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결혼 이주민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자스민씨가 인터넷상에 시달리고 했다. 이를 계기로 그간 결혼이주여성들이 받은 냉대와 차별, 편견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그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한 말이 그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 수 있어서 좋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보다 잘 된 사람을 볼 때 부러움을 갖게 된다. 이 부러움은 내가 그 사람과 같이 ‘될 수 없다’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다. 전자의 경우엔 부러움이 시기심이나 질투나 자기 비하나 열등감으로 발전하고, 후자의 경우엔 ‘나도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을 분발하게 한다. 이처럼 부정적 감정은 자신을 갈아먹고, 긍정적 감정은 자기 성장이나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지금 세계는 10위 무역대국인 대한민국과 한국 사람들을 경이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우린 이런 현실에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보다 큰 사람 앞에서는 주눅 들고, 자기보다 작은 사람 앞에서는 우쭐하게 마련이다.
일제 강점당시 일본 사람들은 우리를 ‘조센징’이라고 낮추어 불렸다. 당시 일본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리 선조들이 지금 우리 눈에 비치는 동남아 지역 사람들보다 더 낫게 보였을까? 그렇게 차별받던 선조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괄시받던 우린 지금 어디에 있는가?
청년은 소년보다 크고 힘이 세다. 그렇다고 청년이 소년보다 우등하다고 할 수 없다. 현재가 과거 조선시대, 고려시대보다 살기가 더 좋다. 그렇다고 지금이 그 때보다 더 나은 시대라고 할 수 없다. 결코 그렇지 않다. 청년과 소년의 차이는 단지 태어난 시기가 다르고, 지금과 과거는 발전 단계가 다를 뿐이다.
당시 일본과 우리의 차이, 지금 우리와 동남아 국가 간의 차이에서도 이런 것이 분명이 있다. 조선시대는 그 나름대로 가장 발전된 시대였고, 마찬가지로 현재 동남아 지역은 그 나름대로 가장 나은 시대이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색 바랜 흑백일 뿐이지만 그 당시엔 모두 총천연색이었고, 모두 현대적이었다.
여성들은 매일 아침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옷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입을 옷이 없냐고 한 숨 짓는다. 작년 이 맘 때는 대체 무슨 옷을 입었느냐고 한탄한다. 이 옷들도 한 때는 신나게 입었던 옷들이고, 당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청년이었고 조선이 소년이었다면, 지금 우린 청년이고 동남아 국가는 소년에 해당된다. 지금 나의 입장에서, 지금 나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지금의 소년도 언젠가는 청년이 되고, 지금의 청년은 언젠가는 노년이 된다.
우헌기 ACC 파트너스 대표코치 / (전)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 / (전) 택산상역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