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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몽골 사건 계기, ‘한국 기업 외국관료 매수 규제’ 관심↑

‘이례적 케이스’ 공정위도 주목…외국선 엄벌 물론 주가도 민감 반응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5.28 21: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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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김우중 회장 시대의 대우그룹이 ‘세계 경영’의 기치를 건 바 있지만, IMF구제금융 상처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여파를 딛고 2012년 현재 한국 기업들이 밖으로 뛰고 있는 실적은 실로 눈부시다. 이른바 글로벌 경영의 시대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기업의 다국적화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이러한 글로벌 경영의 이면에는 해외 현지법 엄수 여부는 물론 외국에서의 자국법 준수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한 바 있다. 외국 당국자의 매수 논란이나 외국에서는 문제가 안 되더라도 자국 법시스템상 용인되지 않는 자금 유통 등이 문제가 된 사례도 있다. 이제 우리도 이런 문제를 생각해야 할 시기가 열렸다는 지적이다.

28일, 도하 언론은 공정거래위원회발 결정문을 인용, 보도했다. 이 보도는 “대한항공과 미아트 몽골항공이 인천~울란바토르 노선의 신규경쟁사의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몽골정부에 부당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실행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25일자 공정위의 판단을 소개한 것이다.

특히 언론의 관심을 끈 대목은 이번 결정으로 몽골을 오가는 하늘길이 넓어질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시정의 조치가 이뤄지면 유사한 거리의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운임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항공료에서 일단 하락 움직임이 예상된다. 더욱이 증편 가능성(아시아나항공 취항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도 있다)으로 일단 스케쥴 자체에 판단 여지가 넓어진다는 점이 뭐니뭐니해도 소비자들에게는 유익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정위 “높은 운임 알짜노선 지키려 외국 당국에 압력” 지적

공정위에 따르면 양사는 한·몽골 항공협정 시행(1991년) 이후 현재까지 항공여객운송서비스 시장에서 인천~울란바토르 노선을 단독으로 운항, 직항노선의 거의 100%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최근 3년간 몽골노선의 월 평균 탑승률 최고치는 91%로 국제선 전노선 월평균 탑승률 최고치(84%)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고 한다. 인천~울란바토르 노선의 이익률도 2005~2010년 19~29%를 기록하며 전노선 평균 이익률(-9~3%)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 단독노선으로 인해 하계 성수기(7~8월)에 매년 좌석난 및 고가운임 문제가 반복돼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도 좀처럼 개선이 되지 않은 이유가 뭘까? 바로 여기에 언론들이 이번 단신에 관심을 크게 기울인 이유가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증편이 안 된 까닭, 즉 항공편수 증대 논의를 위해 개최된 한·몽골 항공당국 간 협상이 몽골 당국의 태도로 결렬된 원인이 이들 항공사들의 영향력 행사가 아니냐는 부분에 공정위는 주목했다.

공정위는 직접적으로 피심인들(대한항공과 미아트 몽골항공)이 노선 증편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양정부 간 이루어지는 항공회담에 부당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로 합의했다는 추정을 내놨다. 공정위는 이런 맥락에서 “(대한항공과 미아트 몽골항공의 그것은) 기존의 카르텔과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요로에 압력 행사 방식은 ‘여행비용 등 편의 제공’

항공사들이 외국 당국에 부당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지적인데, 이러한 압력의 힘은 부정한 이익 제공에 뿌리박은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에 따르면, 예를 들어, 대한항공이 2010년 몽골 항공당국의 고위간부와 가까운 후원자 20명을 제주로 초청해 1인당 80만원 상당의 항공권과 숙식비 등 경비 총 1600만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편의 제공이 호의와 대가성에서 상당히 모호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역사가 깊은 해외 선진국 기업일 수록 이미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하면서 이러한 이익 제공으로 편한 길을 찾는 유혹을 받은 경험이 있고, 이런 점에서 각종 통제를 받아온 사례가 누적돼 있다. 더욱이 자국에서 위법 사항이 되든(대한항공 건에서 보듯 당국이 이를 공정거래법 문제로 지적한 경우) 해외에서 현지 법률 위반이 되든 간에 가리지 않고, 이런 문제에 민감히 반응하는 것으로 추세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검찰, 1914년부터 외국 기업 뇌물 제공 건에 메스 경험

이런 경험에서 우리와 공정거래법 뿐만 아니라 여러 법률 체제는 물론 사법부 판례 등에서도 유사한(법학에서는 독일법을 일본을 통해 ‘계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흐름을 보여온 일본의 경우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14년 4월 ‘지멘스 사건’이라는 희대의 의옥(疑獄: 크고 복잡한 형사 사건)을 경험한다. 일본 해군의 ‘금강함(金剛艦)’ 발주에서 이를 수주하고 싶어 몸이 단 독일 지멘스는 해군 요로에 뇌물을 뿌렸다. 그런데 지멘스의 독일인 직원이 이 서류를 가지고 도쿄 주재 간부에게서 돈을 뜯으려다 실패하자 로이터통신 특파원에게 팔아 사건이 불거졌다.

그러다 이 독일인 직원은 독일에서 공갈미수죄로 기소, 사건화됐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일본 검찰이 사건을 들여다 본 것. 이것이 유명한 지멘스 사건으로,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일본검찰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앞에 나오는 사건 중 하나다.

당시 각종 사변을 겪으며 위상이 높았던 이른바 ‘천황의 군대’에 검찰이 수사를 편 이례적 사안인 점도 의미가 깊지만, 외국 기업의 일본 관련 비리에 일본의 사정 당국이 해부를 시도한 점에서도 상당히 의미있는 경험이라는 해석이다. 이러한 검찰 수사는 당시 해군 예산 증액에 비판적이었던 일본 신문들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단초가 됐고, 야당인 입헌동지회·입헌국민당·중정회가 내각 탄핵 결의안을 상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줬다.

