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방인’을 쓴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위대한 명작은 길모퉁이 레스토랑이나 회전문에서 태어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회전문, 요새는 힘들여 손잡이를 밀지 않아도 되는 자동 회전문도 있어 더 편리한데요.
회전문의 역사는 18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회전문을 만들게 되면 가운데 원통형 공간 안에서 마치 날개바퀴처럼 문짝이 돌아가게 되므로(일종의 격벽이 생겨 문이 열려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음), 일반 여닫이 혹은 미닫이 방식의 수동문이나 자동문을 열고 닫는 데 비해 에너지 효율면에서 우수하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내부의 덥힌 공기나 식힌 공기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회전문은 건물의 출입자가 잠시 멈추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우선 직접 미는 수동 회전문이든, 자동 회전문이든 격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어 슬라이드 방식의 대형 자동문보다는 출입 관리에 용이하지 않느냐는 풀이가 있고요. 또 자동 회전문의 경우에는 괜히 서두르다 유리문을 잘못 건드리면 멈추는 상황까지 오기 때문에 더더욱 조신하게 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자동 회전문이 너무 빨리 돌아 어린이 등의 안전 사고가 나지 않게끔, 2004년 당시 건설교통부에서 자동 회전문 관련 법령을 손질한 바도 있습니다.
회전문의 이런 효과를 가장 잘 이용하는 곳 중 하나가 검찰이라는 분석도 그래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바로 며칠 전인 지난 19일 하이마트(071840) 선종구 회장이 검찰에 출석했는데요. 이 때 선 회장은 두 명의 보좌진과 함께 비좁은 회전문을 통과했습니다.
아마 누군가, 수십명의 비서들이 둘러치는 ‘병풍’을 통해 취재진을 따돌리고 우르르 통과하고 싶어도 어려운 구조를 회전문이 만드는 셈입니다.
더군다나 피의자로 불려온 처지에 이렇게 좁은 문을 천천히 통과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만감이 교차하겠지요. 카뮈는 짧은 순간이나마 여러 가지 단상을 떠올릴 긍정적 공간으로 서두에 언급된 이야기를 했겠지만, 심리적으로 압박이 되면서 기를 죽이는 공간으로도 회전문은 유용한 셈입니다.
옛날 미원, 오늘날의 대상(001680) 총수인 임창욱 회장 역시 1995년 11월12일 회전문 때문에(이건 좀 다른 각도지만) 곤욕을 치렀는데요. 일명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청사에 출두했던 임 회장은 밤 늦게야 11층 조사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왔습니다. 문제는 청사 회전문이 잠겨 있어서, 이걸 직원들이 열어줄 때까지 2분여간 기자들에게 시달렸다고 하는군요. ‘휴일인 탓에’ 청사 회전문이 잠겨 있었다는 것 같지만, 글쎄요, ‘뻗치기’를 하며 기삿거리를 기다리던 취재진을 위해 검찰 측에서 배려를 한 걸 수도 있고요. 아니면, 그날만 해도 8시간이나 조사를 받으면서 뻣뻣하게 버틴 임 회장에 대해 일종의 추가 압박으로 취재 경쟁에 노출을 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그건 좀 심한 비약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날 ‘출입문 명작 효과’의 가장 큰 수혜자들은 현장 취재기자들이었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여러 효과가 있는 회전문이지만, 사람이 아주 많이는 드나들지 않고(문이 개폐되는 데 한계가 있고) 회전문을 만드는 비용을 굳이 지출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일부러 이를 도입하지 않기도 합니다. 회전문이 갖는 단열 효과로 인한 에너지 절감 효과도 분명 있지만, 반대로 설치 비용과 가동 비용이 나간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1998년 6월5일 국내 언론에서는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은 자동 회전문을 일부러 쓰지 않는다고 소개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호텔 규모에 따라 회전문을 설치하려면 수백만달러를 줘야 하고 가동하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 또한 만만찮다”고 해당 호텔이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많은 문이 자동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어맨이 열어주는 것이 오히려 예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점도 노렸다고 전했습니다. 부수적으로는, 최고급 호텔이니만치 드나드는 방문객 수가 건물 규모 등에 비해서는 아주 많은 편은 아니어서 이런 계산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우리은행(053000) 본점을 휴일인 25일 찾았습니다. 이 건물은 조선 중종 시기에 정승을 지낸 정광필 대감의 집터에 자리잡고 있으며, 500년 가까운 수령의 은행나무 있는 쪽으로 정문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도 회전문이 돌고 있더군요.
25일 오전 촬영한 우리은행 본점 정문. 사진 두 장을 비교해 보면 천천히 자동회전문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열효율면에서 이점이 있어도, 가동 비용이라는 반대 급부가 있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습니다. 또, 풍수에서는 문이 크면 살기가 들어와 안 좋다고 하고, 회전문이 그래도 낫다고 하는데(냉기나 온기처럼 외부의 나쁜 기운도 회전문으로는 상대적으로 잘 드나들지 못 하나 봅니다), 그거야 상대적인 것이고 이 큰 문을 휴일에도 이렇게 돌릴 필요가 있는지, 과연 모를 일입니다. 휴일에도 나와 일하는 직원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고, ‘명작 금융상품’은 책상머리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고 잠시 회전문 통과하는 짬에 번개 같이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회전문이 혼자 명작 쓰지는 않을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