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막힌 혈(스마트 브랜치)을 침(외국인 고객 시장 공략) 한 방으로 뚫어 기(금융-통신 컨버전스)를 순환하게 하다. 외환은행(004940)과 SK텔레콤(017670)이 19일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금융과 통신 분야에서의 전략적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공표하고 나서자, 일각에서는 ‘틈새 찾기’에 강한 윤용로 외환은행장의 강점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선보이게 될 ‘SKEB 스마트 패키지’는 △휴대폰을 통한 조회, 이체, 모국송금 등 편리한 금융서비스 △무료 국제전화 서비스 이용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특히나 △11개 언어를 지원해 외국인 고객이 모국어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과 통신의 컨버전스’라는 측면에서의 명분과 함께, 수원 토막 살인 사건으로 높아지고 있는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국면에서 ‘130만 주한 외국인도 우리의 고객’이라는 공공 가치의 기치를 높이 든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특히 하나은행(086790)이 외국인 관련 영역에서 구축해 온 성과를 확실히 제압하려는 공세로 이번 일을 풀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평소 하나은행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 지원 등을 위해 노력해 온 점, 주로 아이폰 측면에서의 스마트 뱅킹 서비스 구축의 긴 여정을 선도적으로 헤쳐온 바를 일거에 따라잡으면서, ‘외환은행=외국환 전문 은행’이라는 우위를 재각인시키는 효과를 이번 협약이 갖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작년 연말께 외환은행과 SK텔레콤간 스마트 브랜치 추진이 2012년 하반기까지는 연기될 것이라는 기사(2011년 12월21일 디지털데일리 보도)를 접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협약 공표로, 외환은행은 스마트 브랜치 추진 쪽이 막혔지만 다른 통신과의 컨버전스로 실력 과시를 한 셈이 됐다. 다만, 이제는 같은 그룹사 식구가 된 하나은행 쪽에 펀치를 날렸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 뒤에 윤 행장이 있다.
◆자유롭고 창의적, 소탈한 사람: 재무부 비주류 이력에 뿌리
외환은행 윤용로 행장은 외대를 나와 행시로 공직에 입문, 재무부와 구 금융감독위원회를 거쳤다. 관료 출신으로서 기업은행과 외환은행 두 곳의 행장을 거치게 된 이색적 이력을 갖고 있다. |
그런데, 윤 행장을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은 재무부 이재국 사무관 등을 두루 거쳐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 기업은행(024110)에서 행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행정고시 성적이 무척 우수했다는 점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또한, 기발하고 현장 지향형이라는 평가도 따른다.
여기서 이른바 인지부조화가 생긴다. “그 (소탈한) 윤용로가 그 (창의적인) 윤용로가 맞고, 그 윤용로가 일을 그렇게(독하게) 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이색적인 성격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재무부(경제기획원과 쌍벽을 이뤘으나, 정부 기구 개편으로 합쳐져 현재 기획재정부로 이어짐) 속에 섬과 같은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출신이라는 이력, 부유하다고 할 수는 없었던 어린 시절 등에서 단초를 찾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재무부 이재국 등 좋은 자리들을 거치긴 했지만, 소위 서울대 상대 출신이 득세하는 재경 라인에서(산업은행 강만수 행장은 일찍이 서울대 법대 출신인 자기도 소외당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을 정도) 외대 출신의 위상으로는 노력한 이상의 관운을 점치기 어렵다는 상식 아닌 상식이 있었다.
여기에 창의성이 꽤 있는 편인 그의 성격으로는 섬세한 재무부가 100% 안 맞았을 수도 있다. 경제기획원이 거시적이고 창조적, 리버럴한 분위기였다면 결속력으로 특징지어지며 디테일에 강했던 재무부의 문화는 윤 행장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기엔 2% 부족했을 수 있다.
그래서 금감위로 이동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윤 행장이 이렇게 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것도 한때 가까이서 모신 윗선의 배려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
◆일을 할 줄 아는, 그리고 그림을 만들 줄 안다: 금융의 롬멜
이런 평가는 그가 자수성가형인 동시에 다소 '정치적'인 인간형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2차 대전의 전설적 독일 장군 롬멜의 이력을 연상케 하는 일면이 있다. 롬멜은 장교로서의 경력관리에 필수적인 참모 이력에 무심했다는 점, 프로이센 귀족 중심이 아니라는 점 등 출세할 이력이 부족했지만 히틀러의 호감을 사 승승장구했다. 다만 이런 점 때문에 일부에서 따라붙는 정치군인이라는 박한 평판도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이 롬멜은 실제로 작전에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군 이력 내내 여러 차례 마찰을 빚었으며(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이탈리아군과 원만치 못했고, 독일 공군의 키셀링 장군과도 불화했다) 이런 점을 상쇄하려는 듯 프로파간다 연출에 능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윤 행장의 위에서 적은 바 있는 표면적으로는 빛나는 이력이 일본식으로 따지면 화려한 ‘대장성 관료’에 가까우나, 정작 윤 행장 자신은 파나소닉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좋아하는 독서가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금감위로 옮기게 된 부분이나, 기업은행의 수장으로 전격 발탁된 배경에 재무부 근무 시절에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점이 적잖이 작용했다는 설 등에서 ‘정치력’이라는 단어를 연상해도 큰 오류는 아닐 것으로 관측된다.
