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셋째 며느리 뱃속에 또 딸이래. 이제 손녀딸만 여섯이야. 다들 생긴 건 외가 쪽 닮아서 별론데 계집아이들이라 피부가 예술이야. 요즘엔 걔들 피부만 눈에 들어와 언니. 이번에 몇 군데 필러한 거 가뜩이나 맘에 안 드는데…"-얼굴 주름이 다소 개선된 아주머니.
"아니 뭘 그렇게 따져~ 오랜만에 본 내가 예쁘다면 예쁜 거지. 이왕 돈 들였고 별 이상 없으면 예뻐졌다 예뻐졌다 생각하고 계속 거울이나 봐. 돈 들인 거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 붉은 볼 터치가 하차 후에도 눈에 아른거렸던 아주머니.
어림잡아도 예순은 넘어 보이는 두 분의 말 흐름은 이제 막 사춘기 초입에 접어든 소녀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얘기를 하나 언급하겠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나 들어가게 된 인큐베이터 안에서 산소 과다로 인한 백내장이 발생, 후천성 실명이 된 스티블랜드 하더웨이 모리스(Stevland Hardaway Morris)라는 소년은 어둠 속에 하루하루를 살다가 초등학교 시절 한 마리 쥐 덕에 빛을 찾게 됩니다.
수업 중 나타난 쥐 한 마리는 교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후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습니다. 사라진 쥐를 찾기 위해 아이들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자 선생님은 조용히 소년을 불러 쥐를 찾아보라고 합니다. 소년은 곧 교실 구석 벽장에서 쥐를 찾아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만큼 귀가 밝을 것이라고 판단한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한 것입니다.
방과 후 선생님은 소년에게 얘기했답니다. "넌 안 보이는 대신 어떤 아이도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단다. 그건 바로 너의 특별한 귀야."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소년은 이후 한 번 들은 소리는 잊지 않게 됐고 여러 악기의 소리를 확실히 구분해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소년이 다칠까 우려한 어머니는 아들을 집에서만 지내게 했지만, 라디오를 듣고 기타를 연주하며 재능을 키웠습니다.
소년은 능력을 갈고 닦아 1963년, 열두 살 때 첫 번째 음반을 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이 소년은 현재도 많은 뮤지션이 영감의 원천으로 꼽고 있는 1950년생 '스티비 원더'랍니다.
이 얘기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의 대표적인 예로 수업이나 논문에 종종 쓰이고 있습니다. 이 용어는 타인의 기대나 관심의 영향을 받아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이자 젊은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의 얘기에서 유래됐습니다.
자신이 만든 여인조각상을 사랑하게 된 피그말리온은 여인상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 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빌었고 깊은 감명을 받은 신이 여인상을 사람으로 만들어 결국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심상에 유사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입니다. 플라시보 효과란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을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환자가 실제로 약을 투여한 것과 같은 영향을 받는 심리학적 기제효과를 뜻합니다.
이처럼 플라시보와 피그말리온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나 지속적인 바람이 실체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으로 희박한 가능성을 가진 것이라도 기대를 갖고 그대로 움직이면 실현할 수 있다는 사례로 인용되곤 합니다.
또 다른 기대창출 효과도 있습니다. 하버드대 사회심리학과 교수인 로젠탈 교수가 밝힌 이론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입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실시, 전교생에게 학업 성취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들 20%를 알려주고 8개월 후 테스트를 했는데 이 20% 안에 선정된 학생들은 평균 점수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사실 이 20%의 학생들은 지능검사와 무관하게 무작위로 선정된 학생들이었습니다.
피그말리온과 플라시보, 로젠탈은 긍정적 사고와 기대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미에서는 동일하지만 피그말리온은 칭찬, 플라시보와 로젠탈은 기대에 따른 변화와 밀접합니다.
기대와 칭찬, 바람은 사람에게 본디의 능력을 뛰어넘는 변화를 일으킬 만한 큰 힘을 가졌다는 사례를 종종 접하곤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원체 부정적인 면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시크한 성격인지라 '긍정의 힘'이라는 '시크릿'(론다 번의 저서)풍의 말을 듣기만 해도 수족이 오글거립니다만 어느 상황에서나 잃지 말아야할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엔 동의합니다.
사실 전 이날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아주머니의 대화를 듣고 난 후 의외의 곳에서 긍정의 영향을 받은 걸까요? 어느 순간 입꼬리가 올라가더군요.
잘해보려 했던 일이 비수가 돼 돌아오거나, 선의로 행한 일이 오히려 타인에게 상처가 됐거나 했을 때 한번쯤 "알이즈웰"(all is well, 모두 잘 될 거야·영화 세 얼간이 대사 중)을 되뇌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