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원하지 않았지만 여기에 태어난 우리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것은 과거이고, 미래에 가장 확실한 것은 죽는다는 것, 단지 현재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흘러버린 과거를 가정해 보는 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겠다.
19세기 아버지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20세기 아들들이 나라 잃은 설움을 혹독하게 당했었다. 이는 지금의 우리가 현명하지 못하면 우리들의 아들과 손자들이 똑 같은 설움을 당하게 될 지도 모름을 의미한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사람에게 역사는 똑 같은 과거를 똑 같이 한 번 더 반복하게 하므로.
누구나 한 번쯤은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7세기 통일과정에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을 했다면 저 드넓은 만주와 강대국’ 운운하는 가정을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랬었을 수도 있었다. 연개소문과 김춘추의 엇갈린 선택이 신라 통일의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기 보다 아쉽다는 것인데 그건 연개소문이 김춘추의 제의를 받아 백제를 협공할 수 없었던 정권의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복문서를 찢고, 그걸 다시 주워 붙이는 열지자(裂之者)와 습지자(拾之者) 모두 충신이다. 청나라에 맞서 결사항전하자는 김상헌과 항복해서 실리를 따르자는 최명길의 선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최명길일지, 김상헌일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 일지를 선택해야 한다. 과연 어느 길이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 올바른 길이 될 것인가.
궁예∙견훤∙왕건의 선택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국가의 정치·경제·문화의 변화, 그리고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시대정신을 꿰뚫은 ‘역사적 왕건’의 승리는 당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대의 과제는 인식했으나 시대의 변화까지를 읽는 역사의식이 아쉬웠던 개혁 노선의 이승휴와 이제현. 마침내 고려의 개혁을 포기하고 42세 장년의 나이에 이성계를 찾아가 혁명적 조선의 밑그림을 그렸으나 이후로 500년 동안 역적이 되어버린 정도전. 탁월한 외교력과 실리의 광해군 대 실리도 정치력도 없었던 인조의 엇갈린 선택이 이후의 조선에 미친 영향.
근대국가의 여명에서 자주와 타협, 아래와 위로 선택을 달리했던 전봉준과 김옥균.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민비는 과연 조선의 국모였던가. 지금 우리에게 긍정이나 또는 부정의 그림자를 곧바로 드리운 해방 전후 공간에서의 불꽃 같은 선택의 길목에서 명멸해간 이회영, 오성륜, 최창익, 송진우, 여운형의 선택까지1천 5백 년 시간의 군데군데에 박힌 역사적 네거리들을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이 꼼꼼히 훑어 봤다.
4월11일, 역시 대단한 선택의 네거리다. 조선의 운명은 몇몇 리더들의 판단이 좌우했지만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지금은 투표하는 사람들도 후손들이 묻는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단한 역사학자 18인이 공저했고, 도서출판 푸른역사에서 출판했다.
프라임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