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세계경제 침체 상황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재정건전성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유로존 등 외국에서 이미 국가채무 위기 상황이 불거진 가운데, 우리도 재정건전성 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총선과 앞으로 치를 대선 국면에서 복지 공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이런 우려 때문에 향후 복지냐 성장이냐의 논란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더욱이, 베이비붐 은퇴 문제까지 겹쳤고, 생산성과 분배의 조화 문제도 치열한 논쟁을 유발할 담론이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정부부채 비율이 중장기적으로 위험 수준까지 상승, 재정건전성 기반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국가채무로 유로존 위기가 고조돼 세계인을 불안하게 했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재정이 건전하지 못한 국가들에 대한 경고음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역시 이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복지 등 사회적 담론을 둘러싼 여러 논의가 후퇴할 수도 있는 국면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22일 내놓은 ‘부채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부채’ 보고서는 “2015년까지 정부부채비율은 낮은 수준이겠지만 현재와 같은 부채 요인의 증가세가 이어지면 2030년 (국내총생산, 즉 GDP 대비) 100%를 웃돌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이대로 가면 국가부채 GDP 100% 넘어 경고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부채는 420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금융 위기 이전인 2007년 299조2000억원에서 크게 는 것이다. GDP 대비 비율도 34.0%로 전년(33.4%)보다 0.6%포인트 확대됐다.
보고서는 현재의 부채요인들이 계속해 증가하면, 정부 부채비율은 2030년 GDP 대비 106.0%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사회보장성 지출이 증가하고 부실 공기업 문제나 저축은행 부실 등 잠재적 채무와 함께 외국환평형기금과 같은 금융성 채무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인구고령화로 사회보장성 지출 증가만 놓고 봐도 정부부채는 2030년 GDP 대비 72.3%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결국, 2030년에는 정부부채가 GDP 대비 106.0%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가계부채와 이로 인한 소비의 위축 현상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보고서는 “현재 가계부채 수준은 이자상환에 따른 부담이 소비에 영향을 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1991년 이후 작년 2분기까지 20년6개월간 이자상환비율이 특정 수준을 웃돌아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는 임계치를 조사한 결과 그 수치가 2.51%로 나왔는데, 실제 우리 사회의 이자상환비율은 2009년 3분기 2.51%로 2%대 중반을 넘어선 후 작년 4분기 2.83%까지 높아졌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이미 한국 경제는 복지 등에 돈을 더 쓸 여력이 없어 보인다.
우리의 경제 체력이 더 이상의 복지 지출을 부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정부부채를 더 늘리면 안 된다는 의견들이 최근 여러 각도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복수의 외국 투자은행(IB)들은 우리의 경제 사정이 복지 지출을 해도 감당할 능력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성장과 분배라는 해묵은 논쟁을 소모적인 대결 구도로 진행하기 보다는, 재정의 여력을 적재적소에 분배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데 더 치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복지와 분배에 쓸 여력: 있다? 없다?
여기에 근래 논란이 됐던 유류세 문제, 자영업에 대한 ‘시장 개방’ 추진 논의 등을 보면, 우리 사회가 복지 확대를 위해 부담을 어떻게 나누고, 또 이를 어디에 더 쓸 것인지(예를 들어 세원의 개발과 재배치 문제)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어떤 갈등을 안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구매력을 감안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대비 기름값이 2.4배 수준이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나온 가운데, 당국이 이를 반박해 눈길을 끌었다. 당국의 주장은 곧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연구원이 유가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내릴 수는 없으며 이는 에너지의 기형적 과소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과 릴레이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가 서민의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해 세금을 덜 걷을 생각이 있는지 여부 논쟁으로 이어졌다. 제조업에 대한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OECD 평균 꼴찌 수준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는 이번 총선 이후 여야 어느 쪽에서 승기를 잡든, 복지 관련 지출이 대거 늘어날 것이라는 외국 투자은행(IB)들의 분석과도 배치되는 부분이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12월 대선까지 한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억제, 안정적인 경제 성장에 주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모건스탠리는 내수 회복을 위해 정부가 복지지출과 공공인프라 건설 등에 재정지출을 더욱 늘릴 것으로 예상했다. 또 뱅크 오브 아메리카-메릴린치 등은 여야 모두 이번에 50조원 이상의 복지 확대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총선의 결과가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더욱이, 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이것이 정부 재정을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어서 국가신용등급 전망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낙관적 견해를 피력했다.
이는 상술한 한국은행 재정부담이 향후 GDP에 대비해 과다한 지출로 성장할 가능성과는 약간 다른 부분이라고도 읽힌다. 더욱이, 유럽의 재정위기는 분배 불평등 문제를 재정의 지출로 해결하려다 유발된 바인데, 이러한 지출이 아직 미약한 우리가 (실제 체력이 그렇게 약한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미리부터 해당 지출을 줄이고 성장으로 가야 하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작 4월16일에 나온 OECD 관련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계층 간 소득 불균형과 남녀 간 소득 불균형 등에 너무 무심하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16일 OECD의 ‘보다 적은 소득 불평등, 보다 나은 성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계층·성별 간 소득격차, 지니계수 등 일부 불평등지수가 OECD 회원국 중에서 심각한 수준에 속했다.
◆여력은 있는데, 어떻게 효율적으로 나눠 쓸지가 관건?
