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캔미팅(Can Meeting)의 정의로 되돌아 가보자.
캔미팅이란 ‘조직 구성원들이 가능한 일상의 업무 활동으로부터 독립된 장소에서, 수시로, 정해진 경영과제에 대하여, 격의 없이 자유롭게 논의하는 회합’을 일컫는다. 이를 Supex 추구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부연되는 정의(定義)를 설명 삼아 붙일 수 있다.
부연 설명에 등장하는 ‘MPRS’이니 하는 단어가 독자들에게 낯설더라도 잠시 참고 기다려 주기 바란다. 앞으로 ‘일처리 5단계’라는 것을 설명하는 장(章)에서 이들을 가급적 친절히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정의 속에서 ‘조직 구성원들’이라 함은 주제가 되는 안건(案件)에 관련되는 ‘MPRS’ 모두를 의미하며 특히 해당 단위조직의 리더가 꼭 포함되어야 한다.
여기서 M은 마케팅, P는 생산, R은 연구개발, S는 지원기능(Supporting Group)을 대표하는 약자(略字)이며 Supex 추구를 위한 캔미팅을 할 때에는 그 모임이 이러한 기능의 대표들 또는 위임(delegation) 받은 결정권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사안의 성격 상 이와 같은 기능 대표를 동원한 캔미팅 조직의 구성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 모임의 구성원이 조직 상으로는 어떤 기능조직에 속해 있든 상관 없이 일단 Supex 추구 조직이 생겨나면, 그들 각각에 이러한 기능이 생겨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듯하니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앞의 ‘보일러 Hair Crack 해결사 프로젝트’를 보면, 해결사의 역할로 참여한 구성원들이 큰 조직의 틀로 보면 모두 생산기능인 공장 요원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고압수증기를 받아 사용하는 제품생산 부서를 보일러 운전팀의 고객으로 간주할 때, 고객에게 수증기를 생산 공급하는 책임을 잠시라도 중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 보일러 운전담당 팀장은 마케팅의 신발을 신고 서서 문제를 고찰한 것이며, 진흙과 마포(麻布)로 Hair Crack을 막아 이를 해결할 수 있겠다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 것은 명백한 연구개발 기능의 수행이다.
솔선수범 방열복 입고 이를 실행에 옮겨 문제를 해결한 행동대원의 행위와 임시로 수증기의 누출이 그치자 용접봉 들고 달려들어 수행한 공무부원들의 ‘hot tapping’ 용접 행위는 생산기능의 수행이 될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긴급자재 등을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신속하게 불출 공급해 준 창고 등은 지원기능의 소임을 다한 것이 된다.
‘가능한 일상의 업무 활동으로부터 독립된 장소’에서 수행한다는 것은 회합자(會合者)들을 통상업무로부터 격리하여 몰입할 수 있도록 보호한다는 뜻이다.
‘정해진 경영과제에 대하여’ 한다는 뜻은 Supex 주제를 설정하여 이의 해결을 목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한다는 뜻이며, 불만이나 고충해결 등을 위하여 캔미팅을 활용하였던 과거의 관례에 선을 긋는다는 뜻이다.
‘격의 없이 자유롭게 논의 한다’는 뜻은 조직에서의 상하 관계를 벗어나서 누구나 문제 해결에 공헌도가 높은 의견을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도록 두뇌활용의 공간을 확보해 주려는 것이므로, 기업의 조직 특성상 불가피한 수직적 구조에 수평적 융통성을 보완하려 한 의도이며 캔미팅이 아니면 담보하기 어려운 명제이다.
끝으로, ‘수시로 한다’는 것은 주제가 되는 안건이 높은 Supex 추구를 지향할수록 단 몇 번만의 회합으로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결 방안을 얻어낼 때까지 지속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정기적·부정기적 회합을 갖는다는 뜻이다.
필자가 최종현 회장에게 보고한 여러 Supex 추구 보고 중 가장 캔미팅 회합 수가 많았던 것은 한 가지 주제가 총 80여회에 이르러 문제가 해결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 경우는 Supex 추구 초기의 여러 차례 시행착오까지 모두 카운트 한 것인데, 최 회장도 대단히 흥미로워 했던 케이스이고, 나도 아카데미 교수 시절에 연구과제로 삼아 검토해 보았던 사례이다.
