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우리말에 오만(五萬)가지 생각, 오만소리 등의 말이 있다. ‘오만’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종류가 많은 여러 가지’를 이른다. 근심이나 염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였거나 예상 될 때 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렌 N. 샤노어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사람은 매일 오만가지 이상의 생각을 하고 산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6만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한다고 추정된다. 이런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를 약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하는 생각의 90% 정도가 어제 했던 생각과 똑같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람들과 환경으로 부터 끊임없이 자극 받아 예측 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신경과 조건반사의 다발이 되어왔다. 우리는 케케묵은 기억이 진부하게 반복되는 것의 희생양이 되어왔다. 그리고 얄궂게도 오늘 나를 괴롭히는 것은 어제 남겨진 나 자신이다.”(N. 샤노어 외 5인, 마음을 과학 한다)
흔히 우리가 ‘어른’이라고 일컬을 때, 그 이유는 대개 나이에 근거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체적으로 성숙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에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보다 많이 축적하게 된다는 묵시적인 동의 때문이다. 과거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라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생각이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지식과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습득의 속도는 오히려 젊은 사람일 수록 빠르다. 어른이 어른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살아있는 생각’이 기껏해야 10%라고 하지만 이 조차도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환경으로 인하여 깊은 사색의 단계에 이르기 힘들다. 따라서 사색의 부재상태는 천박성을 낳고, 자극에 즉각적이고도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을 드러내게 한다. 뿐만아니라 “신의 죽음 이후에는 건강이 여신의 자리에 등극한다”는 니체의 말이 있듯이 건강하고 젊어보이는 사람일수록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현실 역시 나이든 사람들이 어른 행세를 할 여지가 점점 줄어들게 만든다.
그뿐 아니다. 대니얼 길버트는 사람들의 기억에 관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현상의 부재를 고려하지 못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판단하기 때문에 대단히 취약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거나 계획한다는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만을 수집하고 대화중에도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지는 습성이 있다. 이처럼 사회가 점점 천박해져도 어른이 없는 사회에서는 문제를 제기할 만한 사람이 없다.
최근에 발행된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라는 책에 따르면, 오늘날의 사회를 지칭하는 소위 성과사회는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극단적인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하고 영혼의 경색을 가져온다.
또한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라는 특성이 있다. 한마디로, 탈진과 고독으로 병이 깊어지고 있는 우리시대를 치유해 주는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배움의 목표는 니체에 따르면 ‘고상한 문화’이다”(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장중구 한국코치협회인증코치/ 공학박사 / (현)상진기술엔지니어링 전무 / (전)삼성전자 생산기술센터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