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해 5월 선물투자에 실패한 40대 남성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에서 사제폭탄 범행을 저지른 지 1년여가 지났다. 당시 이 사건은 파생상품 시장 전반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을 키운 것은 물론 제도와 관련한 정치적 보완장치 마련에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 이후에도 관련 범죄는 끊이지 않았으며 파생상품을 이용한 탈세 행위도 늘어나는 추세다.
10일 한국거래소(이사장 김봉수)에 따르면 2010년 거래소 파생상품시장 거래량은 37억5190만1557계약으로 유럽 파생상품거래소(EUREX)의 18억9700만계약,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16억5600만계약을 넘어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거래대금은 1경4161조원에 이른다.
지난해에도 수치상 파생상품시장의 열기는 이어졌다. 거래량 39억1784만2698계약, 거래대금 1경6245조원에 달해 직전년도의 수준을 웃돈 것.
다만 2012년의 반기 전환점을 넘기 직전인 이달 8일 현재 거래량은 9억9335만계약, 거래대금은 4512조8750억원으로 앞선 2년에 비해 다소 주춤한 상태다. 이와 관련한 악성 이슈도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 도이치 사태와 사제폭탄 쇼크
지난 2010년 ‘도이치 사태’와 달리 지난해엔 유난히 입에 오르내린 관련 범죄가 많았다.
2010년 11월11일 국내 증시를 통째로 뒤엎은 ‘도이치사태’는 도이치증권 창구에서 2조4000억원가량의 대규모 매물이 쏟아지면서 코스피지수를 53포인트나 떨어뜨린 일대 이슈였다. 이때 도이치뱅크는 풋옵션 11억원어치를 미리 사들인 후 현물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워 448억원의 부당이익을 올렸다.
이후 지난해 1월11일엔 무허가 선물거래 웹사이트를 개설한 후 KOSPI200선물지수를 악용할 수 있는 전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개인 투자자들을 유혹, 부당이득을 거둔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같은 해 5월11일엔 선물투자 실패로 빚 독촉에 시달리던 김씨는 선배로부터 5000만원을 빌려 주가폭락을 노리고 강남버스터미널과 서울역에 사제폭탄을 설치, 범죄를 저질렀다. 김씨는 범행일자를 옵션만기일인 12일로 정하고 기준 종목의 주가가 행사가보다 하락할 때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풋옵션에 투자했다.
역시 같은 해 8월엔 금융위원회 인가 없이 사설 선물거래사이트를 개설, 2009년 6월부터 21개월간 수만 명의 회원들에게 5000억원 규모의 선물거래를 중개하고, 수수료 등 명목으로 400억원가량의 부당이익금을 챙긴 일당 92명을 적발했다.
한 달 후인 9월 중순에는 선물옵션 투자로 1년7개월 만에 200배의 수익을 거두며 유명세를 탄 S투자자문사 대표가 60여명의 투자자에게 3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히고 잠적했으며 11월 말경엔 회사 보유 주식 126억원어치를 빼돌려 개인 선물투자에 사용한 S건설사 전 직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 대기업 회장도 빠져들어…사기와 작전은 전형적
올해엔 1월부터 대기업 오너가 선물 이슈에 중심에 섰다. SK그룹 최태원 회장 형제의 횡령사건이 바로 그것.
1998년 지인을 따라 선물투자를 시작한 최 회장 형제는 2008년 5월까지 정상적인 방법으로 투자금을 모았지만 투자와 손실의 악순환으로 신용대출이 어려워지자 저축은행에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고 창업투자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명의의 차명대출까지 받았다.
그러다가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지켜보던 형제는 변동성 확대를 기회로 보고 선물투자를 위해 한 달 후 SK텔레콤, SKC&C 등 계열사 자금 497억원을 베넥스에 위장 납입하고 SK가스, SK E&S, 부산도시가스 등에 돈을 빼내 다른 펀드에 출자하도록 했다.
그러나 선물투자는 결국 실패했고 최재원 부회장은 다시 베넥스 자금 750억원을 저축은행 3곳에 예금한 후 이를 담보로 대출받아 베넥스 계좌 입금과 선물투자에 사용했다. 최 부회장은 또 차명으로 보유하던 한 업체의 비상장 주식 6590주를 당시 적정매수가인 29억원의 10배 규모인 230억원에 매수하도록 베넥스에 지시했고 이 중 180억원을 선물투자 자금으로 썼다.
