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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경찰은 의지가 없다”는 ‘잘못된 신호’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4.06 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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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범죄와의 전쟁’을 하겠다고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사정기관들을 독려하던 때다.

당시 호국청년연합회라는 단체가 있었다. 전국적으로 막강한 세를 과시하고 있었던 데다 미국이나 일본에 사무소를 둘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누가 봐도, 정권 실세 비호설이 퍼질 법한 조건이었다.

“(수사기관에서는) 안 잡나, 못 잡나?”라는 식으로 의혹을 받는, 이런 거물급을 내버려 두고 다른 잔챙이를 잡아들여야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검찰에서는 이 단체의 수괴를 지목했다.

그런데, 이 단체의 수괴이던 이○○씨를 잡아들이겠다고 나선 검사가 다소 ‘의외의 인물’이었다. 주로 특수 수사(화이트칼라 범죄 등 규모가 크고 사회 공공적으로 피해가 큰 경제사범쪽을 주로 수사하는 부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함승희 전 검사(이후 16대 국회의원 역임)가 나선 것이다.

기자는 전에 함 전 의원을 인터뷰한 일이 있어 가까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젊은 기자가 보기에도, 전국을 호령하는 거친 깡패를 잡아들일 사람으로는 안 뵈는 분이었다는 인상이 남아 있다. 그러니, 아마 당시 호청련에서도 “응?” 싶었을 것이다.

다행히 함 전 검사가 이끌던 수사팀은 강력수사 경험이 적을지는 몰라도, 특수수사와 공안수사를 오가며 상당한 노하우를 쌓은 팀이었다. 기자들이 경력이 어느 정도가 되면 혹은 자기가 속칭 ‘나와바리’를 열심히 공부를 해 놓으면, 다른 영역에 갑자기 가도 ‘노하우’라는 게 생겨 의외로 쉽게 적응하듯, 이 팀에서도 열렬히 추적을 했던 모양이다.

이 팀은 이○○씨 수사 중에 작은 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이○○씨가 어느 아파트에 들렀다는 첩보에 한밤 중에 거구의 수사관이 몸으로 철문을 부수고 들어가서는, 이○○씨와 많이 닮은 어느 무고한 시민을 검거한 것이다.

하지만 ‘잡고 보니 무고한 시민’이라는 해프닝의 효과는 컸다. 이 일화를 전해들은 이○○씨는 그 뒤 바로 자수를 했다. 함 전 검사와 그 수사팀이 무서웠던지, 어느 지청(지방검찰청에 딸린, 작은 지역을 관할하는 소규모 관청)으로 자수를 해 들어갔다.

경찰청이 6일, 수원 중부서장을 대기발령 조치를 했다고 한다. 1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경찰에 강간 사건 접수가 112 라인으로 급하게 접수됐는데, 사건 처리가 미비해 결국 강간살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피해여성은 강간 중에 남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전화로, 비교적 자세한 위치를 전하며 구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이 이 여성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가면서 결국 살해됐다는 결론이다. 동아일보 같은 경우에는, 경찰은 또 형사과 강력팀 35명을 모두 동원해 범행현장의 상가와 편의점, 불 켜진 주택을 샅샅이 탐문 조사했다고 주장한 자체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신문사 기자가 4일과 5일 범행현장 주변 주민들을 직접 취재한 결과 주민들은 이를 대부분 부인했다는 것이다.

경찰 몇 개 중대라도 풀어 동네를 다 뒤지면 못 찾았겠느냐, 아니 꼭 그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지혜를 짜냈으면 대강의 동네 어귀까지 밝힌 걸 못 찾았겠냐고 분노하는 시민들이 많다. 특히 여성들이 이 사건에 느끼는 안타까움이 큰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정황의 퍼즐을 맞춰 보면서 생각해 보건대, 한 생명이 결국 경찰의 도움을 못 얻어 생명을 잃은 외에도 더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금융 당국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찰의 현재 이 사건 대응 사정을 보면, 범죄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정녕 주고 만 것 같다. 구하고 못 구해서가 아니라(라고 적기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한 생명이 사라진 마당에 더 무거운 다른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도 저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단 적는다) 대응 자체가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하기엔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경찰의 평균치는, 저런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든 이잡듯 뒤져 사람을 못 구하는가라는 패기를 가졌다고 시민들은 믿어 왔다. 설사 성공적이지 못하게 일이 매듭지어지는 경우라도, 여러 여건과 적법절차 등등 그리고 인력의 문제 등으로 못 구할 불가항력도 있다고 여겨 왔다.

그런데, 막상 지금 보면 유니폼 입은 샐러리맨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악질적인 피의자를 고문을 해서라도 죄를 캐라는 것도 아니고, 불법적인 데다 초인적인 걸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통화 내용 자체를 밝히는 문제에 있어서도 파장 축소를 위해 거짓말하는 게 아니냐면서 언론의 추궁을 당하고, 실제로 사이렌을 울리며 그 동네에 출동했는지가 의혹이 제기될 지경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범죄자들, 예비 범죄자들은 이런 보도들을 보며 뭐라 생각할까?

   
 
무쇠 문짝을 부수면서, 뒷줄이 좋은 피의자도 불문곡직 끌고 가겠다고, 지옥에서 온 야차 같이 돌진하지 않으면 피의자는 겁을 먹지 않는다. 아니 요새는 인권 의식이 발달하고 행여나 거물 변호사라도 붙으면 그렇게 일을 해도 될까 말까다. 그런데, 수원 사건처럼 이래서는 수사권 독립 운운하는 데 찬성 여론은 커녕, 온갖 잡범들을 호령할 위상을 깎아 먹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흉악범 따위들에게 “경찰은 112 신고가 들어가도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잘못된 신호’를 줬다. 이 죄를 씻으려면,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