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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KAL의 몽골 당국 압력, 어떻게 볼 것인가?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5.28 19: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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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금은 경제력이라는 측면에서 큰 힘이 없는 나라지만, 한때 아시아와 유럽을 아루르는 대제국을 세웠던 몽골은 여전히 자존심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으며 이 점이 익히 알려져 있다.

중국은 동북아 역사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동북공정' 외에도 이른바 경제적 동북공정을 시도해 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2003년 몽골을 방문해 3억달러의 저리 차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몽골은 이를 사양했다. 2005년에도 중국 고위 당국자가 이런 몽골에게 다시 2억달러를 제의했지만, 역시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몽골은 이런 큰 돈을 싸게 빌릴 수 있는 갈림길에서 초연할 수 없는 처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굳이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당장의 경제적 실익보다 큰 판단을 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2005년 당시 한국의 어느 언론은 이와 관련 몽골 당국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간파,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라는 칼럼을 내보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종속되면 결국 정치도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누구보다 잘 꿰뚫은 몽골 고위층의 도저한 판단 능력을 극찬한 칼럼으로 기억된다.

이런 자존심 외에도 몽골은 의리로도 이야깃거리가 된 적이 있다.

심각한 경제난이 북한이 해외 주재 공관들을 축소하는 문제를 검토, 추진할 때의 이야기다. 몽골에서 북한 공관이 철수를 하려고 하자, 이때 몽골 당국에서 차량 유지비 지원 등을 해 줄테니 철수만은 하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했다는 것이다. 몽골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나라로, 냉전 시대 내내 북한과도 오랜 관계를 맺어온 나라다. 이런 몽골이 우방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는 후문이다(몽골 주재 북한 공관은 1999년 패쇄, 2004년 재설치됐다). 

이런 강한 자존심과 의리를 잘 모르고서는 몽골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렵다.

근래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미아트 몽골항공의 담합 건에 관련, 결정을 하면서 몽골 당국에 대한 대한항공의 부당한 압력 행사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공정위는 이번 담합 건에 대해, 두 항공사가 직접 노선 증편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 간 이뤄지는 항공회담에 부당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 기존의 카르텔과 다르다고 분석했다.

주지하다시피, 몽골 항공 노선은 운임료 등에서 다른 노선에 비해 이익이 큰 편이다. 대한항공의 이 노선 이익률은 2005∼2010년 19∼29%에 달해 전 노선 평균 이익률(-9∼3%)의 10배가 넘는 수준을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토해양부가 고운임 등 이용객 불편을 줄이고자 몽골과의 항공회담을 통해 노선 경쟁화를 추진했으나 2005년 이후 지금까지 몽골 정부의 반대로 회담이 잇따라 결렬된 것도 대한항공의 영향력이 미쳤을 것으로 공정위는 추정했다(공정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2010년 몽골의 항공 당국의 고위간부와 가까운 후원자 20명을 제주로 초청해 각종 경비 총 1600만원을 제공했다. 이런 식으로 2005∼2010년 매년 2차례 이상 몽골 정부 관계자를 한국 및 다른 나라에 초청하면서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몽골에 대한항공이 그간 여러 사회공헌 행보를 한 점, 호감을 산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우려하는 대로 담합 당사자인 두 항공사(대한항공, 미아트 몽골항공)가 직접 노선 증편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처지에서 외국 당국에 영향력을 부정한 편의라는 방식으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은 우려스럽다.

위에서 소개한 대로, 몽골의 정치적 자존심과 의리는 작은 돈으로 일시에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몽골을 상대로 사업을 하면서 담합 운운하는 방식으로 접근했거나, 또 그 당국자들을 이익 제공이라는 식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면(물론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나) 이는 참 큰 문제다. 만약 공정위의 지적이 100% 사실로 드러난다면 외교적 경색은 차후의 문제요, 오히려 몽골의 마음을 얻는 데 그간 지출한 '부당한 압력' 비용의 수천수만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그것도 후진국을 상대로 하면서 그야말로 백옥 같이 모든 일을 추진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몽골 같이 자존심 강한 상대방을 오래 보려면, 더욱이 벗으로 삼으려면 행여 의혹이라 손치더라도 이처럼 부당한 압력, 부정한 이익 제공 운운 화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업 좀 편하게 하자고 자존심에 상처를 줄 여지를 만들어서야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을 대한항공 외에도 모든 글로벌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돌아가는 길이 오히려 빠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