미국 기업이 외국서 뇌물 뿌리면 주가가 흔들? FCPA 덕분

시계를 뒤로 돌려 금년 사건을 살펴 보자. 월마트가 멕시코에서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뇌물을 뿌렸다가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 혐의로 미국 법무부 조사를 받게 됐다는 외신이 지난 4월 나온 바 있다. 블룸버그 등은 미국 법무부가 월마트가 멕시코 내 매장 설립 인허가를 받기 위해 멕시코 합작회사를 통해, 지난 2005년 2400만달러에 이르는 뇌물을 제공한 의혹을 받는 문제에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월마트 주가는 4월23일(현지시간) 4.66% 급락했고, 이로 인해 시가총액이 하루만에 약 100억달러나 ‘공중분해’됐다.

이에 월마트 소속 일부 종업원들은 올해 6월 1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종업원 행동 지침서를 내놓으며 CEO를 비롯한 임원들의 연봉 지급안에 반발하고 있는 등 파장이 커졌다.

미국의 이런 시도는 자국에 들어온 외국 기업의 뇌물 논란에 칼을 댄 일본 지멘스 사건과는 방향이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자국 기업이 외국 자회사 등을 통해 해외 관료 등에게 부적절한 뇌물 등을 제공했는지 문제삼은 사례다. 자국의 시장을 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국의 기업에 대해 밖에서도 공정한 게임을 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미국 기업 돈 받은 외국 관료, 미 당국에 기소까지?

기업이 밖에서 뇌물 등 부정한 행보를 했다가 해외부패방지법 적용을 당할 수도 있지만, 이보다 형량면에서 더 불리한 법률을 적용당할 여지도 있다. 과거 빌 클린턴 대통령 시대에 미국 행정부는 마약거래 및 기타 불법 활동을 통해 획득한 돈을 미국을 통해 세탁하는 내국인 및 외국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1999년 11월).

당시 이 법안은 미국 내에서 돈세탁 혐의로 기소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외국의 범죄목록을 확대해 사기, 뇌물수수, 공금횡령 및 무기거래 등을 포함시키고 있어 화제를 모았다. 이밖에 이 법안은 1만달러 이상의 현금을 미국 외로 밀반출할 경우,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이후 2010년 1월에 미국 정부가 태국 당국자와 그 딸이 미국 계좌에서(영화제 기획 관련으로 미국 회사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은 사건(U.S. v. Juthamas Siriwan, U.S.District Court for the Central District of California, Case No.: CR 09 00081)에서 적용되는 등 실제 활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손쉬운 유혹, 하지만 여기 맛들리면 장사하기 점점 힘들다

영국도 근래 이런 부패 관련 응징 강화 물결을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당국이 회사 직원들의 부패 책임을 기업들에도 부과하는 새로운 부패방지 법안을 상정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는 부패 척결에 있어 종업원 행동으로 해석하도록 묶어 두면 액수가 큰 경우나 특히 해외에서 저지르는 일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즉 영국 회사들이 해외에서라도 부정 의혹을 일으키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부패를 ‘콴시’라는 미명 하에 가려오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중국에서도 관료나 기업 간부들이 부정한 돈을 받는 문제에 민감히 대응하고 실제로 강한 처벌을 언도하는 예가 목격되고 있다. 외국 전자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이통사 간부가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집행이 일시 유보, 개선 교화(‘하방’ 등 강도 높은 조치를 당하는 게 통례임)에 처해진 사례가 지난 해 널리 보도된 바 있다.

결국 각종 해외 계좌와 외국 지사 등을 무대로 글로벌 영업을 하는 시대인 만큼, 특히 회계나 관료 시스템이 아직 완비되지 못한 후진국에서 사업을 시도할 수록 부정에 대한 유혹을 많이 받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유혹이 큰 만큼이나, 부정한 행보를 보였다가는 여러 문제가 발생(예를 들어 후진국 A국 관료에 뇌물을 제공하기 위해 선진국 B국의 현지법인을 통해 A국이나 C국 등을 통해 자금을 이동시키는 경우 B국 사정기관에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할 여지 또한 커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법률의 적용 범위라는 형사법적인 논의에서 아카데믹하게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개혁하는 쪽, 입법론이라는 쪽으로 논의의 과제를 빠르게 넘겨야 할 시기로 이해된다. 즉, ‘국격’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이를 적용할 여러 경우의 숫자를 놓고 새로운 검토를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이미 무역 규모 등에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을 다수 갖게 된 한국의 경우, 외국 관료에 대한 편의 제공 등에 있어 미국의 각종 논의를 차용할 필요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몽골 건의 경우 부당한 이익의 제공은 포착됐지만, 이를 기반으로 부당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명시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아(이익과 압력 행사의 견련성 고리의 입증) 과징금은 부과되지 않은 경우다. 이와 같이 업무와 관련해 부당한 자금을 지원하는 사건에 대해 어느 범위까지 문제를 삼을지도 상당한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형사법에서 직무 연관성 인정 여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격 차원에서 기업에 강한 책임을 묻는다면 전통적 형사법보다는 책임 추궁에 더 넓게 범위를 그을 것이다.

이런 여러 사항에서, 대한항공의 몽골 건 자체는 희대의 부패 사안이라고 단정, 비판을 가할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 기업의 한국 내 부정, 한국 기업의 해외 부정 행위 등 여러 논점에 대해 우리 사정기관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또 그런 변화 와중에 우리 입법론은 어떤 논의를 해야 할지 시사점을 다량으로 던져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