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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거래소, 증권시장 하소연 귀담아 들어야

이수영 기자 기자  2012.04.05 09: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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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해외기업의 국내 주식시장 진출이 1년여 만에 재개된다. 일본 금융그룹 SBI홀딩스의 주력 자회사인 SBI모기지가 지난 3일 코스피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 행사를 갖고 구체적인 사업구조와 상장계획을 밝혔다. SBI모기지는 일본 내 주택대출 전문 모기지뱅크로 이달 중 코스피 시장에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증권가에서는 대표주관사인 하나대투증권이 ‘해외기업 디스카운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순수 일본 회사인 SBI모기지의 상장 업무를 추진한 내막에 관심이 쏠렸다. 업계에 따르면 하나대투증권은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SBI모기지와 접촉했다. SBI모기지 역시 입찰 경쟁 없이 하나대투증권을 대표주관사로 낙점했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여기에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SBI모기지의 모회사인 SBI홀딩스 기타오 요시타카 회장의 개인적인 인연이 적잖이 작용했다. 기타오 회장은 과거 노무라증권과 소프트뱅크를 거쳐 SBI홀딩스를 창업한 금융인 출신 사업가다.

이 관계자는 “기타오 회장과 김 전 회장이 과거 동료로 일한 것은 아니지만 노무라 증권 재직 시절 쌓은 친분이 인연이 돼 이번 상장 주관 업무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됐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SBI모기지의 국내증시 진출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중국고섬 사태로 외국기업에 대한 평가가 바닥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일본 내 인지도가 높은 대형 금융그룹의 계열사라는 메리트도 빛을 보지 못할 상황이었다.

SBI모기지가 국내 주식시장 진출을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회사의 코스피 상장심사 통과를 두고 증권가는 일본 기업 최초의 유가증권시장 진출사가 탄생할 것이라며 반색했다.

특히, 중소형 증권사들은 국내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주관사 ‘이름값’을 덜 따지고 수수료 수익이 높아 외국기업의 상장 추진 소식에 목말랐던 터였다. 그러나 증권신고서는 지난해 8일에야 접수돼 SBI모기지는 실제 상장까지 약 반년정도 시간을 끌었다.

대표주관사인 하나대투증권 관계자는 “중국고섬 사태 이후 해외기업에 대한 당국과 투자자들의 시선이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며 “3월 결산법인인 회사의 실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상장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 코스피에 상장한 중국고섬이 두 달 만에 회계문제로 거래가 정지된 후 같은 해 10월 일본 기업 최초의 코스닥 진출사였던 네프로아이티가 상장폐지 되는 등 악재가 겹쳤다. 이 탓에 작년에만 9개의 해외기업이 국내 상장 계획을 줄줄이 접었다. 해외기업 IPO가 1년 새 그야말로 씨가 말랐다는 얘기다.

업계는 이번 SBI모기지의 공모 과정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공모가 흥행하면 그간 차일피일 미뤘던 해외기업 상장을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까닭이다. 하나대투증권 역시 이번 상장을 도화선 삼아 외국기업 IPO 추가 유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나대투증권 관계자는 “최근 기관투자자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진행한 투자설명회에서 반응이 제법 좋았다”며 “공모가 잘 진행되면 이후 2개 정도의 일본 기업 IPO를 추가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기업 IPO 시장에 봄이 오기까지는 적잖은 시련이 예상된다. 투자심리가 시들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거래소 등 심사 당국이 해외기업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입장에서는 해당 기업 실사와 관련해 주관사(증권사)가 더 많은 책임을 떠안게 된 점도 부담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모 증권사 IPO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너도나도 IB 시장에 뛰어들면서 수수료율 경쟁이 치열해져 수익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며 “그래도 회사마다 별도의 인력을 동원해 발품을 팔아가며 상장 예비 기업을 모시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렇게 발굴한 기업이 얼마나 건실한지 최종 심사해야할 한국거래소가 증권사에 모든 부담을 떠넘기려 한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시장건전화를 보장해야할 당국이 이를 민간 기업에 미루는 바람에 시장이 더 움츠러들고 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해당 기업이 부실 사실을 마음먹고 속이려하면 민간 증권사로서는 이를 확인할 재간이 없다”며 “최종적인 기업 심사는 거래 당국이 책임져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원인은 중국고섬 사태 이후 투자자는 물론 거래소까지 심각한 트라우마에 갇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른바 ‘스크루지 심보’ 혹은 ‘손실혐오현상’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개미투자자가 주식으로 같은 금액을 벌었을 때보다 잃었을 때 더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뜻한다.

국내 주식시장의 역사는 1956년 3월 대한증권거래소가 개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해외기업이 국내 증시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으로 불과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직접 손해를 입은 투자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거래소까지 트라우마에 빠져 무조건 ‘스크루지 심보’로 시장 장벽을 높이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지난해 국내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을 불러온 중국고섬 사태를 기점으로 외국계 상장사에 대한 자정작용이 본궤도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의 시행착오를 ‘성장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국거래소의 치밀한 대응과 투자심리의 회복도 함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