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오래 전, 외국인 선교사가 고아 한 명을 앉혀 놓고 수업을 시작한 학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학교는 오래도록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으로 도약하려 몸부림치던 빈국이던 우리나라에 고등 인재를 공급하고 상대적으로 위치가 낮았던 여성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이화여자대학교의 이야기입니다.
근래 이대가 개인정보를 조심성 없이 다뤘다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답니다.
학생들의 취업을 돕는 이 대학 경력개발센터에서 선배들이 쓴 자기소개서를 입수, 책자로 묶어 나눠 줬다는 이야기인데, 물론 세칭 명문대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장기화된 취업난’ 속에서 취업 전선에 막 나선 후배들에게는 이 책자가 ‘가뭄 속 단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묶은 쪽도 이런 선의를 갖고 한쪽 측면에서만 일을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쓴 사람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정보를 모아 배포하다 보니,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실패담처럼 껄끄러운 개인사가 여과 없이 나가 버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모의면접 서비스 등을 받기 위해 필요하다고 해 자기소개서를 냈는데 그게 생각하지 않은 경로로, 그것도 실명도 함께 나갔다니, 그야말로 ‘패닉’에 빠질 법합니다.
뿌린 쪽 입장도 이해가 가고, 자기 정보가 뿌려진 학생 입장도 이해가 가는 한편, 그런 와중에 회수에 나선 학교 측에 좋은 샘플 담은 책자를 줬다 뺏는 게 어디 있느냐며 짐짓 항의를 하면서 버티고 싶은 후배들의 마음도 짐작이 됐다가 아주 복잡하고 뭐라 표현할 길이 없네요.
이런 상황에 예전 이대 총장을 지내신 신인령 전 교수의 잘 알려진 학창 시절 일화를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신 전 총장은 노동법 전문가로 명망이 있는 분이자 학업과 학교 살림을 이끈 스승인 동시에, ‘이화의 딸’로 학생들에게 대선배가 되는 분입니다.
신 전 총장은 원래 장학금을 타며 얌전히 공부하던 학생이었는데, 한일 수교 추진 과정에서 ‘굴욕 외교 반대’ 운동에 나섰다가 수배가 됐었다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배 학생들을 제적했던 다른 대학들과 이대의 처신은 좀 달랐던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 홍준표 의원 회고록을 보면, 홍 의원이 학생이던 당시 고려대 학생 중 시위 주동자로 찍혀 체포되면 제적 절차를 밟고 바로 입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태영 변호사나 윤후정 교수 등 이화여대의 당시 교수들은 학생들의 학적을 보호해 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졸업 후 신 전 총장은 은사들의 관심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정권에 맞섰다는 괘씸죄까지 겹쳐 많은 학생들이 끌려가고 제적당하던 군사정권 시절, 적잖은 눈치와 압력에도 아마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래도 무죄 추정이라는 게 있는데, 수배만으로 학생을 어떻게 학교에서 내쫓으랴”라는 법학의 기본 논리가 이대 편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기본적이지만, 실낱같은, 그야말로 공염불 같은 논리로 학생을 지켜주던 시절이 없었다면, 아마 이대가 현재에도 누리는 세칭 명문대의 위상은 지금만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적립금도 많고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학교 중 하나이고 아무런 압박을 가할 거북한 존재들도 없는 상황인데, 다만 취업난 따위에 학생들을 위해, 또 다른 학생들의 인격권을 짓밟자는 논리가 어째 나오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