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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마니아와 매니아의 갈림길에서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4.17 12: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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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멋장이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멋장이는 만들어진다’

저 광고 카피, 어떤가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느끼하다(?)는 외에도, 업으로 하지 않는 경우엔 ‘~장이’를 붙이지 않으므로 멋쟁이라고 쓰는 게 맞겠지요.

어느 단계에선가 비토 됐을 법할 이 카피, 하지만 이 카피는 실제 사례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카피가 실린 지면광고가 신문들에 대대적으로 집행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 시대인 1990년. ‘보통 사람의 시대’라는 시대정신(?)에 걸맞게 ‘너도 노력하면 멋장이(?)가 될 수 있다니깐!’이라 어필하는 이 광고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랜드그룹의 헌트가 처음 시장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의 광고인데요. 이랜드가 프레피룩(근래에 SBS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에서 김태희가 입고 나온 미 명문대생 분위기의 옷)을 지향했다면, 자매 브랜드인 헌트는 다소 클래식한 옷, 그러니까 허밍웨이가 즐겨 입었던 사파리 자켓(무릎 가까이까지 내려오는 긴 상의) 등의 스토리텔링을 입혀 광고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광고 분위기는 참 좋았는데, 그 놈의 ‘~장이’ 때문에, 당장 그 광고를 실었던 그 신문에는 독자투고로 ‘~쟁이’가 맞다는 지적이 올라오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 회사에선 그 이후에도 꿋꿋하게 자기네 옷을 입으면 ‘멋장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을 유포했습니다.

처음 문제의 카피가 나간 지 3년 후인 1993년에도 멋장이 운운하는 광고가 나간 바 있답니다. 다만 1993년 한겨레신문 광고는 제호돌출광고(신문의 이름 옆에 붙는 작은 광고)라 해서 보는 사람은 보고 안 보는 사람은 안 보는 정도였습니다.

생각해 보건대,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카피(에이스침대)가 미친 해악보다 더 크다고 봅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그저 유머러스한 말에 불과하지만, 실제 이 광고가 유행하던 무렵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질문에 전화기를 제쳐놓고는 침대를 골랐다고 하지요. 하지만, 맞춤법에 혼선을 주는 건 이보다 임팩트는 약하지만 더 오래도록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입니다.

‘카레 만드는 오뚜기’와 ‘아줌마들이 배달해 주는 한국야쿠르트’가 애들에게 오뚝이와 요구르트를 오히려 낯설게 만드는 것도 비슷하다 하겠습니다(이들은 상표 등록 당시의 맞춤법에 따라 작명돼 지금 어법과 어긋한 사례이니 ‘멋장이 만들어 주는 헌트’ 같은 고의범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상업적인 맞춤법 혼선보다도 더 심각한 트러블 메이커들이 있습니다. 바로 ‘언론’입니다.

각사가 각자 매뉴얼을 만들어 사용하다 보니, 지면을 보거나 영상을 보고 들을 때 자기들만의 기준을 언론 소비자들에게 강요하는 격입니다.

일례로 ‘플래카드’가 정확한 표현인데, 플랭카드나 플랙카드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 매체 안에서도 플래카드와 플랭카드·플랙카드를 혼용해 쓰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 단어 못지 않게 각자 취향대로 쓰는 경우가 (광적인) 애호가를 뜻하는 ‘마니아’인데요.
   
 
이 사진에서처럼 마니아라고 쓰는 게 맞습니다. 이는 매니아라는 영어 발음이 지금은 널리 알려졌지만, 오래 전에 이미 마니아로 정착이 돼 버려서 이쪽으로 표준어를 인정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런 표준어 규정과는 관계없이 많은 매체들이 매니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윤소이는 핫핑크색의 리복 트레이닝복과 리얼플렉스 트레이닝화를… 운동 매니아로서의 매력을 발산’(이데일리 ‘윤소이·이학주 홍콩질주’ 기사 2012년 4월17일) 등 다수의 표현이 검색되고, 제목부터 매니아라고 쓴 경우도 있습니다(조선일보 ‘미란다커, 한인 찜질방 매니아?’ 2012년 3월19일).

이런 사례와는 좀 다른 경우입니다만, 4.11 총선이나 10.26 부동산 대책 등 언론에서 날짜를 넣어 지칭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요. 저는 특정 날짜를 사건의 이름으로 삼는 경우에 가운뎃점을 찍으라고 예전에 학교에서 배워서(예를 들어 6·25 사변, 3·1 운동 등) 처음 온점(마침표)을 찍는 경우에 ‘이건 뭔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글맞춤법에 아라비아 숫자만으로 연월일을 표시할 적에 쓴다고 일반적 날짜 표시엔 온점을 쓰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1919. 3. 1. (1919년 3월1일)이라고 쓰는 경우와 3·1 운동의 용례가 살짝 다른 것이지요.

언론의 경우, 보통은 온점 즉 마침표로 떼우는 것 같습니다. 기사를 매일 직업적으로 써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찍는 데 시간 걸려서 그런 관행이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언어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라고 게르하르트 헬비히라는 언어학자는 ‘언어학사’라는 책에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사실 전 과문하여 헬비히는커녕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만(전 저 말을 김애란 작가의 헌책방 순례 이야기가 실린 ‘소설가로 산다는 것’에서 읽었습니다), 언어학사라는 책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저 문장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언어가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라고 해서, 그 순간순간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언론에서 쉽게 가자는 식으로 혹은 우리가 제일이라는 거만함으로 맞춤법 하나하나를 나름의 사내 기준으로 난도질하는 버릇을 들이다 보면, 비문을 양산하고도 교열팀에서 알아서 고치겠지라고 생각하는 상황으로까지 번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팩트를 왜곡하거나 권력이나 금력에 쉽게 굴종하는 언론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작은 단어 하나도 구사일언은 몰라도 삼사일언으로 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