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벅(Buck)은 미국 속어로 돈(Dollar)을 가리킨다. 원래 흑사슴을 가리키던 단어가 어째서 돈과 연결됐는지는 카드놀이에서 유래를 찾는 설명이 유력하다. 포커게임에서는 패 돌리는 사람(딜러)을 가리키는 표시가 필요하다. 누가 딜러인지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19세기에는 칼로 주로 표시를 했고, 당시 칼자루는 사슴의 뿔(buck's horn)로 된 게 많아 줄여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누군가 딜러가 돼 패를 돌리고 나면 그는 벅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pass the buck)는 표현이 나왔고 이 말은 후에 ‘책임을 전가하다’는 의미로 전용됐다. 응용 표현으로 “The bucks stop here”라고 하면, 내가 책임진다는 뜻이 된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전임자인 델러노어 루즈벨트 대통령과 여러모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같은 변호사 출신이기도 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탄탄대로를 걸어온 인물이고, 트루먼 대통령은 궁벽한 산골에서 고학으로 자기 길을 닦은 입지전의 주인공이다. 그런 두 대통령이 진주만 사건 이후 참전을 결정하고, 결국 전승을 거두는 과정을 릴레이로 써 나간 점은 흥미롭다. 특히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의 막바지 국면에 등장했지만, 일본 원폭 투하 등 역사적 결정을 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후 한국전쟁 당시에는 만주 폭격을 요구하는 등 정치적 군인으로 변질되어 가는 맥아더 장군을 견제, 물러나게 하는 냉철함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렇게 중요한 국면에서 초강수를 여러 번 둔 트루먼 대통령의 책상에는 “The bucks stop here”란 말이 장식돼 있었다고 한다. 딜러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것, 즉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외국인에게도 우리금융그룹(053000) 민영화 과정에 문호를 열어주겠다고 발언했다고 25일 외신이 보도했다. 금융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이 김 위원장 설명에서 말한 내용은 △한국법에 따라 국내외 투자자 동등대우 △국제입찰방식으로 진행 △관련절차 거쳐서 조만간 입찰 공고 등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적고 보면, 별다를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변양호 신드롬’으로 눌려 지내온 관료들의 문화, 그리고 이로 인해 중요한 국면에서 많은 국가 주요 이슈들이 엎어진 것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용감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김 위원장은 어찌 보면 우리금융을 만든 장본인이다. ‘대책반장’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으로 기억되는 그이지만, 우리금융 탄생 등 일련의 금융기관 부실 문제 해결(1997년 IMF 환란 무렵) 등 워낙 많은 전장을 누비다 보니, 적잖이 ‘아쉬운’ 선택을 택한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우리금융을 만든 당사자다. 쪼개 팔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 이번 외국인 매각 발언 등을 겹쳐 보면, ‘결자해지’를 각오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김 위원장이 나섰지만, 국회 등 여러 곳에서 도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비단 법적인 절차만이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 줘야, 아무리 본인은 세간의 악평이 혹시 나오더라도 초연할 각오로 일을 시작했겠지만, 김 위원장에게 쏟아질 악평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자신이
모두 딜러 역할을 피하고만 싶어했던 우리금융 놀이. 그 딜러 자리를 남에게 전가하지 않고 여기서 멈추게 하겠다고 나선 김 위원장을 외롭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풍토 조성의 책임이 5월에 임기를 시작할 19대 국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