패삼아 임시주총 소집을 밀어붙인 것.

“주총 의장은 물론 장소 섭외까지 모두 다른 대표들이 합심해 정하고 나니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지요. 방법이 달리 있겠습니까. 주총 직전까지 매일 밤 철야하다시피 주주들을 붙들고 사정했습니다. 다들 집이고 땅이고 담보 잡아 투자한 사람들인데 기업사냥꾼 손에 회사가 넘어가야 되겠냐며 설득했지요.”

다행히 뜻을 같이한 주주들이 심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2010년 12월 유니켐은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했고 심 대표는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섰다. 취임 1주일 만에 부실투성이 자회사 2곳을 매각하는 등 강한 회생 드라이브를 걸었다.

“회사 존폐가 걸린 문제에서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는 한 마디로 그는 당시의 의지를 드러냈다.

◆ “1주일에 한 번 명품관 들르는 이유는…”

청년 시절부터 피혁 업계에 몸담았던 심 대표는 대학시절 영문학도였다. 1960년대 가발 수출 사업을 했던 부친에게서 사업가 기질을 물려받은 그는 어학 재능을 살려 해외로 눈을 돌렸다.

1년간 직장생활을 마치고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일찌감치 중국, 홍콩 시장의 성장성을 눈여겨봤다. 1986년부터 대(對) 홍콩 무역에 손을 댔고 1994년 혈혈단신 현지로 건너갔다.

   
 
“인맥은 고사하고 맨땅에 헤딩하듯 건너간 홍콩에서 사업 수완을 키웠지요. 지금 생각하면 1960년대부터 수출 사업에 잔뼈가 굵으셨던 아버지의 외아들이었던 영향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눈에 밟혀 악착같이 자리를 잡았고 1년 반 만에 가족을 홍콩으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국내외를 오가며 피혁 사업에 매달릴 때 슬하의 두 딸도 넓은 세상에서 감각을 뽐냈다. 큰 딸은 중국에서 의대를 졸업해 미국 의사자격(USMLE)을 따기 위해 준비 중이고 작은 딸은 디자이너인 모친의 재능을 물려받아 영국의 명문 패션스쿨인 센트럴세인트마틴 입학을 눈앞에 뒀다.

현재 유니켐의 매출 비중 가운데 30%는 코치 핸드백용 가죽과 관련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여인천하’나 다름없는 가정 분위기 때문인지 심 대표는 카시트 시장만큼 명품 핸드백 시장에 대한 욕심도 남다르다.

코치의 고급 백화점 라인업인 ‘그랜드캐년’을 출시하면서 기술력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심 대표는 매주 한 번씩 백화점 명품관을 찾아 고급 핸드백 매장을 둘러보고 직접 제품을 만져보며 ‘공부’한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하자는 게 대표이사로서 제 각오입니다. 사업은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잘 키우면 예쁜 애완견 같지만 방치하면 맹수가 돼 사람을 물어뜯지요. 다 쓰러진 폐허에 이제 겨우 기둥을 세웠을 뿐입니다. 투자자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