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프랑스에 17년 만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7일 코스피 지수가 개장과 동시에 30포인트 이상 급락하는 등 유로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국내 주식시장은 물론 세계 경기에 복병으로 등장했다.
당장 지난 3월 유럽 25개국 정상이 서명한 ‘신(新)재정협약’의 틀이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적지 않다. 올랑드 당선자는 긴축재정을 골자로 하는 신재정협약에 대해 줄곧 재협상을 주장해왔다.
◆“올랑드, 신재정협약 무조건 반대 아니다”
국내 금융투자업계도 봉합 국면에 들어선 듯 보였던 유로존 재정위기가 프랑스의 정책 노선 변화로 더뎌질 것이라는 우려를 지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올랑드 후보의 당선이 국내 주식시장은 물론 유로존 사태 해결에도 직접적인 악재는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23일 발표된 유럽의 PMI(제조업분야 경기지표)는 시장예상치보다 낮은 47.4로 5개월 내 최저를 기록했다. 같은 달 26일 발표된 유럽 지역 경기신뢰지수도 92.8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찍었다.
동양증권(003470) 조병현 연구원은 “경제 지표가 빠르게 악화되면서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보다 낮은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다”며 “올랑드 당선자는 이에 대한 논의의 발단을 제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연구원은 또 “주식시장은 올랑드 당선자와 독일 메르켈 총리 간 협상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의견 마찰 가능성 때문에 일시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를 유로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른바 ‘정·반·합’ 과정으로 본다면 큰 고민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영증권 김재홍 연구원 역시 “프랑스 사회당이 신재정협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성장이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긴축 정책만으로는 재정 건전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올랑드 당선자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토러스투자증권은 올랑드 당선자가 유로존 회원국의 전체적인 공조를 깰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최근 유럽 각국의 경기가 빠르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긴축재정의 중요성보다 성장성 훼손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발표된 유럽의 PMI(제조업분야 경기지표)는 시장예상치보다 낮은 47.4로 5개월 내 최저를 기록했다. 같은 달 26일 발표된 유럽 지역 경기신뢰지수도 92.8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찍었다. |
이 증권사 이윤교 연구원은 “스페인 라호이 총리와 마찬가지로 올랑드 당선자가 유럽연합 차원의 공조를 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다음 달 초에 예정된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 구성될 경우 올랑드 당선자의 리더십이 약화될 수 있는 만큼 신재정협약을 둘러싼 독단적인 입장 변화는 힘들다”며 “프랑스의 정치적인 변수가 유로존의 불안을 증폭시킬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같은 증권사 황나영 연구원 역시 “올랑드 당선자의 등장은 그동안 유로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전적으로 긴축 중심이었다면 성장에도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견해가 새롭게 부각된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금융시장 불안을 확대시킬 수 있지만 성장성 확보와 재정건전화를 이행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대통령 혼자서 세상 바꿀 수 있을까?”
프랑스의 좌파 집권이 유로존 합의의 큰 틀을 깰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다른 요인과 더불어 금융시장의 단기적 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KDB대우증권(006800)은 올랑드 후보의 당선을 비롯해 선거결과가 시장에 결정적인 악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 경기 등 다른 요인과 함께 국내 증시가 일시적으로 전저점을 찍거나 박스권 하단을 돌파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증권사 이승우 연구원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선거 결과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긴축 외에는 유럽 문제를 풀어갈 방도가 마땅치 않고 △선거 공약을 100% 이행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유럽 국채만기 러시가 마무리돼 유동성 위기가 잦아든 만큼 선거결과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이 연구원은 “프랑스 대통령 한 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면 주식을 파는 게 낫고 아니라면 보유하는 게 맞다”며 “프랑스 대선 결과가 증시 조정의 구실은 될 수 있지만 시장을 강타하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유럽 각국에서 재정긴축에 대한 거부감이 선거 결과도 도출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유럽의 정치적 상황이 시장 등락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
이 연구원은 “유럽 외에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면 시장이 전저점 또는 박스권 이탈을 시도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며 “최근 미국의 경기 모멘텀이 둔화된 가운데 이는 핵심 수출주의 약세로 이어질 수 있고 이 것이 결국 시장 전체의 침체로 연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이런 상황에서는 음식료, 유통 등 내수 업종과 유틸리티 등을 중심으로 방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IT, 자동차 등 핵심 주도주에 대해서는 전저점 부근에서 재접근을 시도하고 화학, 기계 등은 이번 주 중국 경기 지표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게 유리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한편 신재정협약은 지난 3월 영국과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 25개국 정상이 합의한 것으로 각국 재정을 △구조적 재정적자 비율(GDP대비) 0.5% 이내 △총 부채비율(GDP대비)을 60% 이내로 유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오는 2013년 1월까지 총 25개국 중 12개국의 비준이 있으면 정식 발효된다.
프랑스는 비준 여부를 확정하지 않은 국가 중 유로존 내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로 꼽힌다. 올랑드 당선자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주도한 신재정협약이 지나치게 긴축을 강조한다며 성장정책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재협상을 요구한 바 있다.
올랑드 당선자는 6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치른 대선 결선투표에서 현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를 누르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지난 1995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이후 17년 만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에선 올랑드 당선자가 51.9%를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율은 81%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