이때 SK그룹 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등 사건 은폐를 꾀해 집중 비난을 받았다.
이후 같은 달 25일엔 증권사 계좌 관리 업무를 담당하던 S사 경영관리팀 차장이 선물투자 실패에 따른 투자금 회복을 위해 50차례에 걸쳐 회사 주식을 팔아 126억원을 빼돌린 후 선물에 재투자를 하다가 사법당국에 적발됐다.
고수익 보장을 미끼로 가짜 사모형펀드 상품을 만들어 101억원을 가로챈 유명 투자사 간부 B씨가 구속되는 사건은 이틀 후인 27일 발생했다. B씨에게 돈을 맡긴 27명의 투자자들은 적게는 7000만원에서 많게는 23억원까지 손실을 입었다. B씨 또한 선물옵션 투자로 금전적 피해를 본 후 원금 회복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2월 25일에는 S사 재무팀장 S씨가 20억원을 횡령, ELW풋과 ELW콜 상품에 횡령자금 중 1억3000만원을 투자해 3000만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S씨는 북한 경수로 폭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작전(시세조작)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개미들, 무덤에서 벗어나려면 추세 따르고 분산해야
국내 선물시장은 주식투자에서 쓴맛단맛 모두 맛본 개인투자자의 마지막 도박판, 개미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안을 만큼 막대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전용투자처라는 인식이 강하다.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루머와 별개로 실제 기관과 외국인은 미국과 중국 경기둔화 우려와 유로존 리스크가 크게 부각되는 날이면 강한 매도세로 지수를 하단으로 내리 끌었고 선물시장에서도 풋옵션을 대량으로 팔아 개인투자자들의 손해를 유도했다.
지수 하락을 예상하고 풋옵션 대량 저가매수 후 증시가 흔들리면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방법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이 때문에 가능한 빨리 외국인과 기관의 매매추이를 따르는 방법이 손실을 줄이는 투자법이라는 내용을 담은 리서치자료가 여러 증권사에서 나오기도 했다.
대형증권사의 한 파생담당 연구원은 “지수상승기 때 풋옵션을 지속 매수한 외국인들의 매매패턴은 투기성인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라며 “외국인들이 현물에서 내다팔아 지수 하락 유도 후 풋옵션에서 수익을 올리는 게 전형적 패턴이 됐다”고 설명했다.
IBK투자증권의 한 파생연구원도 “대규모로 이뤄지는 선물옵션 매매는 개미들의 무덤이라는데 동감한다”며 “금융시장 흐름 외에도 매크로 확률과 자금 동향까지 따져야하는 만큼 투자가 어렵고 위험부담이 커 신중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렇듯 시장 질서와 관련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사법당국의 감시도 강해졌고 금융당국도 KOSPI200 옵션의 거래단위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려 개인의 투자를 제한, 옵션시장 거래규모를 줄이기 위한 거래승수 조정 등으로 시장 안정을 꾀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에 단일 거래소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3년 연속 거래규모 1위를 기록하는 등 현물시장 규모에 비해 덩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아온 국내 파생상품 시장은 과거와 비교해 안정적인 모습을 찾고 있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KOSPI200 옵션 승수 조정 후 이전까지 2조원에 육박하던 KOSPI200 옵션의 일 평균 거래금액은 지난달 말 현재 8820억원 정도로 줄었으며 장내파생상품 예수금 역시 8조원가량으로 11조원에 이르던 지난해에 비해 규모가 크게 감소했다.
이에 대해 동양증권 이중호 연구원은 “승수인상 효과가 시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기에는 시점이 애매하지만 인상 조치로 거래대금과 거래량이 예상을 웃돈 정도로 감소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상당수 연구원들 역시 현재 거래량 감소가 언제까지 유지될 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하며 시장안정을 위한 근원적 차원의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한 연구원은 “증시가 조정 후 횡보장세를 보이는 때에는 수익률에 대한 갈증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주식투자의 재테크 메리트가 희미해지면 고수익을 갈구하는 개인투자자들이 파생상품시장을 다시 찾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결국 시장과 가격의 논리를 이해하고 위험관리에 중점을 맞춰야 하는 기본적 투자원칙을 지켜야 선물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데도 의견을 맞추고 있다.
현대증권 하용현 투자전략센터장은 “선물시장에 강점이 있는 현대증권 선물옵션팀도 요즘 힘들다고 하소연할 정도로 최근엔 확률로 접근해도 파생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변수가 많다”며 “확률적으로 불리해도 추세와 분산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