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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뼛속까지 훑어본 한진해운 “이런 회사였어?”

전 야드 첫 자동화…‘한진 수호호’ 갑판만 상암월드컵경기장 4배

부산= 박지영 기자 기자  2012.04.04 18: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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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매출액 9조5232억‧영업손실 4926억원‧당기순손실 8235억원. 올 초 공개된 2011년도 한진해운(117930) 성적표다. 쉽게 말해 지난해 벌어들인 수익보다 나간 돈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숫자만 놓고 보면 낙제점에 가깝다. 주가 또한 1만6000원대로, ‘국내 1위 선사’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참고로 업계 2위인 현대상선 주가는 3만1500원(4월4일 장마감 기준)으로 한진해운 보다 2배가량 비싸다. 흔히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숫자로도 표현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잠재력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한진해운을 부산신항만에서 샅샅이 훑어봤다.

세계를 호령했던 이집트와 로마의 공통점은 고대 지중해를 장악했다는 점이다. 스페인과 영국 또한 바닷길을 호령하며 세계경제를 이끌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해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다. 세계 교역량의 90% 이상이 바닷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장보고의 후예인 대한민국도 1949년 해운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우리나라 정부는 그해 12월 대한해운공사를 설립,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대한해운공사는 한진해운 모태이기도 하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경쟁국들을 순조롭게 누르며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그리스와 일본,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랭킹 5위다. 실제 국내 수출입물량의 99.8%가 해운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선박공급 과잉‧물동량 감소‧운임하락 식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시장은 크게 훼손됐다. 여기에 고유가까지 덮치면서 업계는 극한의 상황까지 몰렸고, 결국 지난해 초 국내 빅4 해운사인 대한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한진해운의 ‘못난 성적’이 경영자 탓만은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고 숫자로 나타난 통계치를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지난 2일 오전 한진해운의 심장, 한진해운신항만㈜을 찾았다.

◆동북아 허브항만의 중추 한진신항만터미널 

경상남도 진해시 안골동 일원에 위치한 한진해운신항만㈜ 역사는 3대 국책사업 중 하나로 진행되어온 부산신항 프로젝트 2-1단계 개시와 함께 시작된다. 한진해운신항만㈜는 한진해운이 자본 100%를 출자해 만든 부두운영 전문회사다.    

전체면적 69만6300㎡(약 21만평)에 암벽길이 1.1㎞, 수심 18m인 한진신항만터미널은 1만TEU급 초대형 선박 3척을 동시에 매어둘 수 있다. 1TEU는 가로 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1개를 실을 수 있는 크기다.

   
야드에 수북히 쌓인 컨테이너. 한진수호호는 한번에 20피트 컨테이너 1만3100개를 실을 수 있다.
한진신항만터미널의 핵심은 바로 전 야드 무인자동화다. 여기에 전자태그를 도입, 항만운영시스템과 연계시키면서 시간당 물동량도 크게 높였다.

예를 들어, 세계 각국에서 온 컨테이너를 실은 선박이 항구에 도착하면 ‘갠트리 크레인(STS Crane)’이 서서히 작동하면서 손수 컨테이너를 들어올린다. 더욱이 ‘탬덤(Tandem)형 스프래더(Spreader) 방식’이 도입된 갠트리 크레인은 국내 최초로 40피트 컨테이너 2대 혹은 20피트 컨테이너 4대를 동시에 들어 올릴 수 있다.
 
한진신항만터미널은 또 한 블록당 2대의 ‘레일형 무인 자동화 크레인(ARMGC)’을 21개 전 블록에 도입, 국내 최초 전 야드 자동화를 가능하게 했다. 레일형 무인 자동화 크레인이란 장치장 내 레일을 따라 크레인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컨테이너를 층층이 쌓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다만 품이 든다면 몇몇 원격조정 담당자가 모니터를 통해 컨테이너 규격에 맞도록 집게를 조절하는 정도다.

이 모든 장비운영은 항만운영통합시스템(TLC)을 통해 이뤄진다. 야드를 오가며 컨테이너를 옮기는 트럭의 동선을 짧게 하는 것도, 공차를 최소화하는 스케줄링 작업도 모두 TLC가 도맡아서 한다. 때문에 선박이 접안하지 않은 야간에도 자동화 프로그램에 따라 크레인이 무인으로 작동, 24시간 작업수행이 가능하다. 

