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해 중국에서는 신해혁명 100주년이라 하여 기념 열풍이 불었다.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를 세웠다는 자부심 외에도 불의의 앙시앙 레짐(Ancient Regime: 구체제)를 무너뜨렸다는 데서도 큰 의미를 부여한 모양이다. 중국 본토의 공산당 정부는 손문의 이러한 혁명 정신을 자신들이 계승했다고 선전하기도 했다.
이때 기념작으로 나온 영화가 ‘신해혁명’이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성룡이 공화국군의 장군으로 분했다. 다만, 두 시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으로 중국 본토 외엔(심지어 손문을 계승했다고 여기고 있는 국민당 정권이 오래 통치해온 대만에서도) 큰 관심을 못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이 러닝타임을 흘려보낸 게 아깝지 않다는 점은 영화 끝부분에 있다. 손문은 “혁명은 우리의 철도와 공장·은행·광산이 우리 백성을 위해 쓰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지향점을 밝힌다. 또 “혁명은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강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이러한 신해혁명의 정신이 온전히 구현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길이 있을 것임은 이미 1912년 혁명 지도자들도 예견했을 것이다. 제국주의 외세와 오랜 전쟁을 치르고 산업을 일으켜 세우는 긴 시간이 소요되기는 했지만, 대만과 본토의 각 정권이 부국과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는 두 가지 명제를 완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해 왔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 왔다. 대만에서는 국민당 독재 체제가 정당간 자유 경쟁 구도로 개편된 바 있고, 외환보유고 1위 국가 타이틀도 거머쥔 바 있다. 중국도 뒤늦게나마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국가로 부각되고 있고 민주화 문제에 대해 진통 중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4월 혁명(연세대에서 오래 헌법학을 강의한 허영 전 교수의 경우도, “이 혁명에 대해서는 ‘미완의 혁명’ 등 여러 평가가 있다”고 저서에서 소개할 정도로 평가가 분분하다)의 정통성을 이은 바 있다. 현행 헌법 전문에서도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4·19의 이념을 계승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생각해 보건대, 4월 혁명은 부정한 선거만 규탄한 것이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데 따른 관료 사회의 부정, 경제인 일각의 불의 등을 총체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확장 해석할 수 있고, 이는 근래 유행한 ‘공정 사회 논의의 원조’로 이름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정신이 몰각된 상황이 아닌가 의심되는 일이 여럿 벌어지고 있다.
바로 민자사업과 민영화에 대해 합리적 정책 판단과 추진을 하는 일부 공직자나 지도자들 속에 ‘근거 없는 숭상’을 하는 이들이 섞여 있다는 의혹이다. 이런 의구심은 이들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사업 틈새로 국부가 해외자본에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낳는다.
일례로, 2000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맥쿼리그룹은 불과 10여년만에 국내에 인프라펀드·주식파생상품 등 10개의 다양한 금융서비스 업무를 운영하면서 운용자산을 22조원 가까이 늘릴 정도로 급성장했다는 지적이다.
맥쿼리그룹은 인프라투자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가장 큰 금융회사 가운데 하나다. 이런 맥쿼리에게 제대로 공부가 안 되고 혜안은 더더군다나 없는 상대가 붙어서는 실패 가능성이 다분히 높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과거 처음 맥쿼리와 파트너십을 구축한 때에 과연 이런 심사숙고 끝에 손을 잡은 것인지 의구심이 뒤늦게 제기되고 있다.
굳이 지하철 9호선의 고압적 자세가 문제가 된 최근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맥쿼리 등 민자로 우리땅에 들어온 이들은 이익은 이익대로 챙겨가고, 언제 우리가 생각 못한 문제를 제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다.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MRG)’ 같은 제도에 대해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연구를 깊이하고, 당분간이라도 무리한 MRG 보장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희용 서울시의원 같은 이들이 강한 어조로 서울시의 지하철 9호선 사업 추진, 그리고 MRG 보장에 문제를 지금 제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고속철도(KTX) 민영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KTX 민영화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KTX 민영화를 포함한 정부의 기간산업 민영화 정책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재벌에게 건설비 등 초기 비용의 3%에 불과한 4000억원 정도로 향후 15년 동안 최소 1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 특혜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비판한다. “결국 재벌기업은 KTX로 돈을 벌고 그로 인한 불편과 불안은 국민이 감당하게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재벌만이 아니다. 외국 자본이 저와 같은 특혜 시비 끝에 KTX 민영화 구간을 차지할 수도 있다. 국토해양부에서 마련한 일문일답을 보면 김한영 교통정책실장은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법상 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외국자본 관심이 없는 걸로 관료들은 생각한다지만, 결국 종합하면, 국민의 혈세로 닦은 철도를 재벌 혹은 외국 자본에 싸게 넘길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일정 부분 부인키 어려워 보인다.
나라가 어지럽고, 관료들이 썩어 돈이 없어 차관을 얻으려 외국인들에게 철도나 공장을 팔아도 그런 역사를 보며 후세들은 무능하다고 비판한다. 정상적이되 부득이한 정책에도 가차없이 비판이 가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불공정성을 바로 잡으려 일어선 4월 혁명의 면면한 전통을 가진 공화정 국가인데, 경제의 특별하고 긴급한 비상 사정도 아님에도 특혜 논란 운운 비판당할 만한 민영화, 민자에 대한 불필요한 숭상이 번지고 있다. 이런 다소 위험한 바람이 종교적 신념마냥 퍼질 가능성, 그리고 그로 인한 부작용 우려가 높은 작금의 사정은 과연 정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