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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HSBC는 태극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4.18 15: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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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은행이 산업은행에 지점들을 넘기기로 최근 합의했다. 사진은 서울 봉래동 HSBC.
[프라임경제] 영국계 금융기업인 HSBC은행. 하지만 HSBC은행의 정작 주요 사업 무대는 아시아 등 비유럽권인데요. 처음 국내 진출을 할 당시, 우리 은행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선진금융기법을 수혈하는 주역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HSBC은행이 결국 한국땅을 떠날 모양입니다. HSBC는 산업은행에 국내지점을 모두 넘기기로 했다는 것인데요.

HSBC의 한국 견문록은 순조롭지 않은 기록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제일은행 인수에 나섰다가 해당은행 노조의 반발에 부딪히는가 하면, 1100억원 편법 회계 의혹이라는 달갑잖은 시선도 받았습니다. M&A를 통한 몸집 키우기가 여의치 않자 기업금융 중심으로 독자 성장을 한다고 선언했지만, 결과론적으로 용두사미가 되어 한국 시장에서 발을 빼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시원섭섭한 일인데요. 그런데 기자는 오늘(18일), 서울 남대문로(봉래동1가 25번지)의 HSBC은행 본점을 갔다가 “아, 이 사람들은 한국인들에게 잘 보일 생각이 원래부터 별로 없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봤습니다.  

국기 게양대를 보니, 깃봉은 3개에, 태극기가 가운데, 그리고 백색과 적색이 분할돼 있는 HSBC 사기(백색과 녹색으로 돼 있는 한국일보 사기와도 비슷)가 왼쪽에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게양 순서가 영 틀린 겁니다.
   
서울 봉래동 HSBC빌딩 앞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와 HSBC은행 사기 등 깃발이 둘 걸려 있는 장면(18일 오전). 하지만 이런 게양 방식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기법’이라는 법률을 갖고 있고, 그 시행령과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을 갖고 있는데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초등학생 시절 배운 국기 게양하는 방법 등도 나름대로 다 근거가 저렇게 갖춰져 있는 것이랍니다.

문제는, 국기를 게양할 때, 타국의 국기나 다른 기와 함께 게양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 숫자에 따라 판단하면 되는 것으로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왼쪽, 오른쪽은 건물의 정면에서 바라본 걸 기준으로 하고요. 홀수의 기를 게양하는 경우엔 가운데 우리 국기를 걸고(기준), 짝수의 기를 거는 경우엔 맨왼쪽이 태극기의 자리가 됩니다.

오늘 보노라니, 봉래동 HSBC빌딩 앞 국기 게양대는 이런 원칙은 아랑곳 않고 걸고 있었던 셈입니다. 혹시 제가 잘못 기억을 하나 싶어서 확인을 해 봤습니다. 이 문제는 여러 포털 사이트 등에도 여러 건 문의와 답이 올라와 있고, 행정안전부 의전담당관실에서 직접 답을 단 사례를 언급해 봅니다.

어느 군청 관계자가 올린 질문에 행정안전부 관계자가 설명(2009년 포털 다음에 게시된 것)한 것(이런 경우 ‘유권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을 보면, 국기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고 하고 실례(케이스)로 △5개의 국기게양대에 국기를 게양하는 경우는 국기를 포함하여 게양하는 기가 홀수이므로 국기를 가장 윗자리인 중앙에 게양하고 (국기를 바라봤을 때)가까운 왼쪽·오른쪽의 순으로 다른 기를 게양 △국기게양대가 5개 설치되어 있으나 게양하고자 하는 기가 4개인 경우는 바라봤을 때 왼쪽으로부터 5번째인 국기게양대를 게양대상에서 제외하고, 게양하는 기가 짝수이므로 국기를 가장윗자리인 마주보아 왼쪽의 첫번째에 게양하여야 하며 오른쪽으로 그 순서에 따라 다른 기를 게양하도록 설명했습니다.
   
