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연해주지역에서 항일 빨치산 사령관을 지낸 김경천 장군의 일기가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소장 조규익) 학술자료총서1 ‘경천아일록’(학고방, 2012)이 바로 그것이다. 책은 제1부 현대어역본 및 해설, 제2부 원문정리본, 제3부 영인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여기에는 김경천이 일기에 직접 그린 전투요도와 지도 8장도 그대로 실려 있다.
이를 정리하고 현대한국어로 번역해낸 주인공은 카자흐스탄에서 20년을 거주해오고 있는 김병학 시인이다.
김경천과 아내 유정화. 이 사진은 김경천이 오랜만에 환국하여유정화와 혼인을 치른 1911년무렵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사진출처 최 아리따, 김 예브게니) |
그동안 국내 역사학계에도 이 일기가 소개되었지만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일록의 문체와 필체가 난해하고 특정한 시대적 상황이 행간의 이해를 가로막고 있어서 일기의 사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경천아일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이후 우리나라가 외세에 유린되어버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큰 부대를 이끌고 직접 전투에 참가한 군 지휘관이 현장에서 쓴 유일한 일기로 알려져 있다.
서양에서도 이와 비견되는 기록으로는 고대 로마시대 시저가 쓴 ‘갈리아전기’ 정도일 뿐 이와 같은 유례가 거의 없다고 한다.
또 ‘경천아일록’은 일제식민지 시절 해외로 망명한 독립 운동가들을 대표하는 김구의 ‘백범일지’와 비견되는 노령지역 항일 운동가의 탁월한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김경천은 대한제국 당시에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5년을 사관학생과 장교로 복무한 한국 최초의 최고급 군사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에 맞서 무장투쟁을 준비하고자 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했다
이후 일본군, 마적 및 러시아 백군에 맞서 용맹하게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전설적인 김장군으로 널리 이름을 날렸다.
이러한 그가 연해주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1920년부터 1925년까지 틈틈이 일기를 써왔는데 그것이 바로 이 ‘경천아일록’이다.
일록은 1888년 그가 태어난 때부터 1919년 만주와 노령으로 망명한 시점까지는 회고록 형식으로, 그 이후부터 1925년 말까지는 일기형식으로 각종 사건과 체험들이 기록되어 있다.
연해주 각지에서 벌어진 한인빨치산 전사들의 용맹한 활동상은 물론이려니와 그가 만주와 노령을 넘나들면서 관찰한 각 지역 주민과 사회세태에 대한 묘사, 멀리 서울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는 내용 등이 김장군 특유의 산문 속에 절절이 표현되어 있다.
정리 및 현대어번역자 김병학 시인은 1920년대 한국의 신문에 실린 김경천 관련기사나 구소련권 관련서적들을 보충하여 일록의 내용을 더욱 충실히 보완했다.
또 일록에는 10여 편의 시문도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항일빨치산 대장 김경천의 위엄과 기상이 소나무처럼 굳세게 드러나 있다. 대부분이 한시이지만 ‘불쌍한 독립군’이라는 한글 가사도 있다.
이는 독립군을 직접 지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독립군 부하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절절이 드러난 노래다. 1921년 4월 어느 봄날 연해주에서 서울에 남겨둔 세 딸을 그리워하는 일기는 김경천 산문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김병학 시인 |
김병학 시인은 머리말에서 “경천아일록은 큰 전쟁에 참가한 지휘관이 직접 쓴 기록물이라는 점 외에도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이와 같은 애국지사들의 삶과 정신을 알게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록정리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정리 및 현대어 번역자 김병학 시인은 카자흐스탄에서 20년째 거주하면서 한글학교 교사, 대학한국어과 강사, 재소고려인 신문 ‘고려일보’ 기자 등을 역임했으며 시집 ‘천산에 올라’, 에세이집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 재소고려인 구전가요집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1,2’, 고려인 극작가의 작품집 ‘한진 전집’ 등과 3권의 번역시집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