이는 전체 경제 펀더멘탈에서 보면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의 복지 지출을 감당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지출을 늘릴 필요성 또한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임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향후 이처럼 지출을 늘리다 고삐를 놓치는 경우에 재정의 불안정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은 부수적이자 종속적 요인으로 함께 종합할 수 있다.
이런 종합적 고민을 실상 가장 잘 짚은 곳이 일본계 증권사인 노무라다. 노무라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복지 확대와 소득불균형 해결에 있어, 수출 주도형의 경제성장이 소득불균형 해결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증권 권영선 한국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6일 ‘한국 경제의 불편한 상충관계: 경상수지 흑자와 소득불균형’ 보고서를 통해 “다가올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새 정부는 소득불균형 축소를 위해 세제·공정거래·복지 관련 정책을 수립해 집행할 것이지만, 이같은 사회·정치적 필요성은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해야 하는 거시경제적 목표와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즉, 우리 경제에서 경상수지 흑자는 매우 중요하나 이를 달성하려면 환율을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유지해야 하고, 이는 수출·내수간의 소득불균형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전체적 그림이 나온 원인에 대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의 뼈저린 경험으로 대외취약성을 줄이는 것이 정책당국의 최우선 순위가 된 것 △아울러 부족한 인구와 늦은 산업화 등 경제적 자원·환경이 불리한 것 △외환위기 이후 내수발전을 위한 개혁이 부진했다는 것을 들었다.
다만 이 보고서가 지적한 부분 중,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하지 않고 내수 주도의 성장을 이루려면 서비스업·자영업·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경쟁과 시장개방이 필요하나 이 경우 영세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이 힘들어지기에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부분은 100% 동의를 얻기에 어려울 수도 있다. 또,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수출주도에서 내수 위주로 경제구조를 전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설명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
◆유류세 선택적 감면지원, 자영업 일부 개방 등 수면 위로
내수와 수출 문제의 조화는 영영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최근 노무라증권은 우리가 정치적 부담 때문에 좀처럼 이에 관련한 여러 난제들을 풀 수 없을 것으로 보는 뉘앙스의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이의 조화를 위해 여러 논의가 싹트고 있다. 사진은 내수 위축 상황과 관련한 호남취재본부 제공 전통시장. |
하지만, 이 연구원은 “하지만 자영업은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인데다 부채비율이 높은 자영업자의 경우 갑작스러운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파산하거나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우려해,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실제로, 이보다 앞선 2010년 6월 한 토론회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황수경 연구위원은 서비스업 육성을 위해 제조업에 적용되는 기준과 다른 별도의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황 연구위원도 “제조업이 1% 성장할 때 0.1%의 고용감소를 동반하지만 서비스업의 경우 1% 성장할 때 0.66%의 고용상승 효과가 뒤따른다”고 밝혀 시장의 개방과 해당 산업 성장, 경쟁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황 연구위원의 주장의 방점은 “향후 안정적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산업생산의 중간재로 활용되는 금융, 정보기술(IT) 서비스, 전문직 서비스(법률 회계 경영컨설팅 등)와 같은 생산자 서비스의 시장확대 및 생산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데 있다. 영세 자영업까지 열어 경쟁을 시키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현재 논의되는 영세한 자영업을 포함한 개방 내지 영세업자에 대한 우려로 개방을 못할 것이라는 관측은 일종의 ‘난센스’로 볼 수 있다.
금년 초, 민주통합당 한명숙 전 대표는 영세자영업자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기준금액을 인상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런 자영업에 대한 절충적 지원 해결 모색 요구에 가장 부합한 구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기준금액을 4800만 원에서 8000만원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최근 자유선진당 일각에서 해당 제한선은 1억원으로 높이는 안을 모 지방매체에 언급, 보도된 바도 있다.
세원이 감소하므로 유류세를 낮출 수 없다거나, 에너지 구조 기형화 악순환 우려로 이런 문제를 섣불리 건드릴 수 없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영세화물업자나 어민 등에 대해 이들의 생산자 기능을 대상으로 선별적 유류 쿠폰 지원 등을 추진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분배 여력을 스스로 과소평가해서 성장 위주, 수출 중심으로만 기형적으로 편제된 현시스템의 보수 작업 없이 그대로 진행하는 경우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높다. 23일 KDI 유경준 연구위원은 ‘KDI 포커스’에 게재한 ‘소득양극화 해소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도가 1990년대 초반까지는 개선됐지만, 외환위기 전후로 높은 수준으로 치솟고 나서 최근에는 제자리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유 연구위원은 “소득격차가 심할수록 계층 상승 이동이 줄어든다”면서 사회적 역동성 저하 문제를 지적했다. 아울러 “기회의 불평등으로 소수만 잘산다는 생각이 팽배해지면 포퓰리즘과 보호무역론이 심해질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영국의 근래 대규모 폭동 상황을 굳이 연상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갈등을 봉합하고 예방하는 차원에서의 재정의 지출과 소득재분배의 개선은 자체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복지냐, 성장이냐”라거나 “내수냐, 수출이냐”의 이분법적 갈등에만 소모적으로 논쟁을 할 때는 아니라는 풀이가 제기되고 있다. 경제의 현재 여력을 나눠 활용하는 문제에 있어 ‘눈먼 돈’으로 새 나가는 부분없이 적재적소에 분배하는 방안으로 논의의 중심추를 옮겨야 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