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김양, 김양이 우리집에 몇년 살았어?"
전남 순천시 동외동에서 40년 가까이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위각환(75) 위정형외과 원장. 위 원장이 최장기 근속자인 김영순(58) 간호사에게 몇년 정도 일했는지를 물어보면서 부른 호칭이다.
손주볼 나이의 김 간호사는 이 곳에서는 연로하신 원장님 앞에서는 '김양'으로 불리길 더 좋아한다. 실제로 김 간호사는 결혼 적령기 딸 3명을 둔 어머니이자 비공식 최고령 간호사이다. 근속연수가 얼추 30년 가까이 된다.
순천 위정형외과 위각환 원장(75)이 외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김영순 간호사(58). |
1970년대 병원 개원 당시만 해도 순천에는 도립병원(현 순천의료원)과 성가롤로병원 등의 종합병원 몇개만 있었을 뿐 개인병원이라고 해봐야 내과와 외과, 안과 등 과목별로 1~2개에 불과했다.
정형외과는 김학철 외과와 이곳 위정형외과 두군데 만이 있었다고. 그나마 김학철 외과는 90년대 문을 닫아 순천지역 개인병원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다.
이 때문인지 이 병원은 개원당시부터 써온 수술대와 기구, 정원수까지 세월이 흐를수록 같이 늙어가고 있다. 70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위 원장은 지금도 하루 40~50명씩의 외래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병실이 꽉찰 정도로 입원환자가 많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수술은 않는 대신 환자보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39년째 구도심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다보니 환자들 대부분이 단골 환자들이고, 나이대 또한 60,70대가 주류를 이룬다.
순천시 동외동 위정형외과. 지금은 수술환자가 없어 중단된 입원실(오른쪽) 건물로 야자수가 세월 만큼이나 훌쩍 자라있다. |
"원거리 노인양반이 많고 젊어서부터 쭉 봐온 것이 인연이랄까. 환자도 늙어가고 나도 늙어가고...이를테면 '경험이 제일이더라'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나를 찾는 환자가 있다고 봐요. 항상 느끼지만 의사가 아파봐야 환자의 심정을 압니다. 하다못해 감기로 고생도 해봐야 환자가 호소하는 한마디라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지요"
위 원장은 집성촌을 이루는 장흥군 관산읍이 고향이라고 한다. 관산중을 졸업한 뒤 광주고와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학병원 수련의를 거친뒤 순천에 외과의원을 개원했다.
젊어서는 순천에서는 '뼈'를 잘보는 의사로 유명했다. 불과 몇년 전까지도 전남도의사회 회장도 역임하는 등 의료계를 이끄는 주역으로도 활동했다. 자신의 피를 이어받아 장남도 정형외과 전문의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위 원장은 "내가 의대를 가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마 학교에서도 집안 환경이 그래서인지 의대를 권했고 아들 또한 정형외과 의사모습을 쭉 봐와서인지 정형외과 길을 걷게 됐다"며 전공과목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위 원장은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큰아들 위진상씨(44)는 전남동부권 최대규모 병원인 성가롤로병원 정형외과 과장을 거쳐 현재는 순천시 조례동 홈플러스 앞 플러스정형외과 공동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환자분들이 때때로 아버지(위각환)의 안부를 묻는 등 여전히 아버지의 영향권에 있다고 한다.
위진상 원장은 "아버지는 원래 말씀을 많이 안하신다. 아무래도 의사 직업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늘 보고 그러니까..."라면서 "아버지는 원래가 청렴하고 돈을 잘 모르신다. 경제관념이 없으시다. 일례로, 70년대 후반인가, 80년대 초반인가 아버지가 기사 아저씨한테 500원을 주면서 맥주랑 오징어랑 안주거리를 사와라고 하셨다. 500원으로는 살 수 없는데 그 정도로 경제관념이 없었다"며 청렴함을 배울 점으로 내세웠다.
아버지 위각환 원장은 "1950년대 의사의 길을 선택한데는 집에서 아프신 분을 밖으로 못나가게만 하는것도 (돈버는)수입으로 생각했다"며 "병원 치료하는것 보다 내가 집에서 밖에 못나가게 하는 수입이라는 기초적인 형태에서 의사의 길을 가게 됐다"고 회고했다.
개원 당시부터 사용돼 온 치료실 내부. 40년 가까이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지 않아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협찬되고 있다고 한다. |
의사인생 50여년의 보람을 묻는 질문에 위 원장은 "정형외과 환자들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돈많이 벌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환자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런 면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양심있게 했다는 말에 듣기도 좋고 환자들에 부당진료 않는다는 말에 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환자에 대해 "74년도에 막 개업했는데 어떤 환자가 골수염이 와서 우측상박골 전체가 뼈가 상해서 뼈조각이 기어나와 버렸다. 골수염이 생겨서 뼈가 완전히 골막에서 박리가 돼 버렸는데, 그걸 꾸준히 치료해준 것이 항상 생각난다"며 "돈을 몽땅 받았으면 생각이 안나는데 돈을 안받고 치료를 해줘서 당시 신문에도 나고 그랬다. 지금도 양심적이라는 말이 가장 듣기좋다. 그렇지만 내가 양심적이었나 되돌아보고 기왕이면 더 잘해갖고 그런소리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겸양의 말도 잊지 않았다.
위 원장은 환자가 뜸한 시간대는 직접 정원에 나가 정원수를 가꾸거나 세차를 하는 등 쉬지 않는다. 취재를 다녀온 지난주에도 주차장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사소한 물건 하나라도 자신의 손으로 가꾸며 직원들과도 가족처럼 지낸다.
2000년에 결혼한 뒤 위정형외과에서 일하고 있는 정성조 방사선사(42)는 "우리 의료기사들이 병원을 자주 옮겨다니는 등 주기가 짧은데, 내가 겪어본 바로는 가장 의사다운 의사이시다. 연세가 있어 수술을 안하셔서 그렇지 실력은 진짜 좋으시다"고 치켜 세웠다.
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의사의 실력보다 신도시의 깔끔한 인테리어로 된 병원이 환자를 잘 보는줄 아는데, 원장님은 연세가 있어 수술을 안하셔서 그렇지 진짜 실력이 좋으신 분이고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본받을만한 의사 선생님"이라고 강조했다.
간호사 겸 원무실 담당 배선자 간호사(44)도 "환자조회나 건강보험공단 청구를 위해서는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환자진료일지 등은 전부 수기로 쓰신다"고 위 원장의 섬세함을 표현했다. 배 간호사도 6년째 일하고 있다고 한다.
1988년산 금성사 에어콘이 지금도 가동되고 있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의 심볼마크(GoldStar)가 눈에 들어온다. |
정성조씨는 "1970년대 배경그림이 필요하다해서 입원실에서 영화를 찍었다. 무슨영화인지는 기억이 안난다. 아마 KBS 단막극인것 같다. 진찰실 테이블 사진 걸어놓고 촬영도 했다. 환자가 가슴을 다친 장면을 찍었다. 환자들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씀하신다. 방사선 기계만 바꿨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의원을 운영할 것이냐를 묻는 질문에 위 원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이라면서 "무슨일이든지 양심을 상대해서 정도를 걸으면 절대 당황해야할 일이라든가 그런것이 자연히 없어진다. 정도를 걸어라. 직원들 월급은 현상유지가 가장 속이 편하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