공장에서 이루어졌던 획기적 공정 개선의 예이므로 기술용어가 많아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지루하겠지만 캔미팅과 관련된 여러 가지 교훈을 추출할 수 있는 사례이므로 자세히 적어 보겠다.
이 펌프는 높은 회전 속도의 인라인(In-Line) 펌프로서 제1 반응기를 통과한 반응물질의 시스템 압력을 올려 다음 반응기로 직송하는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는데, 높은 속도의 회전을 해야 하는 만큼 자주 펌프의 날개(impeller)가 깨어져 이를 교체하기 위하여 시스템 전체를 조업 중단하는 사례가 잦았다. 사고가 잦아지자 이 문제가 공장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주요 문제로 대두 되었기 때문에 이를 Supex 추구 과제로 삼아 캔미팅에 붙이게 되었다.
어느 캔미팅에서든 거의 예외 없이, 회합이 시작되면 머리가 영민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수재형(秀才型) 구성원 하나가 서기 노릇을 자청한다. 그리고 아무리 리더가 수평적 리더십을 표방하고 가급적 여러 구성원의 참여와 의견제시를 요구해도 처음 몇 차수(次數)의 회의는 머리 회전이 빠른 수재형 구성원 몇몇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그 중 하나인 자청 서기는 회의 진행 중에 나온 지배적 의견을 적의(適意) 재단(裁斷), 정리하여 은연 중 자기 의견을 주축으로 만들어 회의에서 나온 해결책을 종합 제시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파워포인트 멋지게 프레젠테이션 자료 만들어서 보고하고 승인 받으면, ‘오케이’ 실행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실행은 당연히 이 수재님들의 일이 아니라, 거기 Can Meeting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의견을 펼쳐 보이지도 못했던 현장 운전원이나 기사들의 책임이다. 회의석상에서 난 해결책이 그럴 듯 하기는 하지만, 그것 가지고 아무리 펌프 돌리고, 반응기 운전조건 조정해 보아야, 운전은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예의 펌프 날개 못 견뎌 다시 깨지고, 반응기 시스템 부문은 비상조업정지로 들어간다. 그래서 다시 같은 주제로 또 Can Meeting을 해야 하는 순서가 된다.
“당신들 하라는 대로 다 해봤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 나옵디다.”
입이 댓 발이나 나온 현장 기사들이 참다 못해 현장의 고충과 책상머리 해결책의 괴리를 말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 Can Meeting 5~6 회차 정도.
“지난 회의에서 그렇게 결론 내렸던 것 아닙니까? 해보기는 제대로 해본 건가요?”
책상물림 수재형 엔지니어님의 고춧가루 뿌리기.
회의 석상에는 이런 경우 당연히 전에 없던 냉기류가 흐른다. 현장의 의견은 가재 잡으려면 자갈 하나하나 다 뒤집어 봐야 하는 것 아니냐 식의 Trial and Error 방식의 제안이 될 밖에 없다.
“아니 그걸 다 언제 해본다는 겁니까? 그렇게 뒤적거리며 해결책 찾다가는 날 새는 거 아닌가요?” 등 심한 말까지 나오는 경우도 생긴다.
어쨌든 문제 해결을 위해 봉합은 해야 다음 시도로 넘어가니까, 현장 운전원,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감안한 몇 가지 다른 해결안들이 제시되고 볼(Ball)은 다시 현장으로 넘겨진다. 이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해피 엔딩이련만, 실상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면 Supex 추구 과제도 아닐 것이고, 뒤집어 말하면 목표 수준을 너무 낮게 잡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래서 다시 Can Meeting. 이렇게 거듭하게 되면 Can Meeting은 현장에서 기름 묻은 장갑을 끼어 본 구성원들의 실무회의의 성격으로 변모되고, 회의의 주도권을 잃은 책상 물림 수재들은 자신들의 공헌이 없어진 만큼 마음 속으로든 겉으로든 삐딱하게 삐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 알아서들 하시구려. 그렇게 일일이 답답한 방식으로 하려거든.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우린 모르겠수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고, 어찌 되었든 그 집단 내에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인데, 비록 자기들이 삐져서 스스로 빠졌다고는 하지만, 현안 문제로부터 소외되었을 때 가장 좌절감을 느끼는 당사자가 바로 이들 수재형 사원들인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