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춘추감정부(春秋感精符)에는 ‘왕자(王者)의 정치가 가혹하면 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나온다. 제주 4·3항쟁사건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논쟁으로만 부각된 것에 대한 죽은 자의 분노일까? 서울은 19년만에 4월에 눈이 내렸다.
지난 3일 1947년 제주 4·3사건이 발생한지 64년째를 맞았다. 이날 제주도 평화기념관에서는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4·3 위령제가 열렸다.
이번 위령제는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평화로운 미래를’이라는 주제로 열렸으나 위령제는 정치 선거장으로 변질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새누리당은 논평을 통해 “제주 4·3사건이 일어난 지 64년이나 지났고, 소모적인 이념논쟁은 청산돼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4·3사건으로 인한 혼란과 분열은 종식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제주신공항 건설을 지역 공약으로 내걸며 “제주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에 힘쓰겠다”며 제주도 표심 잡기에 나섰다.
그러나 정치적 이념논쟁의 장으로 이용하지 말자는 한나라당도 주장도,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이용하는 민주통합당도 제주 4·3사건을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제주 4·3사건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낯설 법한 역사이다. 또한 중장년층에게도 진상규명이 있기 전까지 ‘남로당 빨갱이’의 폭동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기자인 필자가 4·3사건을 알게 된 것도 우연히 읽은 소설에서였다. ‘순이삼촌’, 1978년 출판된 이 소설은 제주 4·3사건이라고 불리는 북촌리 학살을 참상을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난민 대학살은 레드 콤플렉스와 함께 죽은 이들을 정치적 불순군자인 빨갱이로 몰아붙였고, 살아남은 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들춰서는 안 되는 과거의 일이 된 것이다. 결국 소설속의 ‘순이삼촌’도 정신적 질환을 앓다 자살해 버린다.
‘창작과 비평’에 실린 이 소설은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작가 현기영은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침묵되어진 진실을 밝힌 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현기영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생을 4·3에 얽매이며 살아왔다”며 “왜 평생 4·3에 얽매여 살아가는냐는 말에 4·3을 떠나려고 생각도 헸으나 그런 마음을 먹을 때마다 4.3 영령들이 꿈에 나타나 ‘4·3에 대해서 뭐를 했다고 4·3을 떠나려 하냐’며 나를 고문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주 4·3사건을 직접 겪은 세대들이 모두 이 땅에 묻힐만큼 시간이 오래 지났다. 그러나 4.3사건은 역사로 남아 여전히 진실과의 싸움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4·3사건은 여전히 역사교과서에서 제외된 상태며, 유가족에 대한 피해보상 및 명예회복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말 몇마디에 잊혀지는 역사가 아닌 죽은 이에 대한 미안함에 침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