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아모레퍼시픽(090430)이 ABC세럼이라는 고급 화장품을 시장에 선보이는데요. 이 야심작을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할리우드 여배우 시에나 밀러(Sienna Miller: G.I. 유격대 등에 출연)를 모델로 발탁, 영국 런던에서 TV 광고 및 지면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외국 배우 시에나 밀러를 기용, ABC 세럼의 적극 홍보 공세에 나섰다. |
고객센터로 문의해 본 바, 해당사가 이 화장품을 종합판매점인 ‘아리따움’을 통해서는 선보이지 않고, ‘백화점 및 면세점’이라는 고급 채널로 내보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고 있는데요. 이 점을 겹쳐 보면, 유명 배우 후광을 입혀 고급화의 효과를 한껏 누리지 않겠냐는 식으로 해석해도 결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1994년 야심만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 보무도 당당하게 고급 화장품을 들이밀었다가 처절히 실패했던 전례로부터 불과 오래지 않은 오늘날 품질과 가격 대비 품질(속칭 ‘가성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외국 유명 코스메틱 브랜드들을 따라잡지 않았습니까? 이런 작금의 사정을 ‘금발벽안’의 ‘최고 수준의 배우’로 극대화하려는 마음은 사실상 인지상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광고는 두 가지 점에서 아쉬운 감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얼마 전, ‘저렴이(싼 가격에 일명 가성비가 좋은 화장품의 통칭이자 애칭)’ 시장에 열풍을 불러온 미샤가 영국 유명 코스메틱 메이커 에스티로더의 일명 ‘갈색병’에 도전장을 던진 바 있는 점은 화장품에 관심이 크게 없는 분들도 익히 아시리라 믿습니다.
미샤는 자사의 일명 ‘보라색병’을 갈색병에 선명히 대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는데요. 이에 대해 신선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미투 전략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귀담아 들을 만 했던 네티즌들의 고언은, 이렇게 공격 마케팅을 하면, 저렴이 시장 자체의 파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언제까지고 2등 메이커로 남을 뿐이라는 지적이었지요.
그래서일까요? 미샤는 최근 선보인 ‘금설 기윤 에센스’ 광고에서는 특정한 적을 상정하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매력을 뽐내는 데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여 적잖이 반가웠습니다. 당당히 고가 수입 화장품에 좋은 품질, 가격 경쟁력으로 맞서겠다는 ‘초심’으로 돌아온 듯한 태도가 오롯하게 읽혔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시에나 밀러 기용은 과거 ABC라는 브랜드가 갖는 의미를 좀 잊거나 뒤로 밀어 놓은 게 아닌가 우려되었습니다. 즉 태평양 시절부터 포마드 기름 등 곳곳에 아로새겨졌던 ABC를 세계 만방에(면세점을 통해) 다시 알리는 것인데요. 회사의 자존심이자 역사로 새겨질 만한 점이라는 부분을 방기하고, 금발벽안을 꼭 택했어야 했나 생각을 해 봤습니다.
둘째, 배경으로 사용된 광고음악의 문제입니다. 물론 기우겠지만, 이번에 광고에 곡을 잘못 넣음으로써 아모레퍼시픽은 선진국 브랜드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배우고 싶어하고 따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지 않느냐, 그런 마음이 광고에 표출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대목입니다.
지난해 프랑스 유명 코스메틱 메이커 디올은 국내에 소녀시대를 모델로 세운 광고를 론칭했습니다. 관련 회사나 기구들의 기록을 찾아 보니, 온라인 광고 및 극장용 광고로 론칭됐다고 하는데요. 이때 사용된 배경 음악이 Brice Davoli 작 ‘Castle in The Sky’입니다.
연인과 결별 후 혼자 여행을 와 지나간 사랑을 반추하지만 사랑의 기억을 지우기보다는 잘 갈무리하고 새로운 사랑의 여지를 여는 소녀시대 제시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나고요. 사랑을 감춰둔 첼리스트로 분한 유리 편, 전화 통화가 길었던 티파니 편 등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었는데 이 곡이 여러 가지로 변주돼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제는 아까 제시카 편에서 보듯, 디올은 이른바 도도하고 짱짱한 이미지의 고급한 이미지에 어필, 판매를 해 오고 있고 해당사에서도 이런 점이 잘 부합한다고 여겨 소녀시대를 기용한 것인데, 다만 고객층에서는 소녀시대가 웬 말이냐며 상당한 소란이 일었었지요.
소녀시대의 디올 광고에 삽입된 바 있는 'Castle in The SKy'라는 곡은 사랑은 지나갔지만 반짝이는 둘만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를 극대화해주는 효과를 가져 왔다는 평가다. |
그래서 당시 소시 팩트, 굽네 팩트(소녀시대가 홍보하는 굽네 치킨 이미지에 빗댄 것) 등 용어가 난무했고, 엄청나게 많은 네티즌이 그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 곡=소녀시대=디올’로 인식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1년 세월 만에, 이 곡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으니, 아모레퍼시픽은 디올을 정녕 닮고 싶었던 건지 어떤 건지 마음이 복잡합니다. 이제는 좀 안 그래도 됐을 텐데, 생각해 보는데, 아마 모르고 선곡을 넣었을 것이고 모델도 좋은 뜻으로 기용한 것이겠지요. 모든 게 기우이고, 아모레퍼시픽 마음엔 그저 당당함만 가득하다고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