하나-외환간 갈등이 봉합된 뒤 외환은행의 새 수장으로 부임하는 과정에서도 외환의 행화인 장미꽃다발을 노조 측으로부터 전달받는 모습을 연출한 대목도 ‘스타일리스트’라는 평을 얻은 부분이다.
오랜 갈등 끝에 외환은행 노조가 하나금융측과 협상 타결을 한 뒤, 윤용로 행장이 외환은행에 공식 출근을 하는 모습. 외환은행 직원들이 행화인 장미 다발을 윤 행장에게 선물하고 있다. |
특히 그가 틈새를 찔러 놓으면 상대방으로서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상황이 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에 기업은행이 중앙경찰학교와 제휴카드 협약을 맺어 놓은 점은, IC칩이 탑재된 경찰 신분증 유치 노력을 하는 다른 은행을 힘들게 했다. 경찰로서 처음 발을 내디디기 전부터 상당수의 사람들을 기업은행 고객으로 포섭해 놓은 점은, 하나은행이 후에 경찰 신분증 유치를 할 때 많은 지출을 하게 했다. 하나은행의 행원들은 이 당시 “우리는 왜 갤럭시 안 줘요?”라며 무리한 유치전에 나서는 은행 고위층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기업은행이 차지해 놓은 시장의 탄탄함이 하나은행측 출혈을 강요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얄궂게도 그의 현재 상관인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이 당시 하나은행의 행장).
외환은행 윤용로 행장은 관료 시절이나 기업은행 수장을 지내던 시절 내내 이미지 메이킹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이 있다. 독일군 롬멜 장군이 선전용 사진을 위해 진탕에 빠진 차를 미는 모습(좌)과 기업은행 행장으로 있던 시절 선임이던 고 강권석 행장 2주기를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는 윤 행장(우). |
◆반발할 인물들 모두 정리하고 들어간다는 평?
잔인하다는 평까지는 아니지만, 반대표를 의식하고 이를 꺾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는 평가는 없지 않다. 기업은행에서 윤 행장이 사령탑을 맡고 있던 2009년 초, 기업은행은 2년차만에 물갈이를 모두 마쳤다는 평을 들었다. 이는 기업은행이 부행장 수를 12명으로 두명 줄이고, 기존 부행장 가운데 6명이 퇴임하고 새로 4명을 발탁 임명하는 등 큰 폭으로 갈아치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임 행장 추모 분위기 등을 강조하면서 납작 엎드린 듯한 이미지와 병행해 이런 강수가 진행됐다는 점은 그를 ‘덕장’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려운 복합적 캐릭터로 만든다. 기업은행의 행장 연임이 걸려 있던 시절에 상임이사 임명 건을 놓고 노조와 윤 행장이 대립각을 세웠던 것도, ‘원칙적 인물’이라기 보다는 초조해지면 무리수를 둘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열린 성격’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이번에 외환은행에 부임하면서도 적잖은 임원의 사표를 받은 점도 이 같은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고 못 볼 바가 아니다.
◆갈등을 두려워 않고 꼼꼼한 성격…외환 vs 하나 갈등 빚을 수도
더욱이, 지점 줄이기 등 여러 국면에서 윤 행장이 한 지주(하나금융) 아래의 같은 식구인 하나은행 측과 갈등을 빚을 여지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점은 그가 유능한 관료로 평가받은 재무부 은행제도과장 시절의 경력이 오히려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선 상당히 위험한 인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윤 행장은 수협의 부실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로 노 전 대통령과 교감하면서 유능함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당시 윤 행장 밑의 한 일선 사무관이 당시 해수부장관이던 노 전 대통령에게 해수부 입장이 문제가 있다며 조목조목 따지는 메일을 보냈다는 점을 겹쳐볼 필요가 있다. 이는 상관이 묵인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윤 행장이 교감이 되는 ‘지기’에게도 대결을 불사한다는 점을 방증하는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윤 행장은 상당히 꼼꼼한 면이 있다. 외환은행의 노조 문화에 대해 이미 그는 간담회를 통해 질타, 과도한 성과급 문화 등을 지적해 놓은 점이 대표적 예이다.
일부 당국자가 ‘외환과 하나가 투뱅크로 5년간 갈 수 없다’고 최근 언급했다는 설은 그래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쪽에서 잘하면 다른 한쪽이 우리도 보너스를 달라는 식으로 나선다는 공멸의 길 주장을 하는 등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게 골자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상 윤 행장은 이런 관료들의 주장을 미리 예측, 방어하는 논리를 공개적으로 쳐 놓았기 때문이다. 상당히 강한 톤으로 노조의 전횡을 질타하는 동시에 방어막을 쳐 준 것은 관료로서의 오랜 경험에서만이 아니라 성격 자체의 꼼꼼함이 낳은 절묘한 수로 풀이된다.
다만, 이런 여러 상황이 결합하면 결국 하나은행에 밀리지 말라는 강한 다그침으로 외환은행에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실현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윤 행장이 정치적인 인물 대 자기 혼자 일을 할 수 있는 천재, 소탈함 대 엄격함, 대장성 관료 같은 이미지 대 마쓰시타 창조혼 등 여러 복합적 성격에서 장점만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지가 은행계에 관심을 가진 일반 시민들의 흥미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은 윤 행장의 개인 이력뿐만 아니라 외환은행, 더 나아가 하나금융을 좌우할 수 있다는 면에서 향후 몇 년간은 은행계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