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결과도 적절히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따라, 재능이 있고 총기가 번뜩인다 하면 고생하며 바닥부터 공력을 쌓아야 할 기간이 단축이 될 수도(‘속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은 편이다.
이런 오래도록 자부심, 능력 거기에 사명감을 쌓아야 하고 자칫 이런 모든 면에서 성숙하기 전에 잘못 자리에 올랐다가는 안 되는 직업 중 하나가 파일럿(비행기 조종사)일 것이다.
가깝게는 근래 방영됐던 서울방송(SBS) 드라마 ‘부탁해요 캡틴’에서 천방지축 부기장으로 분한 구혜선이 탑승한 승객 전원의 목숨을 책임지는 책임감 있는 기장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그려졌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대에 문화방송(MBC) 드라마 ‘파일럿’이 조종사 등 많은 항공관련 종사자들의 ‘직업정신’을 잘 묘사했다.
픽션 아닌 실제 사례들도 충분히 있는 바, 1971년 1월 폭탄 등으로 무장한 괴한에 의해 납북되던 대한항공 민항기가 승무원들의 기지로 납북을 모면한 적이 있다. 이때 괴한이 폭탄을 바닥에 떨어뜨리자 전명세 수습부기장은 몸을 날려 이를 덮쳤는데, 이는 당사자가 산화한 대신 많은 승객들의 목숨을 구한 경우다.
‘부탁해요 캡틴’에서는 고참 기장(김창완 분)이 자신의 부인이 당장 착륙, 지상의 의료 지원을 받아야 할 위독한 상황이지만 안전한 착륙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상 전체 탑승객의 목숨을 걸수 없다며, 결국 위험이 어느 정도 제거된 뒤에야 착륙을 한 일화도 나온다. 이때 냉철하다 못해 냉정한 이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근거로, 해당 배우는 “‘기장’을 나타내는 ‘금줄 네 줄’이 주는 책임감”이라고 묘사했었다.
근자에 대한항공(003490) 계열의 저가항공사 진에어의 조현민 상무가 소규모 여행사와 소셜네트워크(SNS)상에서 설전을 벌였다 하여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트래블메이트라는 여행사의 대표가 진에어 승무원 유니폼에 대해 지적을 한 것에 조 상무가 심기가 불편해 하면서 감정싸움으로 번졌다는 것인데, ‘강력히 항의’ 내지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로 표현하기엔 여러 모로 적절치 않은 것이, 조 상무가 작은 회사를 상대로 지나치게 빠르고 강하게 선을 넘은 압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무팀 동원 운운해 가면서 회사의 고위 관계자가 압박을 가할 때에는 이 발언이 회사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비록 SNS상이라고 하나, 구사일언까지는 아니어도 삼사일언은 했어야 됐을 것인데, ‘명의 회손’ 운운하면서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쓸 정도였으니 문제가 많다.
물론, 진에어 내지 모회사인 대한항공이라는 조직 특히 그 법무팀이 맞춤법도 헛갈릴 정도로(설마, 대학을 나온 교양인이 법학과는 전혀 상관 없이 살았어도 이 정도 용어도 몰라서 틀렸으랴?) 극도로 흥분한 상관의 주문이라도 뚝딱 움직이진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실제로 움직이진 않더라도, 대기업 고위층이 법무팀 운운하면서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는 일은 기본적으로 책임감이나 자부심의 발로라기 보다는, 오너 일가의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많다.
어쨌든 저가항공사인 하나 진에어의 수많은 종사자들에겐 많은 고객에게 소중한 추억과 꿈을 선물하는 직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그 배경엔 회사가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기어이 지킨다는 숭고함이 있을 것인데, 어째 이번 ‘명의 회손 논란’은 상무로서 이런 임직원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은 아니었던 듯싶다.
금줄 4개면 와이프 목숨보다 200명 넘는 승객의 안전이 우선한다고 했다. 비록 드라마 작가가 지어낸 극적 표현이겠으나, 상무의 어깨에 지워지는 의무감 무게란 일개 기장의 그것보다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잘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항공사를 ‘대변’하는 자리에 뛰쳐 나와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