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어제 친구 혼사에 다녀왔다. 크지 않은 건물에 몇 개 층에 층마다 예식장이 있었다. 건물 안은 여러 집 손님들로 매우 소란스럽고 혼잡했다. 부조금을 전하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들, 화환을 갖고 온 배달원, 다른 식장을 찾아 오가는 하객들, 청명한 날 명동거리만큼이나 복잡했다.
비망록에 이름을 적고 부조금을 내곤 식장 쪽으로 향했다. 식장 입구는 여느 예식장과 마찬가지로 축하객들로 혼잡했지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곧 예식이 시작될 예정이니 바깥에 계신 손님들께서는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엔 모두들 귀를 막았다. 우린 마치 주말에 여기까지 온 목적을 다 한 양 곧장 식당으로 갔다. 친인척이나 신랑신부 친구, 그리고 혼주의 아주 가까운 친구가 아니면 식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식사하러 가는 것이 통상적인 모습이다.
뷔페식당이어서 그런지 여기도 혼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담으려는 사람들로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몇 자리를 찾았지만 우린 떨어져 앉아야 했다. 음식의 가짓수가 어림잡아 서른 가지는 넘어 보였다. 엄청난 종류다. 우리가 나올 때쯤 빈자리가 더 많이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음식이 채워지고 있었다. 버리는 음식이 상당수 일 텐데, 안타깝다.
동창회 명부 보고 돌리는 청첩장, 눈도장 찍고 부조금 전하기 위해 주말이면 몇 탕을 뛰어야 하는 결혼 풍속도, 식장 밖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해도 막상 식장 안은 텅 비는 예식장, 어마어마한 음식 낭비, 곧장 버려지는 축하 화환, 그리고 하객들이 길거리에서 버리는 황금 시간, 하객 차량으로 인한 예식장 주변의 교통체증.
‘부조’란 누군가가 힘들 때 십시일반으로 도와 힘을 들어 주려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속이다. 그러나 요즘에 와선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부조금으로는 하객들 음식 대접하기에 빠듯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혼주 눈도장 찍기 위해 가는 결혼식장에 간다면, 백년 사랑을 약속하는 아름다워야 할 결혼식이 조금이라도 남에게 부담을 준다면, 경건해야 할 식장 분위기가 도떼기시장이 됐다면,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조카 결혼식에 다녀왔다. 양가에서 각 100명씩 초대하고, 참석하겠다는 사람에겐 무얼 먹을 건지 몇 달 전에 물어 준비하더라고 했다. 친척을 비롯하여 양가 부모는 물론 신랑신부를 같이 잘 아는 적은 수의 사람들만 모인만큼 결혼식장은 경건하고 정숙했다고 했다. 그런 결혼식 풍경이 부러웠다고 했다.
우린 더러 ‘결혼식 하객이나 문상객 숫자를 보면 그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썰렁한 장례식장은 문상객에게 더 허전한 느낌을 주는 건 맞다. 그러나 문상객이 적다고 그 사람이 인생을 헛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말해서도 안 된다.
결혼식을 치러 본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결혼 풍속은 문제가 많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다. ‘누군가’가 나서서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그래, 너 잘 났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
첫째는 남들 다 하는 식으로 했다. 하고 나니 ‘이게 아닌데’ 싶었다. 둘째 때는 양가 합쳐서 100명으로 제한했다. 청첩장도 찍지 않았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느냐가 정말 고민스러웠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다. 그래서 애 친구들을 가장 많이 초청했다. 친척도 몇 촌 이내로 끊었다. 친구들은 우리 애를 아는 사람으로 기준을 정했고, 부부청첩은 하지 않았다.
우헌기 ACC 파트너스 대표코치 / (전)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 / (전) 택산상역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