행정안전부의 해석을 요약하면, 깃대를 모두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게양될 기의 숫자가 홀수냐 짝수냐에 주안점을 둬 판단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 경우처럼 깃대는 3개인데 깃발은 둘인 경우 같으면 고민없이 ‘짝수로 게양하는 경우’로 간주해서 맨왼쪽이 우리 국기(태극기), 그 다음(즉 가운데)에 HSBC 사기, 맨오른쪽은 공란 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지요.

물론 3개를 모두 쓰려고 만들었을 것이고 더러는 뭔가 내걸었을 수도 있고, 태극기가 어쩐지 당연히 가운데일 것 같고 등등 여러 이유로 저렇게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HSBC 쪽 잘못입니다.

서울에 진출한지도 하루이틀도 아니요, 직원이 몇인데, 당연히 뭔가 이상하다는 소리를 하는 이가 하나 이상은 있었을 텐데요. 무엇보다 저건 관리인이나 건물주 책임 운운할 것도 아니고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금융기관으로서의 소통 노력으로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HSBC은행은 한국에 진출한 이래로 위에서 언급했듯, 좋은 소리를 들어본 기억보다 오해를 받고 질시를 받은 적이 더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 불안 논란일 겁니다. 2005년 12월2일 내일신문 보도(HSBC의 독특한 신규직원 채용 방식을 소개한 기사. 우선 수시로 원서를 접수받고 필요할 때 개인에게 통보하는 방식을 취했다. 일단 원서를 내도, 6개월이 지나면 갱신 제출 필수. 또 신입직원은 모두 계약직으로, 2년간 근무한 이후에야 정규직 전환 여부 결정) 등을 종합해 보면, 매번 HSBC는 고용, 감원 등등의 노동 이슈로 언급되며 인상을 남긴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HSBC가 자랑할 만한 오랜 역사마저도 이런 이미지와 겹치면, ‘탐욕스러운 식민지 쟁탈전 시대에 문을 열어 제국주의 첨병 노릇을 해 주던 은행’, ‘후진국 시장에서 돈 벌 궁리만 하는 은행’으로 곡해돼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식으로까지 눈치를 보면서, 회사 상징 깃발 내거는 순서 하나하나까지 어떻게 가슴조이면서 영업을 하겠느냐고 HSBC 쪽에선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반박이 혹시 있을 적에 제가 하기야 HSBC는 영국 본국 눈치도 안 보는 리바이어던(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이라고까지 말하면 떠나는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3월17일 영국신문 데일리메일 온라인판은 ‘도망갈 준비 중인 HSBC, 대출구상 참여 거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기사는 영국 당국이 소규모 대출 활성화를 요청했지만, 금융 정책에 불만을 품고 탈영국을 꿈꾸는 HSBC와 버클레이즈 등 대형은행들이 이러한 역할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보도).

다만, 다른 예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바로 봉래동 HSBC빌딩 건너편에 우리빌딩에 입주해 있는 프랑스문화원의 경우입니다. 여기에도 깃대 3개가 서 있습니다. 자국 중심으로 게양을 할 법도 한데, 우리의 국기 규정에 맞춰(마치 한국인이 건 것처럼), 태극기를 가운데, 프랑스 삼색기를 두 번째 좋은 자리인 왼쪽에, 그 다음으로 유럽연합기를 걸고 있습니다. HSBC가 좀 보고 배웠으면 싶습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장사는 바로 저렇게 하는 거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이제는 뭐 다 지난 일이지요.

이런 두 예를 보니, 어쩐지 HSBC은행은 한국의 금융이라는 시장 파이(기업금융이나 국제금융중개의 수요 등)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한국인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세세히 잡아야 하는 리테일(소매금융)엔 아무래도 관심이 없었나 싶은 것입니다.

도대체 그런 마인드로 비유럽권에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성장했는지 궁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다른 나라에선 서울에서의 2% 부족했던 점과 철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잘 해 보기 바랍니다.

아마 긴 역사에서 이런 성적표를 받아본 적도 처음일 텐데, 이걸 오히려 단순히 일류기업에서 더 분발해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한국에서의 시간이 헛되지만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