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ELW 투자가 역적질도 아니고 너무 심하죠. 저희도 규제 수위 좀 낮춰달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총동원했는데 어쩝니까. 투자자들은 시장이 이 지경될 때까지 뭐했냐고 윽박지르시지만 저희도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29일 오전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 강의실. 지난해부터 대폭 강화된 ELW(주식워런트증권) 규제안에 대한 증권사 관계자들의 불만 섞인 토로가 이어졌다. 당국이 ELW 투자자와 LP(유동성공급자)를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다는 한탄부터 기존 투자자들이 “시장이 이렇게 쪼그라들 동안 증권사들은 당국에 입도 뻥끗 못 했냐”는 ‘폭풍항의’를 해대는 통에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푸념도 나왔다.
이날 행사는 한국금융투자협회(이하 금투협)가 주선했다. JP모건, 메릴린치, BNP파리바, 맥쿼리, 한국투자증권 등 업계 파생상품 담당 임원들이 참석해 ELW 시장 동향 등을 설명했고 20여명의 출입 기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지난해 12개 증권사 대표가 줄줄이 법정에 선 전용선 특혜 논란 이후 업계의 첫 ‘공청회’였기에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2시간여 동안 각 증권사 임원들은 두 가지 주장에 목소리를 높였다. △ELW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손해를 보고 LP만 돈을 벌었다는 주장은 ‘오해’이며 △당국의 규제가 소액 개인투자자들의 시장 진입을 막아 시장이 위축됐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2010년 2조원 이상이었던 ELW 일거래대금은 지난해 10월 기본 예탁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1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이달 27일 현재 448억원으로 1년 만에 시장 규모는 90% 이상 축소된 셈이다. 업계는 당국의 무리한 규제가 ELW 상품 시장을 고사 직전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ELW 시장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홍콩이 지난해 스캘핑 관련 스캔들로 시장 규모가 20% 정도 줄었고 유럽도 파생상품 규제가 강화되면서 시장이 다소 위축됐지만 우리나라처럼 당국의 직접 규제 때문에 시장이 쪼그라든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이날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당국의 강경일변도 규제안은 투자자를 위한 조치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일부 폐해가 불거졌지만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무조건 신규 투자를 막는 식으로 시장을 폐쇄하려 드는 것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규제안이 허점투성이라는 것은 대부분 공감했다. 하지만 문제의 ‘규제 폭탄’이 쏟아졌을 때, 업계는 왜 이를 막지 못했을까? 이 같은 지적에 증권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했지만 당국의 규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화살은 업계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이를 관철 시킬 의무가 있는 금투협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날 금투협 주최 강연회는 ‘죽은 자식 나이세기’에 불과했다. 당국의 ELW 시장 규제안은 지난해부터 이달까지 3차에 걸쳐 제정, 시행되고 있다.
기본 예탁금 1500만원 없이는 신규 투자를 할 수 없고 LP의 호가 제출 기준은 매우 까다로워졌다. ELW 신규상장은 월 1회로 제한됐으며 기초자산 선정 기준도 훨씬 엄격해졌다. 이미 투자 상품으로서의 매력이 상당부분 훼손된 셈이다.
획기적으로 규제가 완화되거나 국내 투자자들의 성향이 바뀌지 않는 이상 ELW 시장 축소와 투자자 이탈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금투협은 해를 넘겨 시장이 1/10 토막 난 뒤에야 ELW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라며 기자들을 소집했다. 이 같은 설명회를 월례 행사로 진행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초저금리 기조 속에 기존 예·적금 보다 금리가 높은 대체투자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미 원금 보장과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매력에 ELS를 비롯한 장내 파생상품 가입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미 규제의 벽에 갇힌 ELW 시장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뒤늦게 투자매력이 사라진 상품을 되짚고 당국을 탓하는 것 보다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착한’ 투자상품 연구에 머리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