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옛 직장에서 강의를 하며 지냈던 선배와 가끔씩 만난다. 강사들끼리 만나면 말들이 많기는 하다. 이 선배에게서는 배움과 에너지를 많이 얻는다. 둘은 대화를 하다 말고 수시로 스마트폰을 열어 상대의 말을 서로 요약하여 입력하기에 바쁘다. 서로 말을 적게 하려는 점도 특이하다. 왜냐면 귀를 세울수록 배우는 게 많다고 생각해서다.
어제 만남을 파하면서 선배는 “오늘도 내가 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많이 들으러 와서 말을 더 많이 하니 늘 자기가 하수라며 나를 추켜세운다. 실제로 배우는 게 많아 내 질문이 꼬리를 물게 된다. 내가 깨닫고 배운 내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호남고속도로에서 전주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면 ‘호남제일문’이 점잖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문이지만 대문은 없다. 절마다 입구에는 일주문이 있다. 항상 열려 있는 게 문이다. 문이긴 하지만 관문(關門)이란 건 다르다. 대구에는 ‘영남제일관(문)’이 있고, 문경새재로 유명한 조령에도 관문이 세 개나 있다. 과천에서 서울로 진입하기 직전 ‘관문사거리’란 지명도 유명하다. 관의 한자 훈에는 ‘관계하다’는 뜻 이외에 ‘빗장’이란 뜻도 있다. 그러니까 ‘늘 빗장이 걸려 있고 필요할 때만 연다’는 개념이 바로 관문이다. 우리 집 현관에도 문이 있다. 하지만 항상 열어두지 않기에 현관문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나 싶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비번을 치고 들어가야 한다면 관문이 존재하는 셈이다.
흔히 성공과 관련하여 ‘등용문’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등용문은 항상 열려 있는 셈이다. 열려있으니 누구라도 성공하란 점을 강조한다. 관문은 일반적인 문과 다르다. 빗장이 걸려있기에 허락을 받아야 통과가 가능하다. 시간도 정해져 있다. 삼국지를 보면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관문을 어렵게 통과했고, 관우 역시 유비 부인을 모시고 조조의 품을 떠날 때 조조가 관문 통행증을 써 주었음에도 5개의 관문을 통과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듯 관문은 함부로 열어 두면 안 되는 문이다. 반면 대문은 왕래가 워낙 많아 활짝 열어두는 게 좋다. 우리 신체에도 관과 문이 따로 있다. 입은 관이요 귀는 문이다. 총명하다는 총(聰) 글자의 훈이 ‘귀 밝을 총’이다. 귀담아 들을수록 총명해진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입을 잘못 놀려 낭패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 입 역시 화근일 때가 어디 한 두 번이었으랴? 빗장을 걸어 둘 일이다.
성경에도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라’고 했다. 듣기에 힘쓰는 일이 소통의 시작이다. 소통이라 할 때 소(疏)의 훈은 ‘트일 소’다. 막혔던 것이 트인다는 의미다. 생각이, 운이, 가슴이, 시야가, 목청이 트이면 얼마나 기분 좋겠는가? 사람끼리 트이기 위해서는 듣기에 힘써야겠다. 입에 빗장을 걸고 귀를 대문처럼 열어두기로 나는 오늘 마음 먹는다.
오정근 한국코치협회인증 전문코치 / 기업체 전문강사 / 심리상담사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