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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높은 분에겐 사랑도 죄일 수 있거늘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3.23 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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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서울 신촌에는 천주교 계통의 세칭 명문대가 있다. 바로 서강대학교인데, 한국가톨릭과 연이 있는 가톨릭대학교와 달리 서강대는 비유럽지역 포교로 이름난 선교단체 예수회에서 세운 학교다.

이 학교는 일본 죠치대학교와도 깊은 유대 관계가 있고,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재를 한국 사회에 공급해 온 강소대학이다. 초대 학장을 지낸 고 케네스 킬로렌(한국명 길로연)씨 시대 이후 기반을 착실히 다진 서강대는 이후 고 존 데일리 초대 총장 시대에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는 등, 이후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킬로렌 초대 학장은 일제 패망 후 우리 정부가 수립된 이후 귀화한 최초의 미국인(경향신문 1966년 2월28일 설명 등)으로 유명했다. 고인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에만 몰두했던 게 아니라, 1966년 6월16일에는 ‘국민장의 이유’라는 기고를 통해(동아일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등 사회적 역할에도 관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고 장면 박사가 적법한 정부의 책임자로서 제대로 평가되기 보다는 주미대사로 외교적 성과를 올린 점 등만 강조된 당시 국민장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장 박사의 역할을 부각한다는 것은 곧 해당 정권을 뒤집고 들어선 5·16 세력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큰 모험이었음은 불문가지다. 

정작 킬로렌 학장이 유명해진 것은 사업가인 조안리씨와의 열애 때문이다. 당시 신부이자 스승(교수), 상대 여성보다 상당히 나이가 위였던 점 등 킬로렌 학장은 비난을 받을 모든 요소를 안고 연애를 시작했던 셈인데, JTBC는 지난 연말에 방송에서 이 러브스토리를 다루면서 △같은 예수회 재단인 광주가톨릭대학교로의 전출 △여의도 성모병원 정신과 강제 입원 등 상당한 압박에 시달렸던 사연을 정리한 바 있다.

물론 이 둘은 교황청의 배려로 결국 부부로 맺어진다. 하지만, 이 부부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오랫동안 이들을 괴롭혔던 것 같다. 베스트셀러 도서인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에서는 부인 입장에서 이 러브스토리를 서술했는데, 그래도 학교 역사에 공헌이 큰 남편에 대한 서강대 측의 예우가 부족하다는 뉘앙스의 기술 대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은 서강대 공식 홈페이지에 학교의 역사를 정리하는 대목에 킬로렌 초대 학장이 명시돼 있고, 2000년 연말에는 서강대 동문회가 ‘잊지 못할 서강인’에 고인을 선정하는 등 ‘복권’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높은 분’에게는 사랑도 죄이고, 학교 역사에서 이름을 거론하는 걸 어쩐지 꺼릴 정도로 많은 제약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성균관대학교가 역대 총장 명판이라는 걸 설치했던 모양인데, 여기 대표적 매국노인 이완용이 들어가 있어, 친일파에 대한 추모와 현창으로 보여 기분 나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은 것이라 추모라 볼 건 아니다 등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니, 지금으로 따지면 총장과 다를 게 없어 이름을 넣은 모양이다.

하지만 명판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기리는 행위가 맞다. 로마 시대에도 기록 말살형에 처해진 경우 동판에서 이름을 지워 버렸다는 점을 주지하지 않더라도, 이름을 널리 드러내는 작업을 한 것이어서 동상을 교내에 세운 것 못지 않게 볼 일이다.

그래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2005년 발언했던 내용을 소개해 본다. 김 전 관장은 당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려대학교의 김성수, 이화여자대학교의 김활란) 동상을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학도들이 공부하는 캠퍼스에 그대로 세워놓는다는 것은 사회정의로 보나 민족정기로 보나 젊은 학도들의 미래 지향성을 봐서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아, 친일파 총장 명판에 대한 처리 대책도 김 전 관장의 말을 빌려 제시할 수 있다. 김 전 관장은 “학교 측이 학생들의 뜻을 모아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당시 이화여대 등이 나아갈 바를 논했다.

사랑도 죄 아닌 죄이거늘, 하물며 친일임에랴.

   
 
그래도 우리 역사고, 우리 총장인데 외부인이 왜 왈가왈부하냐는 성균관대 측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본 기자는 ‘납세자’다. 정부에서 쥐꼬리만큼이라도 국고 보조받는 자칭 대학이라는 곳에는 티끌만큼이나마 내 돈 들어간다. 성균관대에 경영난에 시달리던 시대가 지나가고 삼성재단이 들어서고 많은 이들은 학교가 좋아질 것으로 봤는데 어째 발전이 없는지, 아니 저런 작태까지 저지르는지 모를 일이다. 옛말에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고 했는데, 삼성재단답게 처신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