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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산 킨텍스가 방을 안 빌려주는 날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5.13 09: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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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다 모여라 대한민국 모두 모여라 가슴을 열고…나 없는 것 너에게 있고 너 없는 것 내게 있으니…"

얼마 전 어느 결혼식장에서 하객으로 온 어느 후배를 오랜만에 마주치자, 이 노래가 생각났다.

2007년 경기도 일산 킨텍스의 어느 행사 현장, 대통합민주신당 당가를 어느 새 외웠는지 흥얼흥얼거리며 기사를 쓰고 있었던 후배의 옆모습이 생각나서다. 잠깐 속으로 웃었던 기억도 난다.

대선을 앞두고, 지금은 없어진 대통합민주신당(정동영 후보를 내세워 이명박 현 대통령과 대선 경쟁을 했음)은 경기도 일산의 킨텍스에서 참 많은 행사를 열었다. 대선이 멀지 않은 상황에 당이 급조된 형국이라, 그렇잖아도 바쁜 대선 준비에 일이 더해졌던 셈이라 행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7년 연초부터 논의되어 온 '열린우리당 해체론'과 '제 3지대 창당론'이 현실화되는 와중에 많은 행사에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따라다녔다.

2007년 8월 열린우리당이 전당대회를 열고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기로 결정한 것도 일산 킨텍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엔 행사장에 따라서는 인터넷선을 가설해 배분해 주는 곳도 있었지만, 이게 여의치 않거나 선 배정에 문제가 있으면 와이브로로 무선 신호를 잡아서 본사로 원고를 송고하기도 했다(당시엔 지금과 같이 테더링해서 편하게 쓰는 기술은 발달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사진을 맡은 기자와 이야기도 해야 하고, 행사장에 같이 나온 회사 선배 중에 가장 선임에게 원고 체크를 중간에 받기도 해야 하니, 아마 가장 막내였던 그 후배는 일하느라 바쁘고, 혼나느라 바빴을 터이다.

그런 후배가 당가를(당원도 아니고 그냥 자주 취재를 나왔을 뿐인데) 흥얼거리고 있었으니 웃기기도 하고, 어쩐지 좀 안쓰럽기도 했던 기억이 오래 남았던 모양이다.

사실 대통합민주신당의 일산 킨텍스 뿐만 아니라 이 후배는 당시 많은 다른 출입처(정당)의 행사장에도 나와 함께 차출돼 긴급투입되기도 했다. 정치 기삿거리가 각 당마다 쏟아지고 일정이 빡빡해 정신이 없을 때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등 여러 정당 행사 관계로 부산 벡스코·서울 장충체육관·대구 실내체육관 같은 공간들을 돌아 다녔다. 많은 곳에서 정치 행사를 위해 공간을 대여해 줬고, 당원과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한켠엔 기자들도 꽤 자리를 차지하고 노트북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기사를 송고했다.

12일, 통합진보당이 당권파 대 비당권파 갈등을 봉합하고자 일산 킨텍스에서 중앙위원회를 열었다고 한다. 원만하고 건설적인 행사가 못 되고, 폭력으로 얼룩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안경이 날아가고 얼굴을 가격당하고 뒤에서 잡아당기고 소리지르고 하는 모습을 보여도 좋다고 일산 킨텍스에서 대관을 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산 킨텍스가, 그리고 많은 행사장에서 이제 정당 행사라면 방을 안 빌려준다고 고개를 내젓는 상황이 만약 일어난다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그리고, 비록 자기가 맡던 그 당(내지 그 당의 후신)이 아니라 다른 정당의 행사에서 빚어진 일이지만, '일산 킨텍스발'로 저 활극 소식을 전해들었을 그 후배는 지난 날을 떠올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후배 뿐만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 이번 일로 "저런 모습을 보노라면, 정치권 행사장 한켠에서 구부리고 기사 타자치며 보낸 내 세월이 어쩐지 아깝다는 기분이 든다"고 하지 않을까 두렵다(기자들에 대한 걱정을 했지만, 가장 충격을 받았을 건 무엇보다 국민 일반 아니겠냐는 점은 당연해 굳이 적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