   
전 야드 무인자동화로 운영되고 있는 한진신항만터미널. 무인 갠트리 크레인이 한진 수호호에 컨테이너를 싣고 있다.
특히, 한진신항만터미널은 TLC에 전자태그(RFID)를 도입, 업무효율을 한층 더 상향시켰다. 전자태그가 부착된 컨테이너가 들어오는 순간 RFID리더기가 이를 판독해 야드 크레인을 움직이는 식이다.

또한 전자태그에는 물건의 출하시점 등이 내제돼 있어 가장 늦게 반출되는 컨테이너 먼저 바닥에 깔릴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업무 자동화는 곧 처리물량 증가로 되돌아왔다. 2011년 전체 처리물량은 217만TEU로 2010년 대비 30%이상 증가했으며, 개장 2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또 지난해에는 부산항만공사가 선정한 ‘2010년 올해의 터미널’로 뽑히기도 했다. 이 상은 부산항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사 9곳 중 생산성이 가장 높은 기업에 주는 상이다. 2010년 한진신항만터미널이 처리한 물동량은 155만3000TEU로, 이는 부산신항 전체 물동량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아파트 28층 높이 한진수호호 타보니…

한진해운의 여력은 이뿐만 아니다. 어려운 해운경기에도 불구, 오히려 한진해운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진 수호호’다. 한진해운은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던 지난 2008년 1만3100TEU급 수호호를 처음 발주했다.

   
부산신항 3부두에 정박돼 있는 1만3100TEU급 한진 수호호.
전장 366m‧폭 48.2m‧깊이 29.85m‧높이 70.3m‧화물 적재능력 1만3102TEU. 국내 최대 규모 ‘한진 수호호’를 나타내는 단위다. 얼핏 보면 그저 ‘큰 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명 건축물과 비교해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먼저, 이 배의 길이는 뉴욕 맨해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381m) 높이와 맞먹는다. 수호호를 세울 수만 있다면 미국 동부지역서 가장 높은 빌딩과 별 차이 없다는 얘기다. 배 높이도 만만찮다. 아파트 1층 높이가 평균 2.4m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배의 높이는 아파트 29층 보다 높다. 

여기에 적재능력까지 따지면 입이 쩍 벌어진다. 컨테이너(높이 2.6m) 총 1만3100개를 실을 수 있는 수호호에서 이를 내려 차곡차곡 위로 쌓으면 그 높이는 3만4060m. 이는 에베레스트산(8848m)을 2번이나 왕복해야 하는 길이다.

실제로 본 수호호의 위엄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항만에서 배로 연결된 철체형 사다리(갱웨이)를 따라 갑판에 올라서는 데만 5분여. 갑판 너비만 상암월드컵경기장 4배에 달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선교(조종실)에 오른 후에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수호호의 높이는 끝이 없었다. 옆에 정박해 있던 2700TEU급 ‘한진 밴쿠버’호가 과장을 조금 보태 ‘통통배’로 보일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갠트리 크레인은 쉼 없이 수호호에 컨테이너를 싣고 있었다. 수호호의 첫 항해가 예고된 까닭이었다. 수호호는 지난 3일 오후 4시 컨테이너 2300개를 싣고 중국 상해를 거쳐 얀티안(중국)-싱가포르-수에주-알헤시라스(스페인)-함부르크(독일)-로테르담(네덜란드)-르하브르(프랑스) 항해에 나섰다. 노선 한 바퀴만 도는 데도 꼬박 11주일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수호호 한도선 수석선장은 “한국과 중국 아시아에서 수출품을 싣고 유럽으로 가 수입품을 싣고 돌아오는 코스”라며 “정해진 기항지를 마치 시내버스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운항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진수호의 최대출력은 6만1776KW. 약 9만3000마력에 달한다. 쉽게 150마력의 아반떼 600대가 동시에 배를 끈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연료효율성은 더 좋아졌다. 수호호가 전속력으로 운행할 때 드는 하루 연료소모량은 약 236톤. 이는 8000TEU급 선박과 같은 수준이다.  

한편, 한진해운에 수호호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국내 첫 1만3100TEU급 컨테이너선이라는 점도 있지만, 선대회장인 고 조수호 회장의 이름에서 선박명을 따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