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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편협한 ‘우리’ 의식으로 뭉쳐진 패거리

우헌기 코치 기자  2012.04.16 08: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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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소설가 이외수씨가 트위터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보도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 중에서도 낙후된 접경지역, 철원·인제·양구·화천을 이끌어갈 새누리당 정치인 한기호 후보를 응원한다. 그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있다. 호탕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의 비난이 대단했다. 이씨를 ‘변절자’, ‘제 정신이 아니군. 그냥 닭대가리 인증을 하는 구나’, ‘이 양반 원래 이 정도 깜냥임’이라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이 올라왔다. 팔로어를 180만명이나 가진 그가 이번 일로 당한 곤혹감은 대단했으리라.

마케팅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뛰어난 방법 중 하나가 구전이다. 이는 소비자들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입소문이 다른 광고방식에 비해 신뢰성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새로운 형태의 입소문 방식이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된다. 특히 트위터는 좋아하는 사람끼리 팔로잉하고, 그대로 남들에게 전하는 리트윗 기능으로 처음 정보는 원형 그대로 순식간에 전파된다.

일반적인 소문은 전파과정에 보태지거나 빠지면서 변형된다. 이러한 변형 과정에 소문의 위력이 약해지는 일종의 ‘제어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SNS를 통한 확산은 최초의 말이 전혀 가감되거나 변형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전해지지 때문에 위력은 점점 더 커진다. 이처럼 아무런 확인이나 검증절차 없이 순식간에 퍼지기 때문에 역기능도 따른다.

우리 사회는 ‘우리’ 의식이 남다르다. 우린 자기 자식을 ‘우리 아들’, ‘우리 딸’이라고 부른다. ‘우리’ 의식은 가정과 지역 공동체, 국가의 통합을 이루는 근간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늘도 만만치 않다. ‘우리’ 의식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우리’의 경계 밖에 있는 ‘타인’에 대한 생각은 배타심을 넘어 적개심으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교도’, ‘오랑캐’는 항상 악마였고, 씨를 말려야 할 대상이었다.

1923년 9월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13만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동경에서만 10만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가옥의 3/4의 잿더미가 되었다. 신문이나 방송마저 중단되자,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는다’, ‘시내 곳곳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선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동안에 조선인 6400명(일본 공식 통계)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글로벌이 시대의 화두로 대두되면서 기존의 ‘우리’ 의식은 점차 변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혼혈아에 대한 시각도 많이 누그러졌고, 외국인 근로자와 외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외국인을 보는 시각도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다른 형태의 ‘우리’와 ‘남’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외수씨의 ‘후보자 응원’과 관련한 소동에서 보듯,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만 똘똘 뭉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생각은 가차 없이 비난하는 것에서 다른 형태의 ‘우리’ 의식을 발견한다. 트위터가 이러한 편협한 ‘우리’ 의식을 조장하거나 더욱 증폭시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편협한 ‘우리’ 의식으로 뭉쳐진 집단은 패거리에 불과하다. 패거리 안에서는 자기들끼리의 작은 의로움을 위해 집단 외부의 더 큰 의로움을 무시하거나 대신하게 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헌기 ACC 파트너스 대표코치 / (전)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 / (전) 택산상역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