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사진)이 중국으로의 밀항 시도 전 우리은행에 예치돼 있던 거액의 회사 자금을 빼낸 것으로 알려져 기본 윤리마저 저버렸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 이 인출 행위에 대해 우리은행의 책임 논란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
횡령 당한 200억원이 일단 범죄자금으로 파악되면 환부 내지 가환부(수사기관이 아직 수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은 물건이지만 원소유주 편의 등의 사정을 감안, 임시로 돌려주는 일) 처리를 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본지 조사 결과, 그 외에도 세금 문제라는 복병이 급부상할 수 있는 여지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은행 논리, ‘온당한 회사 운전자금 인출’…그렇다면?
우리은행이 이번에 김 회장이 지난 3일 영업시간 이후 미래저축은행 자금을 보관하던 예금을 인출한 것과 관련, 일단은 “지급정지 사유가 발생하기 전이 아니냐”는 항변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증빙을 갖추고 돈을 찾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다는 논리다.
관계 당국은 일단 우리은행이 인출에 응한 데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신응호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6일 저축은행 영업정지 발표 브리핑에서 “김 회장이 마감(오후 4시) 후에 우리은행 수시입출금식 계좌(MMDA)에 넣어둔 돈을 빼냈다”고 전제하고 “(당국이 미래저축은행 전산망을 장악하려고 보낸) 감독관은 당일 대차대조표(BS)를 통해 확인을 하는데 마감 이후 거래는 다음날 BS에 나타나 조금 뒤늦게 파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신 부원장보는 “미래저축은행은 사전에 해당 지점에 마감시간 이후 돈을 빼겠다고 통보한 뒤 우리은행과 인출시점을 조율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어느 지점인지, 김 회장이 직접 왔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김 회장은 200억원을 인출한 뒤 70억원은 다시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황과 설명을 액면상으로 보면, 우리은행 쪽 행동에 문제가 없다는 쪽으로 기울긴 하지만, 일단 이 경우에 당국이 우리은행의 책임 없음을 완전히 굳혀주는 뉘앙스의 표현을 쓰는 데까지는 나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상 김 회장이 은행 영업시간 종료 이후 거액을 인출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일각에선 우리은행이 협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우리은행이 잘못된(도저히 온당한 운전자금 인출로 볼 수 없는) 협력을 한 경우, 신한은행과 동아건설간의 예치금 논란처럼 소송이 불거질 수 있다.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동아건설과 신한은행 모두에게 책임을 물은 판결이 근래 나왔다.
둘째, 우리은행 주변의 주장대로, 인출 자체에 법적 문제가 없는 경우다.
이 경우는 저축은행 문제로 흉흉한 가운데 거액을 인출 요구하는 사례에 대해, 시간을 끌며 재차 (다른 회사 고위 관계자 등에게) 확인 내지 저지를 했어야 하는지 등 도의적 책임만 남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거래 관계가 오랜 업체 등에서 급하게 결제할 자금을 못 찾았는데 영업시간 이후지만, ○○지점에서 돈을 찾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거절이 어렵다는 실무 측 언급도 있다. 문제는 이런 경우에 우리은행의 ‘쿨한’ 행보 때문에 미래저축은행이 과세 당국과 불유쾌한 정산을 해야 할 문제가 남는다는 것이다.
◆‘온당한 인출’ 논리 인정되면, 미래저축은행 법인에 인출분 관련 원천징수?
200억 횡령-밀항 시도 사건이 우리은행과 미래저축은행간의 자존심과 세금을 건 논리 대결로 번질 전망이다. 미래저축은행쪽이 이번 횡령금에 대한 원천징수 피해를 면하려 노력하다 보면 우리은행쪽에서 김찬경 회장측 인출 요구에 응한 점에 설명이 궁해질 여지가 있다. 반대로, 우리은행쪽에서 200억 인출 요청이 객관적으로 온당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미래저축은행쪽의 평소 운영 체계 등이 실상 대표 마음대로 움직이는 곳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을 낳을 소지가 생긴다. 사진은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
기재부는 2010년 9월14일 어느 회사로부터 제기된, 최대주주(이지만 법인등기부에 등재된 임원은 아님)가 횡령한 경우 이 자금을 회사가 손금 처리(비용 처리로 이해하면 쉬움)해야 할 건지, 불손금처리 할 것인지 등에 대해 답변을 한 바 있다.
이 경우 질문자(회사)는 갑설은 사내유보로 처리한다고 하고, 을설은 사외유출로 본다고 소개했다. 다시 을설을 보면, 유출된 날이 속하는 사업연도에 횡령당한 금액을 익금 처리하고, 그 귀속자에게 손금 처리한다고 했다(세금은 ‘법인에 원천징수’).
이 경우 기재부는 답변에서 무단으로 횡령한 경우, 특별히 회수를 전제로 한 경우가 아니면 그 지출 자체로 사외유출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무조건 사외유출로 볼 건 아니고, 인출된 금원을 회수하기 위한 노력, 인출한 실질경영자 등과 회사의 의사를 동일시 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판례를 보면, ‘대법 2008두1009’ 사건이나 ‘대법 2007두23323’ 사건에서 법원은 회사가 사실상 회장 등 실질적 경영자의 꼭두각시인지, 아닌지에 관심을 깊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 2007두23323’ 사건에서 “회사의 소액주주가 45% 이상이나 되는 코스닥 상장법인의 의사가 A씨 혹은 B씨의 의사와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회사가 (인출, 횡령을) 묵인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볼 때 횡령 당시 회수를 곧바로 못 했다고 해서 횡령액 상당을 사외유출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참고로, ‘대법 2008두1009’ 사건에서 대법원은 특별히 인출을 묵인한 게 아니라고 한 점에 대해서는 “회사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미래저축은행 사건을 보면, 미래저축은행이 김 회장의 인출 행보에 대해 묵인하지 않고 사후 회수에 적극 나설 정도로 제대로 의사 형성, 집행이 가능한 업체라는 점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입증하는 문제는 반대로 보면, 우리은행이 김 회장 쪽으로 흘러들어간 비정상적인 인출 행동을 회사 판단으로 바로 연결해 볼 정도로 구성되는가와 연결될 수 있다.
즉, 시중은행인 우리은행이 김 회장의 다소 무리한 인출, 수령을 묵인하고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정도면, 미래저축은행은 제대로 운영되는 유기체로서의 회사라기보다는 1인 기업 내지 사실상 경영자에게 끌려다니는 회사로 볼 것이다.
그런데, 김 회장의 이력을 볼 적에, 이 인물은 1999년 제주도에 본점을 둔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한 뒤 자산규모 10위권 내의 대형사로 키운 바 있다. 제주도에 본점을 두고서도 천안과 대전에 이어, 강남 등 서울에도 입성, 잠실과 테헤란로, 서대문 등 곳곳에 지점을 개설하고, 부동산PF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공격적인 확장전략을 펼쳤다.
이런 김 회장은 엄청난 사내 카리스마를 누렸을 것으로 보이고 그 외에도, ‘김 회장=회사’라는 인식을 내외에 각인시켰을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이 경우 을설에 따라 사외 유출로 보며, 그 횡령된 부분은 익금으로 처리하는 게 판례나 유관기관의 유권해석에 부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횡령된 금원은 그 부분만큼 귀속자에게 손금 처리를 하는데, 문제는 법인에서 원천 징수를 당한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은행이 무결점 행보를 한 것으로 입증하려 애를 쓸수록, 미래저축은행은 세금 부담이 한 건 더 생기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