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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리수 먹고 탈나면 20억? 이걸 대책이라고…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3.22 14: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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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서울시 수돗물의 고유 브랜드는 ‘아리수’다. 아리수는 정수장 출발시 수질로 보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우수한 수돗물이다. 그러나, 이 아리수를 음용수로 쓰는 비율은 상당히 낮다. 더욱이 끓이거나 하지 않고 수도꼭지에서 나온 그대로 마신다는 시민은 전체의 8.5%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한다.

많은 돈을 들여 수돗물을 관리하고 있지만 이런 현실이 지속되다 보니, 서울시가 고심 끝에 서울시가 특별 처방을 내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가 수돗물을 마시고 탈이 날 경우 1인당 최고 20억원을 보상하는 내용의 건강책임보험에 가입한다는 것이다. 법정 수질기준을 초과하는 수돗물을 마시고 피해를 입을 경우 뿐 아니라 방사능 사고 등으로 수돗물이 오염돼도 보상을 추진한다고 한다.

오죽 답답하고 억울해야 이런 특단의 대책이 도입됐겠냐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이 대책은 ‘혈세 누수’라고밖에 생각이 안 든다.

논점은 수돗물을 마시고 탈이 난 인과관계를 대체 어떻게 가려낼 것이냐에 있다.

수돗물에 유해물질이 혼입돼 논란을 빚은 사례로는 1990년대 페놀 사태가 아마 대표적일 것이다. 당시 임신부 유산 주장 등 여러 피례 사례가 접수돼 사건을 일으킨 두산그룹이 공분을 샀다.

그런데, 1992년 10월 당시 중앙환경분쟁조정위는 기업의 페놀 유출 행위와 △자연유산 △사산 △기형아 출산 등 임산부 피해와의 인과관계는 물론 이와 관련한 정신적 피해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중앙분쟁조정위는 다만 페놀유출사고 당시의 정황으로 미루어 페놀유출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미미하게나마’ 심리적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 인공임신중절수술에 소요되는 의료비등을 실비로 보상토록 했다.

이후 이 문제는 모호하지만 도의적인 사죄와 보상 정도로 매듭지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사건을 다룬 마산·창원 지역 환경운동가 인터뷰 기사에서 어느 언론은 “마산·창원 지역 페놀 사건은 우여곡절 끝에 시·두산·시민단체 합동조사 결과를 토대로 두산전자가 피해자 250명에 대해 개별 보상하고 수질개선기금 1억5000만원을 마산시에 기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주간경향, 2006년 9월26일 발행분)”고 설명했다.

민사이든 형사이든 법정 공방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은 원래 손해를 본 이가 부담하여야 하고(형사사건에서는 공익을 대변해 소송을 제기한 검사가 피고 측 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거증책임을 지며), 꼭 재판에 회부되는 경우가 아니라 합의, 보험 처리 등에서도 이를 참조, 인과관계를 인정, 납득할 수 있는 경우라야 시의 예산(및 이를 기반으로 가입한 공제 및 보험금)을 물어주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런데 수돗물이 적어도 음용수로서 인기가 없는 것은, 원수의 질이 나빠서가 아니라 유통망(즉, 도관 시스템의 문제)이 논란일 것인데, 이런 문제까지 모두 감안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거대한 재정 부담을 책임에 초과해 맡자는 것이 되고,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먹고 탈이 난 입증도 어렵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보험을 일단 들면 알아서 보험사가 지급해 주지 않겠느냐는 도덕적 해이 수준으로 설마 서울시에서 생각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보험사에서 그렇게 지급 시스템을 갖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도 문제가 많아 보이는 상황에 그런 맥락에서 보험 가입을 한 것이라면 인기를 얻고자 돈과 정책을 쓰는 포퓰리즘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의 재고를 요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