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청자 입장에서 즐겨보던 코너가 미방영됐을 때 최소의 이유만 인지하고 짜증을 내던 국민들이 방송참여자 입장에서 불방의 원천적 원인을 따져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6일 저녁 비가 내린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KBS와 MBC, YTN의 '방송3사 공동파업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이날 콘서트에는 방송 3사의 노조원을 포함해 무려 2만 여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사상최대 언론 파업사태'라는 국면을 비꼰 '방송 3사 낙하산 동반퇴임 축하쑈'라는 맹랑한 타이틀답게 어버이연합에 맞선 자식연합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를 표방한 깃발도 나부꼈고 공연 시작 30분 전에는 누군가가 이제 각하하면 떠오르는 '빅엿'을 무료 증정하기도 했습니다.
드렁큰타이거, 이은미, DJ DOC외에도 히트한 노래 중 '왼손잡이'란 곡이 있어 이 곡을 부를 경우 좌파 이적행위에 해당된다고 농을 던진 가수 이적과 김제동, 나꼼수팀 및 최일구 아나운서 포함 방송 3사 방송관계자 일동이 관중을 웃기고 울렸습니다.
이날 콘서트는 관중들이 우비로 무장한 것과 절묘한 매치를 이뤄 뜨겁고도 축축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습니다. 무엇보다 상당히 어린 연령층이 다수 포함된 대중들의 호응도 높았습니다.
이 어린 사람들의 들썩임을 보며 근자의 사회 병폐 중 하나로 지적되는 '무관심'이, 다함께 공분할 수 있는 능력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느꼈습니다. 내 마당에 발을 들인 형국의 정부에 대한 분노는 결국 의도치 않게 국민의 참여를 이끌고 있습니다. 우습게도 정부가 바라던 국민참여정치가 이런 형태는 아니었겠지만 어찌됐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놀이와 맞물린 새로운 패러다임의 혁명이 시작된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만큼 앞으로도 젊은 세대의 집결은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겠죠.
제31대 미국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늙은이나 싸워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전쟁은 정치가들이 일으키지만 정작 피를 흘리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죠. 결국 젊은 세대가 살아남는 것은 똘똘 뭉치는 방법뿐입니다.
이날 콘서트는 충분히 해피했음에도 불구, 놀이에 치우친 느낌이 강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괜찮은 콘서트였지만 축축하게 감정을 적시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렇다고 서슬 퍼런 목소리가 필요한 타이밍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너무나 건조해 성냥을 긁으면 당장이라도 불이 붙을 만한 그런 정직하게 메마른 목소리가 들렸으면 했습니다. 항거에 성공하려면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