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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한국판 언터처블, 불법 사금융 잡으려면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5.18 13: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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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987년 제작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언터처블’은 미국 금주법시대를 다룬 영화입니다. 갱과 이를 잡으려는 수사기관간의 대결을 그린 작품인데요.

실존한 유명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수사진의 끈질긴 추격과 번뜩이는 기지 발휘로 침몰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알 카포네는 밀주와 도박 등 검은 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폭력·살인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잡아넣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재무부 특별수사관인 엘리엇 네스가 이끄는 수사팀은 “술을 팔아서 돈 벌면서 세금을 제대로 안 낸다”는 논리를 적용합니다. 금주법시대이니 이런 소득을 신고할 방법이 마땅찮고, 그런데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이 (술 파는) 갱이라고 비껴갈 것은 또 아니므로 절묘한 수가 된 셈입니다. 이 갱단 소탕작전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네스는 훗날 시카고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가 생각나는 건 살인적인 이자를 뜯으며 돈을 굴려온 악덕 불법 사금융 관계자들에게 국세청 칼을 들이댔다는 발표 때문입니다. 국세청은 폭행·협박·인신매매 등 불법 채권 추심을 일삼은 악덕 사채업자 253명에 대해 세금 1597억원을 추징한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청와대에 직보해 이뤄낸 ‘불법 사금융 특별단속’이라는 ‘범정부 차원 융단폭격’의 한 단면이라 관심을 끕니다. 특히 음지에서 돈을 벌던 이들에게 일반 납세자처럼 “세금 받으러 왔소”라면서 세무조사, 추징은 물론 조세범처벌법상 검찰에 고발조치 등으로 착착 진행하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국세청의 행보를 곧이곧대로 ‘한국판 언터처블’이라고 평가하기엔 뭔가 아쉽습니다.

이는 탈세범에게 유독 관대한 한국의 법 현실이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조세범처벌법이 주로 정한 형량이 3년 이하인 경우라는 것이 걸립니다. 미국 언터처블 수사팀이 세금 포탈로 적용하겠다는 기발한 착상으로 밀고 들어갔을 때 갱들이 느꼈을 공포감이 국세청이 덮쳤을 때의 당혹감과 같다고 볼 수 있을까 안타까운 생각마저 듭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을 적용하면 악질 탈세범을 무기까지도 가둬둘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는 탈루 액수 제한이 큽니다.

물론, 국세청이 이 불법 사금융 척결의 전쟁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검찰이나 경찰, 금융위나 금감원이 찌르지 못할 부분을 해결할 유능한 집단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닙니다.

17일 국세청 소식통을 통해 언론에 드러났듯, 대부분의 사채업자는 축적한 재산을 타인 이름으로 보유하면서 호화 사치생활을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고 하니, 이런 얽히고 설킨 문제에 대해서 끈질기게 추척할 노하우를 가진 이들도 역시나 세리(稅吏)뿐이라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에서 대포통장, 차명계좌 추정을 위해 친인척 등 관련인 탈세행위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런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 와중에 생각해 봅니다. 조세포탈범 관련법령이 좀 무르다는 평판도 벗어날 겸, 국민 감정에 걸맞게 고쳐졌으면 하고 말입니다. 과거 조세범처벌법과 관련, 기술적으로 오류 처리된 세금 탈루 문제에까지 형사 처벌, 전과자가 양산된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국민 감정을 수용해 과태료 처분 등으로 바꿔보자는 개혁 논의가 정부 내부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 맥락에서, 정말 악질적인 사금융의 폐단을 벌하기 위해 관련법의 너무 낮은 형량을 상향 조정하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인된다면, 이번에도 수술을 추진하는 것을 검토해 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판 언터처블이 탄생하기 위해선 공평무사한 업무 집행과 헌신적인 공복 의식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상대하는 악의 크기만큼은 걸맞는 무기를 준비해 주는 것도 성과를 기대하고 성원을 보내기 전에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