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서두에서 미리 밝히고 시작하도록 하겠다. 이 글은 CGV(079160)를 비판하거나, CGV의 장애인 배려 정책 그 자체에 대한 경계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 특정 업체의 특정 정책을 거론해 가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게 돼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다. 해당사에서는 그저 ‘호사다마’이거나 특정 정책에 관련, 파생된 ‘기우’라고 생각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과거 미국의 인종 차별 경향이 아직 남아있을 시절의 이야기다. 이렇게 적어 놓으면 ‘옛날 이야기’ 같지만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니다. 미국은 1960년대까지도 인종 차별이 공공연히 존재했다. 특히 미시시피주를 위시한 몇 개 남부 주들의 경우 극심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 지역의 인종 차별이 악명 높았던 것은, 바로 ‘따로 그러나 평등하게(separate but equal)’로 요약되는 흑백 분리 정책 및 인종 차별법이 오래 맹위를 떨쳤기 때문이다.
교육, 공공 서비스 등을 제공받는 데 있어 분리하되(예를 들어, 흑인과 백인이 한 데서 학교를 다니지 않게 하더라도) 평등만 지켜주면(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 설치 비율을 맞춰 주면) 문제가 없다는 법해석론이 바로 ‘separate but equal’ 주장의 핵심이다.
나중에 미국 헌법학에서는 이를 합헌으로 봤다가(이런 연방대법원 판례도 있었음), 나중에 ‘브라운 사건’이라는 계기를 통해 위헌으로 선언됐다.
이번에 새삼 과거 미국 판례(우리로 따지면 헌법재판소 심결례)를 떠올린 것은 CGV의 장애인 정책, 일명 ‘장애인 영화 관람 데이’ 지정이 이달 초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CGV는 앞으로 매월 셋째 화요일을 장애인 관람 데이로 운영하고 가장 좋은 시간대(일명 ‘프라임 타임’)을 할애해 한줄 자막, 화면 해설 등 장애인 배려 기능이 들어간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이 행사 소식은 CGV가 국가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5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뉴스와 겹쳐 여러 모로 흐뭇하고 사회공헌을 통해 상생하는 기업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배려가 극장업계에 일정한 쿼터를 떼어 주면 된다는 식으로 왜곡돼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초, 우리 회사 기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첨단 영화 상영관이 나날이 늘고 있지만, 장애인을 배려하는 모습은 이에 못 미치고 있다 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극장의 장애인 전용 지정석 사정이 서울 신촌 아트레온의 경우 전체 2319석 중 171석으로 5% 가량으로 가장 우수한 축에 들었다 한다. 영등포 롯데시네마가 19석, 같은 지역 CGV가 21석, 신천의 메가박스는 25석 등 전반적으로 보면 5%를 밑돌며 전체 좌석 대비 1~3%인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자리를 맨 뒷자리인 경우가 많은 등 선택권이란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 장애인 관람 데이를 일정 부분 빼 주는 걸로 사회적 책임을 모두 면피하려는 태도가 극장가에 은연 중 퍼진다면, CGV가 이번에 이런 좋은 제도를 도입한 보람은 상쇄돼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무릇 극장이란 좋은 영화가 있을 때 좋은 사람과 편하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장애인들의 ‘이동권’ 논의가 본격화되던 때를 전후해 ‘저상 버스’가 일정 숫자 이상 도입된 것이 좋은 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여러분 출퇴근길에 혹은 업무 중 오가는 길에 휠체어 탄 이가 버스 탈 일이 하루 종일 봐야 몇 건이나 목격되는가? 하지만 언제일지 모를 그 외출을 위해 저상 버스가 일정 수준 돌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가 널리 장애인 정책에 가미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좋은 정책이 분리 정책으로 가지 않기를, 장애인과 평범한 시민들이 분리되지 않고 평등하게 스크린을 감상할 수 있는 계기로 이번 CGV의 결단이 확산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