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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동원 리챔, 핏물 김치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4.09 11: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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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프레스햄’이라고 해서, 돼지 어깻살 등을 잘게 갈아 누른 뒤 깡통에 담은 가공품이 있습니다. 흔히 이런 형태의 첫 제품 이름을 따서 그냥 ‘스팸’이라고 통칭하기도 합니다.

미국 호멜에서 처음 개발한 이 통조림은 2차 대전을 통해 부동의 위치를 굳히게 됩니다. 미군 기지가 있는 나라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자, 한때 생고기보다 더 인기를 누리기도 한 ‘전설의 식품’이지요.

우리나라 식품업체들도 근래에 많은 유사 스팸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동원F&B(049770)의 리챔도 그 중 하나인데요.

평소 스팸을 먹던 기자는 ‘그래도 국산품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동원 리챔을 사기로 했습니다.

이 부분은 부연 설명이 필요한데, 수입품가게 같은 데서 만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대형할인마트나 동네 슈퍼마켓 등에서 보는 스팸은 호멜사 직수입 스팸이 아니고 CJ제일제당(097950)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국산이냐 비국산이냐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하여튼, 리챔을 사가지고 돌아와 뚜껑을 딴 기자는 경악하고 말았으니…, 표면에 엉겨붙은, 거기에 뚜껑까지 엉겨 나오는 반투명한 덩어리.
   
 

이게 먹어도 무방한 것이라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지만, 어째 식욕을 자극하는 비쥬얼은 아닌지라, 또 하나쯤은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어 할인마트에서 사온 세개들이 묶음을 모두 따보는데, 다 그러네요.

“나의 스팸은 이렇지 않아!”라며 집에 남은 스팸을 뜯어보니, 스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아니 이 사람들은 동원참치부터 통조림 만들며 보낸 세월이 얼마인데 이런 것도 해결 못 하고’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과거에는 스팸도 이런 반고체의 물질이 껴 있었습니다. 기름이라고 표현하는, 혹자는 방부제가 엉긴 것이라고까지 흉악한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이게 육즙이 엉겨서 그런 거라고 하는데, 호멜사에서는 이 부분에 비호감도가 높자 현상을 내건 연구 끝에 전분을 조금 섞으면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육즙이 고기 밖으로 새지 않아 맛도 더 좋아지니 일석이조라고 하네요.

어쨌든, 엉긴 기름(인지 육즙인지)쯤이야 걷어내거나 긁어내고 먹으면 될 일이니, 언젠가 동원F&B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한 리챔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동원F&B는, 1982년부터 동원참치 살코기캔을 내놓은 통조림의 명가이니까요.

당시에 오너 경영자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1인당 GNP가 2000달러 이상 되는 나라는 참치캔을 먹는다는 점을 미리 알고, 곧 우리도 이 선을 돌파할 테니 그러면 참치캔이 인기를 끌 것이라며 이 분야를 개척했다고 합니다.

당시 동원산업(동원F&B의 전신)은 참치캔에 부재료로 넣을 기름으로 원래는 참기름을 넣으려 했지만, 당시 비화를 들어보면, 고온으로 가열하는 과정에서 참기름이 새까맣게 타버려 좌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대안을 찾기 위해 연구와 실소비자를 대상으로 면밀한 테스트를 한 결과 면실유가 수지타산에도 맞고 맛도 적당하다고 결론내, 이 면실유 선택이 '참치캔 대박'의 한 몫을 하게 됩니다.

아마 이렇게 열심히 연구하는 전통을 가진 회사이니, 기름 엉김 현상도 기술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생각해 보건대, 우리가 변변한 통조림 기술도 없던 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기술 강국으로 성장한 것도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월남에 군을 파병하던 시절에는 나라가 무척 가난해 급식 식품을 모두 미국에 신세질 때였는데, 한국군 사기를 생각해 김치를 공급해 달라고 부탁, 미군에서 한국 김치 통조림을 사다가 전투식량에 이걸 끼워 주기로 한미간에 합의합니다. 군인들이 벌어들이는 달러 외에, 김치를 군납용으로 수출해 얻는 이익까지 생긴 셈이지요.

그런데, 한국에 통조림을 제대로 만든 기술이 없어 납품이 지체되는 틈을 타, 일본에서 김치를 납품하려고 했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월 한국군 쪽에서 이를 반대, 무산됐고 한국산 김치 통조림으로 결론이 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동아일보 1966년 2월26일자, 베트남 퀴논파견 특파원 보도).

문제는 막상 오랜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납품받은 김치건만, 통조림 뚜껑을 따 보니 변질되고 통에서 녹물이 새 나와 핏물 김치가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 못 먹겠다고 해 버리면, 일본 업체로 수주권이 넘어갈 게 분명해 보이고 아니면 김치 납품 자체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지라 핏물 김치를 한동안 납품받았다고 합니다.

핏물 김치도 기다리면 발전을 하는데, 2000년대의 한국 기업이, 그것도 참치캔 기름이라는 난제도 노력 끝에 뚫은 동원F&B인데, 스팸 통조림 기름쯤이야 해결 못하겠습니까.

추신: 동원 리챔이 스팸을 따라잡는 그날까지 기다리기 힘든, 그렇다고 스팸 쪽으로는 손이 안 가는 진퇴양난에 빠진 고객님들은 롯데햄 로스팜이 있으니 그걸 드시면 되겠습니다. 롯데에선 이미 기름이 엉기지 않는 프레스햄을 만들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