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도로가 잔뜩 막혔을 때 갓길이나 차선을 위반하여 끼어들며 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얄밉기 그지 없다. 솔직히 ‘나도 갓길로 가볼까’ 하는 충동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시간이 촉박할 때 그렇다. 교통순경이 단속해주길 기대하면서 충동을 억제하곤 한다. 남들이 잘 빠져나가는 상황을 보자 어떤 남자가 참다 못해 자신도 갓길로 차를 몰았다. 그러다 경찰에게 걸렸다. 당연히 운이 나빴다고 생각한다. 봐주기를 기대하며 경찰에게 항변한다.
“아니, 다른 차는 안 잡고 왜 내 차만 잡는 거요?” 인상을 쓴다. 경찰이 반문한다.
“아저씨는 파리 잡을 때 한꺼번에 다 잡나요?”
독일의 통일 기반을 쌓았던 빌리 브란트수상.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는 나치 히틀러 정권에 대항하여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투쟁을 벌인 사람이었다. 서독 수상이 되어서 그는 폴란드를 방문하여 사죄를 했다. 1970년 바르샤바 전쟁희생자 비석 앞에서 갑작스레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로 인해 바닥이 젖어있던 날에 무릎을 꿇고 사죄의 모습을 보였다.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나치를 대신하여 사죄를 했다’며 온 유럽에 뉴스가 되었다. 그가 보여준 진정성으로 인하여 주변국들이 비로소 독일을 용서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74년 그가 수상직에 있을 때 비서 권터 기욤이 동독의 간첩이었음이 밝혀지자 바로 사임했다. 그는 항상 자기 책임에 성실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책임의식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의 모습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기 잘못 조차도 책임지지 않는 일이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왜 나만 갖고 그러냐?”며 반문한다.
책임지려 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하다. 남들이 책임지지 않으니까 자신도 책임추궁 당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그것도 대표성이 있는 리더들이 하는 말이란 점에서 크게 실망스럽다.
전임 대통령의 그 말이 한 때 유행어처럼 번졌었다. 최근 비근한 예가 논문 표절문제다. 나라가 시끄럽다. 학문이 허용하는 범위를 지나치게 넘어서기에 문제가 된다. 표절은 일종의 도둑질이라 한다. 물론 표절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트이자 헝가리 슈미트 팔 대통령이 논문표절 문제로 얼마 전 사임하면서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내 문제가 통합이 아닌 분열의 상징이 된 상황에서는 물러나는 게 저의 책임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여야의원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고 한다. 결과에 책임지는 슈미트 팔 대통령이나 무릎을 대신 꿇
이번 일로 아무나 리더 자리에 나서면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웠다. 이 사건도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 자기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런 리더를 기다린다.
오정근 한국코치협회인증 전문코치 / 기업체 전문강사 / 심리상담사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