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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우)와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좌)가 10일 첫 회동을 가졌다. |
[프라임경제] 19대 국회 여야 첫 원내사령탑이 정해졌다. 새누리당 이한구 대 민주통합당 박지원. 이 둘의 기싸움이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이유는 서로 걸어온 길이 너무 다르고 정치적으로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또 원내대표 선출과 동시에 대선정국으로 들어서 ‘허니문’ 없이 바로 ‘전투모드’로 돌입, 보수우파의 경제 정책 지휘자 이 원내대표와 정보정치의 달인 박 원내대표가 마주 앉을 협상테이블이 궁금하다.
깐깐한 원칙주의자 성향인 이 원내대표는 친박계 핵심 인사로 꼽힌다. 당내에서 ‘박근혜 경제 교사’로 불릴 만큼 경제통으로 통하고, 이런 이유에서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박근혜 노믹스’를 만들 최고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북 경주 출신으로 경북고를 졸업한 이 원내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를 거쳤고, 대우경제연구소장을 거쳐 정치권에 입문했다. 4선의 중진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 당의 정책위의장을 두 차례 지냈고, 국회 윤리특별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지냈다.
정치력이 강한 전략가 스타일인 박 원내대표는 전남 진도 출신으로 전남 목포에서 3선을 이뤘다. 목포 문태고, 단국대 상학과를 졸업했고,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주요 정치이력은 정부부처와 청와대다.
DJ계 핵심 인사로 꼽히는 박 원내대표는 뛰어난 정무감각과 정보력으로 똘똘 뭉쳤으며, 김대중과 노무현 두 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낸 ‘킹메이커’로 불린다. 특히 그의 화려한 인적 네트워크와 탄탄한 정보력, 협상에 능하다는 점은 당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정치를 해온 두 사람이지만 그동안 의정활동에서의 특별한 인연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대립 구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원내대표는 임기동안 당이 공약사항을 입법화해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복안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민간인 사찰 든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에 온 힘을 쏟을 예정이다. 실제 박 원내대표는 “원 구성은 물론 언론사 파업, 민간인 불법사찰, 측근비리, 부정선거, 쌍용자동차사태 등을 망라해 국회에서 필요하면 진상조사, 국정조사, 청문회도 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정리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렇다면 두 원내대표는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에 대해 “원래 정치판의 고수여서 어설프게 서생 식으로 하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고 했고, 박 원내대표는 “국회 현안을 일일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결재를 받으면 안 된다. 원내대표끼리 대화와 협상을 통해 과감하게 양보도 하고, 야당의 명분도 살려주는 책임있는 원내대표가 됐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어쨌거나 대선이라는 공동 목표를 두고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두 사람의 치열한 원내 주도권 확보 경쟁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여야 원내대표와 함께 양당의 정책위의장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원내대표와 함께 선출된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은 박 위원장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3선 의원이다.
반듯하고 온화한 성격과 조용한 일 처리로 박 위원장의 신임을 얻었고, 친박 성향이지만 계파를 불문하고 의원들과 두루두루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한때 친박 인사들과의 갈등으로 ‘탈박’을 선언했지만 평소 박 위원장이 진 정책위의장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고, 소원했던 친박 의원들과도 관계를 회복하고 있어 최근에는 ‘복박’으로 불리기도 한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진 의장은 서울남부지법에서 판사를 지냈으며, 1997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정책특보로 정치에 입문했다.
민주통합당의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당내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불린다. 전남 함평 출신으로 학다리고와 전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했고, 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김대중 정부시절 세제실장을 거쳐 관세청장으로 발탁된 이 의장은 노무현 정부시절 국세청장에 발탁되기도 했다. 이후 청와대 혁신관리수석비서관을 지낸 뒤 행정자치부와 건설교통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공직 혁신을 주도했고, 분양가상한제 도입 등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민주당 소속으로 광주 광산을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고, 세제 분야의 ‘4대 핵심’으로 꼽히는 국세청장, 관세청장,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국세심판원장을 모두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